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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치 May 18. 2020

홍콩 가출기 #4. 돈지랄

1-4. 요트, 쿠바산 시가, 그리고 노을

돈지랄. 딱히 쓸데없고 비싼 곳에 돈을 써대는 행위.라고 정의를 한다면 맞으려나. 물론 돈지랄이라는 것도 결국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그 단어가 정의할 수 있는 행동들의 범위가 정해질 테지만 대충 단어에서 나오는 어감만은 모두가 함께 공유할 것이다.


밥 잘 사 주는 영국 오빠가 저녁을 함께 먹자며 만나자고 한 카페 델마(Cafe del Mar)*라는, 푸켓에서 아마도 가장 고급스러운 비치 클럽일 곳에 도착하자 남자들 넷만 앉은 테이블이 금세 눈에 띄었다. 긴팔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 올리고 디자이너 브랜드의 쇼츠와 그에 걸맞은 로퍼를 신은 유럽 남자들 넷이었다. 한 사람은 새끼손가락에 반지**도 꼈다. 여기까지 와서도 다들 이렇게 눈에 띄는구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https://brunch.co.kr/@berebere21/4


*Cafe del Mar: 향락의 섬이라 불리는 스페인 이비자에 위치한 유명한 비치 클럽. 전 세계에 각 분점을 두고 있으며 내가 머물렀던 푸켓, 발리에도 각각 하나씩 비치 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 유럽에서 오래된 가문들, 혹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은 종종 새끼 손가락에 가문의 반지들을 끼곤 한다. 그리고 아주 분하지만(!) 이는 남자들만 물려받을 수 있다.


동남아스러움만 가득할 것 같은 푸켓이지만 알고 보면 그 어느 대도시에 가져다 놓아도 뒤지지 않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장소도 많은 그곳. 물론 주 타깃층은 부유한 유럽 손님들

"못 찾을 래야 못 찾을 수가 없었어. 워낙에 눈에 띄여야지. Banker wanker(뱅커들을 속되게 칭하는 말)들이라고 아주 온몸에 써붙이고들 나타나셨네?" 한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해 가며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라고는 했지만 아직 한낮의 강렬했던 더위가 남아 있어서인지 공기는 후덥지근한 땅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테이블에 있던 여덟 개의 눈이 소리의 근원지를 쫓았다. 눈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웃으며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며 밥 잘 사 주는 영국 오빠는 반갑게 팔을 벌려 맞이했다. 그런 나와 오빠를 나머지 일행들은 호기심과 경계심 중간 즈음의 눈빛으로 관찰했다.


"여기는 지연이야. 아니, 제니퍼라고 소개해야 하나? 홍콩에서 만난 친구고 현재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있어.” 내 크나 큰 단점 중의 하나가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직업상, 그리고 홍콩에서의 라이프 스타일상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내 뇌는 아주 교활하게도 선택과 집중을 극대화하여 내게 도움이 될 이들과 아닌 이들을 빠르게 구분해 후자에 속하는 이들의 데이터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혹은, 그 동안 들이 부은 알콜로 인해 그저 기억력이 쇠퇴해 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이들을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어차피 곧 잊어버릴 이름들이었지만 하나하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한 명은 모스크바에서, 한 명은 상하이에서 펀드를 운영한다는 독일인 둘, 태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핀란드인 하나. 독일인 둘은 고등학교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지연? 제니퍼? 어떤 이름을 더 선호해요?" 상하이에서 일한다는, 내 왼쪽 편으로 앉은 펀드 매니저가 얼굴에 웃음을 띄며 물어봤다.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쪽으로 불러요. 어느 쪽도 상관없어요" 그에게 싱긋 웃어 답을 했다. " 좋아요, 그럼 제니퍼라 부를게요. 정말 애석하게도 전 아시아 사람들 이름을 잘 못 외우는 아주 못난 유럽 사람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여행 중이라고요?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일을 하시네요. 그 전에는 어떤 끔찍한 일을 하셨나요?" 비꼬는 듯하면서도(sacastic) 그 안에 유머와 자신감,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의도를 아주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그런 화법. 내가 이상한 건가, 사실 난, 이런 어찌 보면 재수 없으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남자들의 화법을 좋아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내 친구들은 남자들이 나쁘다고 욕하기 전에 나쁜 남자들을 좋아하는 네 취향을 좀 바꾸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너 어디 한 번 얼마나 잘하나 보자, 모든 이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기에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되면서도 난 이 정도 배포는 있어요 라고 그 줄타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뭐 그런 거.


