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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Oct 01. 2024

동그랑땡

 동그랑땡은 참, 단백질 식단이다. 귀여운 이름 때문에 하나씩 집어먹기 편한 만만한 반찬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엄연하게 제사상에 이름을 가지고 올라가는 음식이다. 간 돼지고기에 으깬 두부 그리고 달걀물을 씌워 굽는다. 익은 고기와 두부 사이에 식감과 맛을 더하는 양파와 파를 얇게 썰어 넣었다. 나는 당근을 넣지 않았는데, 동그랑땡의 전체적인 익힘 상태에서 당근이 조금 애매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당근은 푹푹 익히고 볶은 것이 좋다. 겉이 타지 않게 불을 조절해 가며 속이 잘 익도록 오래 굽는다. 동그랑땡의 본명은 '돈저냐'라고 한다.


돈저냐


동그랑땡 반죽
동그랑땡 세 개

 

  그런데 말입니다,


 동그랑땡 모양 잡는 것이 손 많이 가고 귀엽게만 느껴지는 날이라면 우리는 어른의 맛으로 바꿀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납작 눌러 굽기입니다. 햄버거 패티를 굽듯이 큼직한 반죽을 올려서 뒤집기로 누르면서 지짐을, 바짝 굽는 것이죠. 그 옆에 매운 고추를 반으로 갈라서 같이 구워서 곁들여 먹으면 좋습니다. 이름하여 '납작동그랑땡'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가 한다면.. 그건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새로운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여기‘ 에서 좋은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반죽을 조금 남겨서 고추소로 넣고 고기 넣은 고추전을 해보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추를 사가지고 왔는데, 큼직한 오이고추 말고 청양고추를 사가지고 와서 반을 갈랐더니, 사실 고추를 살 때부터 조금 작은데 생각하면서 실패의 기운을 약간 느꼈지만 크기냐, 매운맛이냐에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반으로 가른 고추의 형태는 납작해져서 힘이 없고, 담기는 것이 아니라 씌워지듯 약하게 결합된 것은 굽기 시작하자마자 탈락되어 각자의 길을 가더군요. 어쩔 수 없지요. 소를 한데 모아서 둥글 납작하게 뭉쳐 굽고 고추는 그대로  볶았습니다. 조심스레 식탁에 올렸는데 아니, 너무 맛있게 잘 먹는 게 아니겠어요. 맛있어 보인다고 까지 했습니다만, 제 스스로 실패라고 생각해서 사진을 남겨놓지 않은 것이 지금도 미묘하게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뭐 계획대로 된 건 아니니까요. 납작, 바짝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전이였고 청양 고추의 맛이 잘 어울렸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엽전, 돈을 상징하던 모양이 흐트러지고 눌려버린 것을 떠올리니 동그랑땡을 다시 빗어 만들 때는 수북하게 마음을 담아 쌓아서 상에 올리려고 합니다. 요리 형태에 담긴 상징을 알면 재미가 더해지는 법이죠, 떡국떡도 그랬구요. 최근에는 무인 뻥튀기 가게에 들어가 보았는데 온통 하트모양의 뻥튀기만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 곳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옆 동네에 외계인피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은 몇달째 미완성 메뉴가 있는 곳이였죠. 가게 전면 유리에 사진이 들어간 메뉴판이 있는데, 그 중 A4용지에 손으로 적힌 '미완성'은 그곳을 지날때 마다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일이 벗겨지듯 등장했습니다, '별에서 온 피자'. 그것은 떠나온 별 모양으로 반짝였습니다. 둥그런 피자 도우의 가장자리가 중심으로 원호를 그리지 않고 바깥을 향하면서 조각이 만나는 곳 마다 뾰족해졌습니다. 바삭한 식감이 더해졌을 걸로 추측됩니다. 지구정착을 환영합니다, 번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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