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오르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익숙한 것은 오르막길 올라가기다. 오르막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한 걸음씩 걸으면 어느새 올라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걸음을 아는 것이다. 평소보다 느긋하게 짧은 보폭으로, 한 발자국도 괜찮다. 오른쪽 발을 디디고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린다. 간단하다, 왼쪽 발을 디디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린다. 다시, 오른쪽 발을 디디고, 마디를 반복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면 꾸준하게 걸을 수 있다. 다만, 오늘의 속도를 찾지 못하면 몇 걸음 걷다가 숨이 가파지고 온몸의 기운이 빠져 더 걸을 수 없게 된다. 그때는 도리 없다.
잠시 쉬는 수밖에, 다시 가다듬자.
이걸 알려준 겨울 산행에서 만난 등장인물, A에게 감사하다고 얘기했었어야 했는데, 어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포기하고 뒤돌아 집에 가려고 한 순간 나타난 인연이다. 언제부턴가 같이 걷기 시작한 A는 함박눈 속에서 무심하게 속삭였다. ‘지금보다 천천히, 한 걸음씩 짧게 오르세요.’ 평소보다 느리지만 확실하다면, 그걸 찾아낸다면, 느긋하게 눈길에 하나씩 발자국을 찍어내던 나는 중턱을 넘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도를 내며 펄펄 날아다녔다.
만만다행히,
내리막길 올라가기는 혼자가 아니다.
한걸음 올라가면 두 걸음 미끄러지고 지표 없는 마루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 내달리며 미끄러지는 사람들의 경쾌함은 나도 꼭 해보고 싶은 것이니까 지금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과 같지 않음이다. 벌써 저 아래 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을 보면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고 모든 것은 알 수 없다. 발길을 붙잡는 모래들, 바짝 마른 입술, 마음을 들뜨게도 무기력하게도 부채질하는 온갖 메마른 것들에 지쳐간다. 마지막 한 걸음도 지치고 지친다, 나의 속도계는 움직임을 멈추려 한다. 바늘의 진동으로 가까스로 고비에 손을 디디고 차가워진 모래더미에 무릎을 굽혀 주저앉았다.
귓가에 거친 바람이 휘감았다.
기운을 차리고 둘러보니 환한 웃음의 사람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등장인물, B를 나는 주의 깊게 보지 못했었지만 그는 우리와 함께 올라가고 있었고, 마루에서도 기쁨을 나누었다. 돌아보니 모두가 함께였다. B는 뜻밖에 여행객들이 떠난 한낮의 캠프에서도 차창 밖으로 인사를 해왔는데, 나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그들을 다시 보았을 때, 그때서야 모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커다란 법랑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고 지나쳤던 식탁 앞으로 돌아가서 인사를 건넸다. 특별한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같은 속도로 순간을 함께 나눴다.
몇 해가 지나고 떠오르는 아침이 북한산 자락에 비친 순간, 그곳의 해질녘으로 갈 수 있었다. 무릎 높이까지 오는 둥그런 짙은 초록 덤블들이 끝없이 간격을 벌려 펼쳐진 세상, 온통 검고 붉은빛으로 물들어 그곳이 어디인지를 지우고, 그림자를 지워 방향을 잃게 한 날. 우리는 약속 시간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 8월의 마지막 주, 늦은 여름의 취음에 덧 씌워진 붉은 아침의 빛은 그날뿐이었다.
나의 오르내리기
오르막길을 내려가다 만난, 뒤로 걷는 사람들은 시공간 법칙을 거스르지만 그건 꾀 유리한 방법이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할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뭐, 가능하다.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고 나는 중심을 잃는다. 아니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뒷걸음질할 수 있을까. 그들을 마주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일단, 그들은 존재하고 볼 때마다 놀라움을 선사한다. 우리가 그들을 처음 본 날, 어쩔 수 없이 몰래 웃고 말았지만, 영화가 현실이 되는 비틀리는 오묘한 감각은 나를 바짝 긴장하게 하고 더 빨리 걷거나 더 느리게 걷도록 했다.
오르막길 올라가기
내리막길 올라가기
오르막길 내려가기
내리막길 내려가기
내리막길 내려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조심이 필요하다. r에게 지그재그로 내려가라고 당부하지만, 꼭 직선으로 가겠다고 하고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을 찾을 것이다. 그건 클라이밍을 방불케 하는 관찰과 계산, 움직임이다. 움푹 들어간 상수도 맨홀 뚜껑은 두 번이나 사람들이 와서 공사를 했지만 그들이 가진 연결관의 높이만큼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15센티미터, 그만큼씩만 올라왔기 때문에 여전히 오목하다. 기워진 새 아스팔트는 검은 웅덩이처럼 고여있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표면을 맞추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건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장애물 없이 같은 경사로 내려가면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한뼘의 오류는 쉴 수 있는, 함정 같지만 적당히 유용한 장치가 되는 것이다. 모르기에 조심하고,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심한다. 알 수 없는 일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물 웅덩이가 생기는 길을 피해 움직인다. 눈이 오는 날이라면 살얼음을 피해 움직인다. 여기서 가속이 붙는다는 것은 사고를 의미한다.
내가 이렇게 단순하게 속도를 따져보았지만, 사실 어느 곳에서나 제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건 단단함과 유연함을 갖춘 변주에서 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은 유유히 버들잎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자칫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들은 오랜 기간 달 밝은 밤에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깊은 사색의 순간을 지나온 것이니, 눈을 감고 조용하게 생각하고 생각해서 점점 가벼워지고,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바로 그곳으로, 그 속도의 차이는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는데, 어느 날은 꿈속에 나타나 사막의 파란 물 웅덩이, 꼭 그 색의 모자를 나에게 씌워 주었다. 그는 알 수 없는 곳에 있었고 항상 내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