우리가 아는 상그리아에 남국(南國)의 향을 더한 카페 델 마(Cafe del Mar )의 트로피칼 상그리아. 음식뿐만 아니라 칵테일 수준도 꽤 높은 푸켓에서 몇 안 되는 곳

"은행에 다녔어요"로 이어지는 내 자기소개에 간단한 통성명 이후로 관심이 시들해졌던 이들의 이목이 다시금 나에게 집중이 됐다. 내 셀프 소개와 더불어 영국 오빠의 나에 대한 자잘한 칭찬들이 더해졌고, 그 이후 몇 번의 후속 질문들이 오고 가는 사이 나는 확연히 달라진 온도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그들의 무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항상 이런 . 금융권에서 일한다는 자기소개는 어떤 자리에서도, 특히나 금융권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더더욱이 금세 인사이더가 되는 와일드카드의 역할을 했다. 편리했다. 그리고 홍콩에서 난 이를 자랑스럽게까지 느끼기도 했었다. 어딜 가나 당연히 아무 어려움 없이 받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뭔가가 변했다. 그들의 눈에 띄게 달라진 호의적인 태도에 뭔지 모를 반항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내가 금융권에 다녔다고 하지 않았더라도 과연 그들은 이렇게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쏟았을까.


"하긴 아까 들어올 때부터 알았어요. 푸켓에 이렇게 우아하게 입고 다니는 레이디들은 몇 없거든요" 건너편에 앉은 핀란드 남자가 다정스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핀란드와 푸켓 사이에서 무역업을 하는 남자였다. 푸켓에 온 지 2년 여 정도 되었다고 했고, 1~2년 내에 다른 곳으로 옮겨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했다. 유일하게 내 홍콩 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내가 4년 전에 약 2주 동안 북유럽(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여행을 했고 그 시작이 핀란드였다고 하자 곧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였다. 


자리에 오기 전 오늘 저녁 자기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게 어떻겠냐는 영국 오빠에게 미리 메시지로 드레스 코드에 대해서 질문을 했더랬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관례일 수 있으나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의 저녁식사나 하우스 파티 등에 초대받았을 경우에는 드레스 코드에 대해 혹은 어떤 성격의 파티인지 (캐주얼한 바베큐 파티인지, 샴페인이 오가는 소위 말에 팬시(fancy)한 자리인지 등등)에 대해 미리 물어보는 것이 좋다. 모두가 제대로 멋을 내고 나온 자리에 티셔츠에 숏츠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으니 말이다. 혹시 잘 차려입고(dress up) 가야 하냐는 내 질문에 ‘어느 정도는?’이라고 답하는 걸로 보아 꽤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는 듯했다. 하늘하늘 한 기모노 스타일의 롱 랩 드레스에 약간 치렁한 귀걸이를 하고 입에는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편하게 몸에 감기는, 그리고 통풍이 매우 잘 되는(!) 옷이면서도 화려한 패턴이 들어가 이 자리를 위해 신경을 쓰고 왔다는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옷이었다. 홍콩에서도, 뉴욕 여행을 갔을 때도, 화장실에 있던 여자들에게 항상 어디서 산 옷이냐며 질문을 받곤 하던 옷이었기도 했고.


오빠들과의 저녁자리에 입고 갔던 기모노 풍의 드레스. 간편하게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려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이런 화려한 패턴의 롱 드레스를 자주 입는 편이다

예전에 스웨덴 남자 친구와 교제를 할 때 매 겨울이면 그의 아버님이 소유하고 계시는 푸켓의 수린 비치(Surin beach) 소재 리조트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여를 머물고는 했었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꽤 근사한 저녁식사가 있는 자리면 그 나이의 여자 아이들이 그러하듯 으레 짧고 타이트한 미니 드레스를 입곤 했다. 지금 보면 도대체 이 손바닥 만한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녔나 싶지만 글쎄, 어렸었으니까. 


