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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ul 09. 2024

유부초밥

(시판제품) 초밥을 만드는 자세로

  가끔씩 주말 점심 메뉴로 유부초밥을 만든다. 조린 유부와 야채 플레이크 구성인 시판 제품을 미리 편하게 사다 놓을 수 있으니까 준비할 것이 적고 새콤달콤한 별식으로 한 접시 가득하게 만들어 놓고 다른 것들을 곁들이면서 나눠먹기 좋다. 예전에는 부족한 것 같은 영양과 식감을 보충하려고 잔멸치를 볶아서 밥에 같이 넣었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넣지 않는 편이다. 대신 진짜 초밥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쌀을 잘 불리고 물과 불을 조절하며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고 충분하게 뜸을 들인다. 뚜껑을 열고 김이 나는 밥을 널찍한 그릇에 펼쳐 담고 조제된 단촛물이 포장된 작고 납작한 비닐봉지의 칼집난 부분을 찾아서 쉽게 뜯고는 한 손으로 휘이 골고루 밥에 뿌리고 다른 손은 나무주걱을 잡고 잘 섞는다. 식힘용 나무통이 있으면 좋겠지만 스테인리스 웍으로 대신한다. 밥은 보통 2인분 제품을 두 봉지를 잡아와서 3인분의 양을 하면 맞았다. 밥을 섞다 보니 밥이 잘 된 것을 알겠다. 초밥초가 밥알에 잘 스미면서도 더해진 수분이 날아가도록 밥을 펼쳐놓는다.     


 어느 해인가는 r의 학교 행사가 있는 날 도시락을 '유부초밥으로 할까 김밥으로 할까' 물었었는데 둘 다 먹고 싶다는 대답에 둘다를 준비한 도시락을 싼 적이 있었다, 문득 생각나네. 야채 플레이크는 밥을 넣기 바로 전에 섞어서 식감이 살려질 수 있게 했다.


 유부피는 조림액과 담겨 팩에 밀봉되어 있는데, 보통은 살짝 짜서 썼지만 오늘은 조림액을 두텁게 머금고 있는 상태 그대로 쓰기로 한다. 그러면 유부피 가운데 틈을 만들 때 눌리지 않고 두께가 유지되어 있어서 가르기 편하고 그렇게 만지면서 유부 조직에서 빠져나온 조림액이 주걱으로 밥을 담기 쉽도록 했다. 맛도 살짝 베이니까 좋은 방법 같다.   


 밥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도 밥알 갯수를 헤아린다는 초밥 손에 쥐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유부와 밥이 골고루 씹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유부피의 크기에 맞게 '적당히' 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밥이 적어서 피의 질김이 강조되거나 밥이 눌려서 맛이 잘 섞이지 않고 씹는 데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너무 통통하지도 않게 씹었을 때 밥알의 여유 공간 속으로 부드럽게 잘리며 잘 베인 유부피의 텅텅한 질감 사이로 나오는 조미즙의 미묘한 맛과 어렴풋한 두부의 고소함이 섞이는 것을 맛보려면.


 r은 하나 맛보더니 '맛있다!'라고 했다. 보통의 '맛있다.'와 다른 '맛있다!'라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렇지'하고 받아들였다.


 삼각형 주머니 형태의 유부초밥은 접시에 가득 담는다고 생각하면 적절한 배치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사실 삼각형과 사각형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3인분의 유부초밥을 하나의 접시에 맛깔나게 담는 법은 찾지 못했다. 밥을 위로, 혹은 아래로 세워도 보고 뉘어도 보고 하다가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결국은 꽉 쌓아야지만 한 접시에 놓을 수 있다. 나무 도마에 줄지어 올릴 수도 있지만 같은 단조로운 형태의 덩어리를 줄지어 놓는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밋밋함만 더할 뿐이다. 3등분 해서 각자 접시에 놓는 것이 방법일까. 그것보다는 가운데 배치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 나른한 주말 점심메뉴 별식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수북하게 쌓여있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이 유부초밥의 지루함을 달래줄 반찬이나 국 혹은 음료가 다양하게 필요하다. 추운 날, 더운 날을 구분해서 오늘은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서 같이 먹었다. 있는 반찬들을 조금씩 꺼내 놓고 과일이나 채소도 같이 올려서 먹는다. 짠지나 단무지 같은 꼬들꼬들한 식감의 무엇인가가 있으면 좋다.  


 내가 생선초밥을 만들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계란초밥은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다. 그때를 생각하며 식초와 물, 소금, 설탕의 비율을 연구하고 다시마 육수를 내는 긴 여정을..  


  이렇게 맛을 따지면 유부도 조리고 초밥초 비율도 찾고 하는 게 아닌가 스치듯 생각할 수 있으나 이건 가벼운 주말, 점심의 별식으로 '가볍다'라는 것에는 만드는 사람의 '가뿐함'도 들어가야 한다는 중요한 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유부를 사는 것부터가 다른 영역이 된다. 아니면 만드는 것부터? 유부초밥은 시판제품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맛있으니까. 유부초밥 키트는 제조사마다, 제품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입맛에 잘 맞는 것을 골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그걸 바탕으로 밥에 원하는 재료를 더 넣거나 초를 더하거나 하는 집집마다의 방법이 라면 끓이는 법 만큼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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