시
변기에 옷이 스쳤다 그래서 옷을 버리기로 했다
가위질을 할수록 오염되는 기분
옹기종기 변기에 달라붙은 세균들은 우글우글 옷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되고 벌레들은 하나둘씩 모여 커다란 짐승이 되고 커다란 짐승은 날카로운 이빨로 나를 집어삼키겠지
손이 춤을 추자 옷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풍부한 상상력은 결코 좋은 게 아냐
상상 속의 나는 이빨을 닦지 않는 독재자가 되고 머리를 쥐어뜯은 사이비가 되고 벌거벗은 흉악범이 되고 나는 끝내 햇빛 아래 타 죽고 말 거야
아
신은 못난 것들을 버리기 위해 나를 만드셨구나
변기 쪼가리에 코를 박고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