사족으로 당시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벽 한 면을 온갖 디자이너 명품 백으로 가득 채우실 정도로 패션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었는데 자신과 쇼핑을 같이 다니고 다닐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아쉬워하셨었다. 당시 남자 친구네는 삼 남매였는데 첫째가 내 남자 친구였고, 둘째가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둘째 여동생은 꽤나 보이쉬한 취향을 가졌었고 여성스러움과는 한참 떨어진 트레이닝복만을 고수했더랬다. 그리하여 당시 나를 매우 아꼈던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쇼핑을 나설 때면 종종 그 당시 내 취향의 옷들 - 짧고 타이트한 드레스나 미니 스커트들 -이나 가방, 화장품 같은 것들을 사주시곤 했었다. 네가 입으면(혹은 들면) 잘 어울릴 거 같아 생각나 사 왔다며. 물론 모든 옷이 내 맘에 든 건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고급 취향에 따라 하나 같이 비싼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들이었다.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푸켓에서 지낸 지 2주일 즈음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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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들, 그리고 다른 스웨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가던 길에 남자 친구의 동생들이 세븐 일레븐에 들리겠다며 편의점 앞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리조트가 꽤 외진 해변에 위치한 지라 - 당시만 해도 수린 비치는 지금처럼 개발이 되기 전이었다 - 편의점에 들른 김에 너도 나도 필요했던 물건을 사겠다 들어갔지만 난 딱히 필요한 게 없어 그냥 밖에서 기다리겠다 했다. 편의점 밖에 서서 한참을 핸드폰 메시지에 빠져있었는데 갑자기 고개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에요?" 고개를 들어보니 술에 취한 듯한 호주 남자 둘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저한테 말하는 거에요? 뭐가 얼마냐는 거에요?" 내 질문에 그들은 낄낄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당신이랑 오늘 밤 재미 좀 보려면 얼마냐구요" 타이트한 미니 드레스에 힐을 신고 편의점 앞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아시아 여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이야기니 한국 사람, 태국 사람의 개념이 거의 없을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나를 몸을 파는 태국 여자로 본 것이다. "당신 둘이 일 년에 버는 돈을 다 합쳐도 못 낼만큼 내야 할 텐데 그럴 돈 있어요?"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르르 떨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 절묘한 순간 스웨덴 남자 친구가 밖으로 나왔고 상황을 보더니 대충 눈치를 채고 그들에게 용건이 있냐고 외치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물러나겠다는 표시로 손을 가슴 치로 들어 올리며 바로 자리를 떴지만 난 그때 당한 치욕을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그 이후로 나는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절대로 짧은 미니 원피스를 가져가지 않는다.


유럽 오빠들과 했던 식사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고 또 제일 좋아한 음식. 태국 남부식 생선찜. 매콤 새콤 부드러운 것이 우리 입맛에도 정말 잘 맞는다! 추천!

"좋은 자리인 거 같아서 제 히피 옷은 벗어던지고 왔는데 잘한 결정인 거 같네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지연은 취향이 고급지거든. 덕분에 사귈 때 돈 많~이 썼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국 오빠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불만이라는 거야?" "누가 불만 이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휴, 잔소리 말고 뭐 먹을 건지나 골라" 금세 투닥투닥하는 우리를 보며 모두가 웃었다.


"그래서, 오늘 나한테 어떤 고급진 와인을 사줄 건가?" "내가 왜 너한테 사줘야 하는 건데?" "그럼 백수를 이런 식당에 불러내 놓고 지금 나보고 내라는 거야?" 메뉴를 보며 다시 투닥거리는 우리를 건너편에 앉은 독일 남자가 말렸다. "워워, 오늘 식사는 제니퍼 빼고 우리가 계산하는 걸로 해요. 백수한테 밥을 사라고는 할 수 없죠. 와인은 원하는 대로 맘대로 고르구요. 참고로 우리는 술 안 마셔요. 내일 아침에 크로스 핏(cross fit) 세션이 있거든요" "잠깐만요, 오늘 아무도 술 안 마셔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 묻는 나를 보며 영국 오빠가 대답을 했다. "아, 말 안 했나? 우리 전부다 2주간 트레이닝하거든.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마셔, 우리는 밤 11시 정도까지만 들어가면 괜찮아"


아시아에 있는 뱅커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 바로 휴양지에 가서 몇 주간 트레이닝을 받고 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제 그러하지만 외국 사람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홍콩에 있는 서양 외국인들의 경우 확실히 운동의 생활화가 되어 있는데, 실제로 날이 좋은 날이면 실내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들 하이킹이며 웨이크 보드며 실외 액티비티를 즐기느라 바쁘곤 했다. 사실 주말 뿐만이 아니라 주중에도 그 바쁜 시간을 짬짬이 내서 크로스 핏, 필라테스, 요가 등을 하고는 했고. 그런 와중에 틈틈히 나가 놀기까지 해야 하니, 정말 모두가 매일매일의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드레날린 정키(중독자들)와 사는 느낌. 내가 홍콩에서 항상 느꼈던 감정이었다.


