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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Sep 17. 2023

마른내로, 여행

새로운 식료품 쇼핑

 가끔 봄, 가을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ddp 열린 광장에 무대가 설치되는 모습이 볼만하다. 거대한 다리 구조물 아래에 런어웨이가 설치되기도 했다. 밤에 조명이 켜지고 반투명한 공간 안에 움직이는 실루엣, 쿵쾅거리는 음악과 사진 찍는 사람들, 찍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패션피플들과 마주쳤다. 다들 제각각이라는 것이 이 일대의 특징이다. 경사로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와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을지로 방면으로 걸으면, 외국 식자재 상점과 식당들이 모여있는 구역이 나온다.


 종종 구경 가는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산 빵과 식료품 얘기를 하고 싶어서 지도를 살펴보다가 그, 지나가는 길의 이름이 ‘마른내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에 난, 대로 아닌 비교적 작은 소로로, 큰 인물들과 나란히 따라가면 충무로를 지나 명동성당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묵직한 이름들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얇은 내가 흐르고 있다. '마른내'라는 말이 말라 있기는 하지만 '내'라고 하는 작은 물길의 말이 주는 조잘거리는 귀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얼핏 그 길의 중간 즈음에 있는 중부 '건'어물 시장과 '마른'이 연관된 것일까 하며 재미있어했는데 검색해 보고는 금방 그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지명은 ‘건천동’이었던 원래 옛 동네 우리말 이름 ‘마른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일대는 마른땅이 비가 오면 내가 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명보극장을 시작으로 안쪽 인쇄골목 인근이 추정되는 위치다. 그리고 건천동이 이순신 장군의 생가라고 한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나의 아버지가 내가 어릴 적 일했던 곳으로, 출력물의 색 보정작업을 하셨던 곳이다. 명보극장 앞으로 놀러를 가기도 했고 집에 있는 확대경과 광박스 그리고 명화 출력물과 달력 샘플을 들여다보며 노는 것이 내 일이었다. 또 다시, j가 잠시 쓰던 작업실이 있던 곳이고, 나도 잠시 인근에서 일할 때 회식하러 찾아간 골뱅이 골목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서 영업종료 전 을지면옥에 가서 냉면을 맛보기도 했다. j는 본능적으로 어떤 동네에 가던 산책을 하면서 매일 갈 수 있는 편안한 카페를 마련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알게 된 '힙'한 바와 커피숍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잊고 있었는데 뭐가 있는지도 모른 밤에 후미진 골목길, 오랜 건물의 조용한 사무실 복도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본 눈이 휘둥그레지는 독특한 분위기의 몇몇 바들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니 힙지로의 문화를 맘껏 즐기기에 나는 나이를 먹은 것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그러나저러나 실핏줄같이 이어지는 인쇄소들의 마른내로 조용히 걷는 것이 쓰면서, 그 길의 산책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여행이 되고 있다.


 동대문 쪽 초입에 서울인쇄센터가 있는데 1층 전시장이 크진 않지만 오래된 인쇄기기를 볼 수 있었고, 스프링 제본 할 수 있는 달력을 만드는 가벼운 프로그램도 있고, 유용해 보이는 인쇄 강좌가 열리고 있었다. 출력기를 이용할 수 도 있었던 것 같다. 서울인쇄센터 (seoulprinting.com) 


 요즘 우리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함흥냉면을 먹거나, 수르파(양고기야채탕) 한그릇과 샤슬릭(꼬치구이)을 먹고 솜사를 사가지고 오기 위해서이다. 솜사는 일종의 고기빵인데, 항아리 모양의 화덕 안쪽 벽에 고기를 넣고 예쁘게 모양 잡은 반죽을 철썩 붙이고 굽는다. 근처의 식료품 상점에서 음료수와 소시지, 절임류를 구경하며 사 올 수 있다.  


 도로명 주소가 익숙해진 요즘인데, 나중에 붙여진 이름들이고 그 사건이 도로를 따라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조금 억지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마른내'는 무척 마음에 들어서 나도 광범위하게 엮어 보았다.    

어느 날의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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