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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ul 14. 2024

콩나물밥

냄비

 꾀 오랫동안 주물냄비에 밥을 하고 있다. 시작은 오래 전의 별것 아닌 일로, 전기밥솥을 한참 이용하다가 새로 사야 할 일이 생겼었는데 처음에는 잘 맞는 것을 고르려다 시간이 보냈고, 나중에는 의외로 임시로 사용하던 뚝배기 밥이 마음에 들어서 그 방법으로 밥을 짓다가 뚝배기에 금이 간 것을 보고는 이렇게 된 거 솥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입한 것이 주물냄비였다. 매장에 가서 둘러보는데 사장님은 3인이 쓰려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름 24cm를 권하셨으나 주로 밥을 할 것이고 보기에 적당히 아담해 보이는 크기의 지름 18cm를 사서 잘 쓰고 있다. 냄비에 흰쌀밥, 고구마밥, 무밥, 잔멸치밥 그리고 죽과 라따뚜이를 하면 어쩔 때는 양을 조금 줄여 넣기도 하지만 2-3인분씩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콩나물밥은 조금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문제다. 소쩍새의 슬픈 사연과 비교할 수 없지만, 솥이 적은 것은 문제가 된다. 콩나물을 잔뜩 넣고 밥을 해야 먹는 맛이 나는데 냄비 안을 콩나물로 꽉 채우면 밥이 잘되지 않고 콩나물이 한 소큼 끓여진 다음에 뚜껑을 열어서 저어주어야 하는데 그 사이에 넘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 이유로 콩나물밥을 좋아했지만 몇 년째 만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보통 냄비에라도 콩나물을 채워서 밥을 하겠다는 강한 마음이 생겨서 만들어 보았다. 너무나 날이 더웠고 담백하면서 촉촉한 무언가가 먹고 싶은 그런 날이다. 착착 감기는 콩나물밥에 입맛을 살려주는 양념장을 넣고 씹으면 아삭 거리기도 하면서 시원한 한 끼 식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주물냄비에 밥을 척척 하고 있지만, 얇은 냄비에 밥을 한다는 것은 이건, 다른 문제다. 온돌처럼 오래 온기를 머금고 지속해 줄 축열층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릇 전체를 둘러가며 고르게 열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조절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바닥은 불에 다가가 눌려 붙을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이라면 다년간의 임기응변 기술이 늘었기 때문에 나를 당황시킬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이건 일종의 여유다. 그러니 나는 보통 밥하는 양으로 물을 맞추어 쌀을 불리고 (이건 조금 과감한 선택), 콩나물을 씻어 준비하고선 작전을 짠다. 눌러붙지 않을 계획. 물론 그런 경우라도 손쉬운 해결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나의 평온을 위해서 들러붙는 것은 피해야 한다.


 콩나물에서 빠져나온 무엇인가들과 밥물이 합쳐지면서 점점 더 알 수 없는 관계가 되면 냄비와도 떨어지지 않을 심산이 커진다. 이건 우리가 집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그것과도 같다. 물론 콩나물밥과 우리를 비교할 순 없다. 밥은 밥일 뿐, 그전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쌀보다 콩나물을 먼저 담뿍 앉히고 그 위에 쌀을 얹기로 했다. 콩나물은 250g 정도를 넣었고, 2인분 쌀에 물의 양은 보통이다. 채소밥을 할 때는, 무밥을 예로 들어서, 물 양을 조금 줄이는 편인데 보통 밥을 할 때 보다 여러 번 뚜껑을 열어서 뒤적여 주고 끓이는 시간을 조금 늘리기도 해서 날아가는 물의 양이 꽤 되고, 콩나물은 상대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분이 많은 편은 아니라는 생각에 보통의 물 양으로 정했다.  


 얇지만 깊은 냄비에 콩나물을 담고 그 위에 불린 쌀을 밥물과 함께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중불로 끓이기 시작했다. 한 소큼 끓는 소리가 들려서 잠시 더 지켜보다가 밥물이 올려놓은 쌀 위로 바글거리는 것을 보고 뚜껑을 열어서 잘 섞고 수분이 적당한 양으로 잦아들 때까지 1-2분 더 끓이기로 한다. 쌀 알이 반투명해지고 물이 자작해져서 불을 약하게 줄이고 10분 기다리며 가끔 저어주었다. 불을 끄고 뜸을 들였다.


 주걱으로 뒤적이며 그릇에 담아내니 밥알도 살아있고 콩나물도 아삭하게 잘 익은 것이 보인다.

 이건 괜찮은 방법이다! 앞으로 콩나물 밥 좀 먹을 것 같다, 한 김 식혀서 먹는 것도 좋을 듯.



오늘, 구름 기록  24.07.14. 22°-30° 서울

이렇게 뭉글뭉글할 수 있을까 싶게 하늘에 구름이 터져 올랐다, 마치 콩나물과 익어가는 쌀이 뒤섞인 채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냄비 속 밥물의 장력처럼. 해 질 녘의 하늘도 아름다웠는데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서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셔터를 눌러대는 여유 있는 주말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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