뭐 하나를 해도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홍콩인지, 바쁜 삶 사이에서 운동의 욕구를 확실히 풀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휴가를 가서도 몸을 가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부터인가 푸켓 남부 지역에 이들을 위한 리조트 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휴가를 가서까지 그리 하는 인간들이 그렇게도 많나 싶지만 영국 오빠 또한 이번이 두 번째였고 항상 예약이 꽉 차서 가기 몇 달 전에 선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잠시 저녁 자리에 앉아 있는 유럽 오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이들은 모두 런던 금융권에서 일할 때 만났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어쩌다 보니 모두 아시아 국가들로 나와 일을 하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서로 날짜를 맞추어 푸켓의 이 트레이닝 리조트에서 같이 휴가(인지 훈련일지 모르는 것)를(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비행기 표에, 리조트 값에, 따로 나가는 외식값에, 이럴 거면 그냥 휴가 내고 집에 있으면서 하는 게 더 저렴하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휴양지에 나와 하면 더 마음도 잘 비워지고 집중도 잘 된다고 대답을 하는 그들을 보며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돈지랄도, 가지가지다.


유럽 오빠들이 머물렀던 푸켓 남부의 리조트. 객실이 모두  프라이빗한 빌라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의 24시간 내내 운동 프로그램과 함께 매끼 건강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트레이닝을 하러 왔다는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탄수화물은 철저히 배제된 메뉴들만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 하나인지라 와인 대신 트로피칼 상그리아 한 잔을 시켰다. 그들 또한 서로 오래간만에 만나서인지 처음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금세 대화는 일 관련 이야기로 넘어갔다. 요즘 어떤 펀드가 잘 되고 있으며 어떤 걸 새로 런치 하려 하며, 마켓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요새 상하이 마켓이 어떻고, 홍콩은 어떻고, 지난해 보너스를 받아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을 샀으며, 올해는 요트를 살 생각이라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홍콩에서의 나와는 달리 귀가 쫑긋해지지도 않았고 나도 꼭 성공해서 언젠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야심 찬 마음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재미없는 티비를 틀어 억지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제니퍼도 쉬는 김에 앞으로 하려는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 보는 거 어떻냐는 핀란드 오빠의 말에 "응, 뭐 나는 그렇게 투자할 만한 돈이 없어서. 퇴사 한 지 2주도 안됐는데 아직은 마냥 놀고 싶고"라고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한 모금 남은 상그리아를 쭉 빨대로 빨아 마시고 직원을 불러 한 잔 더 시켰다.


그때 나는 어땠었지. 끽해야 일주일 반 여의 백수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에서의 내가, 나의 삶이 저 멀리 아득하게만 다가왔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 의하면 -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도파민형 인간, 다니얼 Z. 리버먼 & 마이클 E 롱 지음/최가영 옮김 - 난 도파민이 타인들보다 많이 분비가 되는 형의 인간인 것 같다. 이런 도파민형 인간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충동심이 크고 현재에 대한 만족을 모른다는 것. 남들에 비해 앞서 나가는 걸 좋아하고 이를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성격도 이에 포함이 된다. 입으로는 불평을 하면서도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고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그 일을 성취하고 나면 자기 자신에게 큰 보상을 준다. 그것이 비싼 파티가 되었던, 명품백이 되었건, 요트가 되었건 어떤 형태로던 간에. 하지만 그 만족감은 아주 잠깐이다. 곧 이에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위해 눈을 돌린다. 내 이야기 같은데?라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도 도파민형 인간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어쩌면, 홍콩은 이 도파민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가 어찌하였던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바빠 죽겠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아니 더 매달렸다. 그리고 그 일이 마침내 (다음 일이 닥치기까지의 아주 잠깐 동안의 기간이었지만) 끝났을 때는 지인들을 불러 밤새도록 파티를 했다. 생일이라거나 보너스를 크게 받았거나 같은 축하할 거리들이 생기는 때는 그 흥이 최고치를 찍었다. 비싼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온 사람들을 불러 크게 파티를 열고 축하했다. 모두가 내 기쁨을 알 수 있도록. 비싼 돈을 들여 사치스러운 휴가를 가고 SNS에는 이를 자랑스럽게 올렸다. 하루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누가 봐도 철저하게 계획된 아름답고 퍼펙트한 자연을 풍경으로 하는 고급 리조트에 누워 있는 사진을 올리며 '이제야 문명에서 떨어진 이 아름답고 조용한 곳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았다'라는, 누가 봐도 뻔한 아주 가증스러운 겸손한 문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으며.


