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런던으로. 계획은 비행기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파리에 사는 가난한 젊은이라면, 이지젯, 부엘링, 라이언에어와 친해져야 할 것이다. 셋은 파리에서 유럽 근교 도시로 가는 비행 편이 있는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들이다. 그날도, 나는 수업 쉬는 시간에 노트북으로 이 세 항공사의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설정은 내일 출발, 최저가, 경유 상관없음.
한참을 지루하게 새로고침을 하던 중, 이지젯의 한 비행기표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 오후 4시 출발, 샤를 드골에서 게트윅 공항 직항, 왕복 8만 원.
옆자리의 친구에게 비행기표를 보여줬고, 빠른 결정과 함께 나는 홈페이지에 카드 번호를 입력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내일 런던에 간다.
수업이 끝나고, 매주 수요일마다 하는 파티에 갈까 생각할 틈도 없이 메트로를 타고 집으로 갔다. 3박 4일의 영국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은, 집에 사둔 상하기 쉬운 식재료들을 얼른 먹어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목표는 어제 마트에서 사둔 스테이크 고기 한 덩이, 다 죽어가는 샐러드 채소, 그리고 과일. 오늘 저녁은 만찬이었다. 파리의 퇴근 인파를 뚫고 집에 도착. 배고파서 어제 먹다 남은 과자나 주워 먹고 잠에 들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혼자 사는 성인으로서의 과제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고기를 손질하고, 간을 하고, 같이 볶을 양파와 버섯을 손질했다. 같이 먹을 와인을 따서 빈 속에 한 입 마셨다. 힘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요리를 할 힘은.
요리는 30분 정도 걸렸다. 작은 부엌, 하나뿐인 프라이팬, 뭉툭한 칼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 만들어놓고 보니 최소 3인분은 되는 것 같았다. 우선 요리하며 쓴 도구들을 물에 담그고, 넷플릭스로 5번은 본 듯한 시트콤을 틀고, 먹었다. 이 와중에 나는 요리를 꽤 잘했다. 계속 계속 먹었다. 배불러서 안 들어가면 와인으로 내려주며. 이미 긴 하루에 전쟁 같은 요리와 식사를 끝내니 피곤이 몰려왔다. 싱크대에 방치되어 있는 설거지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잠시 침대에 누웠다.
정말 잠시.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와인 덕인지, 피곤한 하루 덕인지, 개운하게 잠을 자고 말았다. 이왕 시원하게 자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기지개 한 번 크게 피고, 저벅저벅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야심한 새벽에 해드폰으로 크게 키린지와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제대로 잘 준비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기 전까지 영국 여행 계획을 좀 세울 예정이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