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치 May 23. 2020

쉬어가는 글

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 

여행을 결심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산 것이었다. SNS에서 쓰는 시간의 양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난 알아주는 기계치다. 10여년 전부터 아이폰을 고수하는 이유는 삼성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쓰는 유저 페이스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변화에 대한 저항감 때문이었고, 마찬가지로 아이폰 쓰는데 노트북도 맥북으로 바꾸라는 주변이들의 권유에도 꿋꿋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대학 때부터 써 온 삼성 노트북에 유저 페이스에 대한 로열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은 아이폰을 쓰면서 컴퓨터는 굳이 삼성을 고수하는 다소 기묘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노트북을 산 다는 행위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중 꽤나 강렬하고 획기적인 이벤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매장에서 이것 저것 시험 할 때 혹시나 그 사이 유저 페이스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얼마나 조마조마해 하는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새 노트북을 샀던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목적은 분명했다. 새 노트북, 새 출발, 새 글,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내가 이벤트를 몰고 다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견은 내 지인들 사이에서도 참 분분한데 아무튼 지난 10년간 바람잘날이 없는 홍콩 생활을 하면서 - 특히나 연애 면에서 - 지인들한테 항상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너는 너 이야기만 제대로 써도 굉장한 책 한권 나오겠다' 라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홍콩 사는 사람들이면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 란 생각에 그 말을 듣고 그냥 하는 말이구나 싶었는데 하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나의 삶이 홍콩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이 삶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삶을 보고, 아, 홍콩에 가면 저렇게 살 수 있구나, 저런 사람들과 어울리겠구나 라고 일반화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너무나 큰 환상을 갖지 않도록 정말로, 최대한, 솔직하게 글을 써야겠다, 라는 마음. 그래서 훗날 내가 내 글을 보고 아 저 때 난 저렇게 살았었지, 저런 곳들에 갔었지, 그런 사람들을 만났었지, 그리고 난 그 때 그런생각들을 했었지, 라고 기억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 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 글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그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름, 직장, 국적 등은 다소 바꿀 수 있으나,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내 인생에 존재했던, 그리고 내 기억에 남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들과 있었던, 그리고 내가 기록하는 모든 이야기는 내 버전이 이야기라는 것. 나는 나의 글이 그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혹시나 그들을 아는 당신의 그들에 대한 기억이 나와 다를 지라도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굳이 그들을 찾으려 애를 쓰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그들은 내 글에 출연을 하는 것일 뿐, 그들은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대들은 그들을 겪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왔던 그 어떤 인연도 부정하고 싶지도, 지우고 싶지도 않다. 어떤 식으로던, 그들은 나에게 남아있다. 그들은 현재의 나다. 그리고 난 아주 담담하게, 최대한 가감없이, 내게 일어났던 나의 이야기를 내 글을 읽는 그대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내가 바라는 건, 내 글을 읽으며 함께 웃고, 생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또 기뻐해줬으면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푸켓 이야기 이어 쓰려고 들어와 갑자기 남기는 글. 그리고 지금은 자가격리 5일 째. 이 글 쓰고 다시 원래 쓰려고 했던 글 다시 쓰러 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홍콩 가출기 #4. 돈지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