매일 저녁 해변을 걸어 호텔로 돌아갔다.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 천천히,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감사하며

그래서 나는 행복했나, 하는 것이다. 그런 휴가에서 다가와 카드값을 메꾸기 위해 다시 여유 없는 삶으로 돌아와, 괜찮아, 난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이니까,라고 자기 위안하지 않았었나. 지난밤 휘몰아치듯 부어 넣은 와인으로 인해 다음 날 머리가 깨질 듯한 숙취를 겪으면서도 그래, 어제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었었나,라고 자기 합리화하지 않았나. 이미 꽤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아니 누군가의 기준에 따르면 상당히 풍족하다 할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 항상 불안하고, 모자란 것 같고, 나보다 더 잘난 그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나, 정작 내 마음은 지독히도 가난하고 외롭지 않았었나, 하는 것이다. 그 많은 돈지랄을 하면서도, 결국 나에게 남은 건 무엇이었단 말인가.


워낙에 레드 와인 계열은 잘 마시지 못하는 데다 날도 더워 어느새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오빠들은 새로 나온 신형 요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이제는 쿠바산 시가 이야기로 넘어갔다. 시선을 저 멀리 바다로 옮겼다. 해가 떨어지고 어둑해지던 하늘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 저것 좀 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갑자기 외친 소리에 대화를 끊은 그들은 내가 가리키는 바다를 슬쩍 바라보더니 정말 아름다운 노을이라고 화답했다. 


그 날의 하늘.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던 그때. 그리고 그 순간, 설명하기 힘든 어떠한 존재가 나를 그 자리에 세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너무 오바스럽게 들릴까

하늘은 어느새 붉은빛을 넘어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또 눈 깜짝할 새 강렬한 빨강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와중에 인스타그램 생각이 났는지 핸드폰을 챙기는 건 잊지 않았고. 비치 클럽의 라운지를 지나 해변으로 나설 때 즈음에는 온 세상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탄성을 터뜨렸다. 순간 왠지 모를 감정에 북받혀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행복해. 지금, 정말로 많이 행복해. 원초적인 행복이 주는 짜릿함에 심장이 가슴 밖으로 터져 나올 듯 쿵쾅거리며 뛰었다. 고개를 돌려 얼핏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찾아 뒤를 돌아보았다. 입이 떡 벌어질 듯한 장관을 마주하고도 그 누구도 이 아름다운 노을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쿠바산 시가일 테니까.


술과 탄수화물이 없는 저녁식사는 10시도 안되어 일찍이 끝이 났다. 가는 길에 태워줄까라는 영국 오빠의 물음에 괜찮다고,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면 금방이라며 거절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럼 그렇게 하라며 별 다른 말 없이 그는 짧은 포옹을 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차를 향에 걸어갔다. 이제는 깜깜하게 땅거미가 내린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귀에 음악을 꽂는 것도 잊은 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냥 그렇게.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내 방으로 들어와 제일 먼저 에어컨부터 틀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벌레 떼들을 막느라 문이며 커튼이며 꽁꽁 치고 나가서 그런지 방이 꽤 후덥지근했다.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집어 들고 욕실로 향했다. 외출하기 전에 이미 샤워를 하고 나갔지만 해변을 걷는 동안 다리에 모래들이 붙기도 했고 살짝 땀도 났던지라 기왕 씻는 거 제대로 씻고자 긴 샤워를 하고 나왔다. 어느새 방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제법 시원한 기가 돌았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옷도 입지 않은 채 타월로 둘러싼 몸을 침대에 뉘었다. 테라스쪽 전면창을 드리운 흰 커튼이 에어컨 바람에 나풀거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 보았던 붉은 노을이 다시금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지금 이 순간에 이 자리에 서 있게 해 주셔서. 그곳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순수하게 그리고 아주 원초적인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셔서. 노을을 보며 들었던 무수한 생각들과 감정들이 다시 올라왔다. 


푸켓 10일 차. 마음속에서 이상한 꿈틀거림이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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