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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치 May 29. 2020

홍콩 가출기 #5. 혼자 놀기

밥 잘 사 주는 영국 오빠와 그의 친구들이 떠난 후 푸켓에서의 내 일상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혼자서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오히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 때 이 사람이 제발 나에게 신경을 좀 끄고 떠나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덧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는 데 보낸 것으로 기억하는 카말라 비치(Kamala beach)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푸켓 섬의 다운타운이라 생각할 수 있는 파통 비치(Patong beach)로 옮겨 갈 날이 밝았다. 


파통의 유일한 비치 클럽인 쿠도 비치 클럽(Kudo beach club) 맥주나 와인 한 잔 시켜놓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놀러 온 사람들은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난 어찌 보면 너무 무심하다 할 정도로 남의 생활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러니까, 딱히 나에게 해가 오지 않는 한 타인이 어떻게 살던 별로 상관을 안 한다. 아니다, 그냥 원래가 천성이 타인의 삶에 딱히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내 삶 하나 꾸려가기도 힘든데 굳이 왜 그래야 되나 싶기도 하고 이 때문에 난 평생을 내 가족과 친구들과 그리고 연인들에게서 '너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라는 핀잔을 들으며 살아왔다. 


원숙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이 시작이 되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이 것이 내가 평생을 두고 개선을 해 나가야 할 나의 크나큰 단점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한, 혹은 내가 그렇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타인의 디테일에 대해서 잘 기억을 하지 못(안)한다는 것. 그러니까, 생일이라던가, 타인의 스케줄이라던가. 이건 단순히 세심하지 못한 성격이라거나, 타인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내 갈길 만에만 집중하며 쿨(cool)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례함임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성격을 내 전 남자 친구들은 좋아했다. 나는 아주 드문, 생일과 크리스마스 이외에 그 어떤 기념일도 챙기기 싫어하는 아주 편한 여자 친구였으니까.


또 하나, 난 타인이 나에게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편이다. 물론 그런 행동은 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앞에서 살랑대고 뒤에서 딴짓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 물론, 내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런 행위를 목격하거나 혹은 건너 들었을 경우 그 사람을 내 인맥에서 가차 없이 쳐낸다. 안 맞는 사람이랑은 굳이 친해질 필요 없고, 친해지지 못하겠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 지난 홍콩 생활 10년이 나에게 가르친 교훈 중 하나이다. 내가 모두를 좋아하지 않듯, 만인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 그저 난 나와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생을 꾸려나갈 뿐. 물론 그로 인해 내가 신뢰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내 지인들은 너무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고, 조금은 영악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라 했지만 난 아직도 믿는다. 진심은 꼭 닿는다고. 누군가에게 나의 완전한 신뢰를 주었을 때 내가 잃는 건 없다. 내 평생의 인연을 얻거나, 삶의 교훈을 얻을 뿐.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어찌 보면 너무 순진무구해 빠진 이 구절을 난 아직도 굳건히 믿는다. 그래서 파통 비치로 옮겨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홍콩에 있는 몇몇의 친구들이 너 쉬러 갔다면서 결국 파티하러 간 거 아니냐는 메시지들을 보냈었다. 정말, 짜증 났다. 


누가 여기를 악명 높은(!) 파통 타운이라 생각할까! 파통 메인 스트리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분위기 좋고 한적한 곳들이 참 많다. 같은 파통도 즐기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내가 홍콩을 떠나기 전 왜 홍콩을 떠나냐는 질문을 하는 무수한 이들에게, 나는 내 성심 성의껏, 정말 내 진심을 담아 설명을 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얼마나 행복하지 않았었는지, 이것이 얼마나 나에게 큰 결정이었는지. 굳이 내가 보일 필요도 없는 나의 약한 부분까지 온전히 드러내면서. 그래서 그런 구구절절함에도 불구하고 저런 코멘트를 하는 인간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실제로 화도 냈다.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안 들었냐고. 그럼 그들은 내가 over-reacting을 한다는 듯이 대꾸를 했다. '농담이었어'라는 말을 덧붙이며. 


'농담이었어'라는 말만큼 제대로 사람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또 있을까. 우리 이제 십 대 아니지 않나. 굳이 들어서 기분 나쁠 말들을 왜 굳이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도 꼬였니, 그런 식으로 꼭 이야기를 해서 내게 적대감을 드러내야 할 만큼. 한심하다. 그런 말들 뒤에 숨는 그들이. 어차피 이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짜증남을 참아줄 이유도 없고, 그래서 그런 이들도 끊어냈다. 생각해보니 난 홍콩에서의 내 생활뿐만 아니라 이 여행을 통해 내 인간관계도 꽤나 정리를 한 듯 싶다. 


어찌했던, 난 파통에 파티를 하기 위해 간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도 구구절절이 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만인이 아는 사실이고, 그리하여 우리가 사람들과의 interaction이 없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면 불행함을 느끼는 건 아주 당연한 이치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던 터라(이 가출 이외에도 1년에 한 번은 길게 혼자서 장기 여행을 가는 스타일이었다) 난 그걸 막기 위해 내 푸켓에서의 한 달 중 파통에서의 여정 일주일을 넣었던 것일 뿐 그 누구가 그랬듯 광란의 파티를 하기 위해 파통 비치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근데 정말 재밌는 건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서 온갖 비난(?)을 받으며 간 파통에서도 난 딱히 사람들과 interaction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친구의 결혼식으로 홍콩에서 방문한 오랜 친구가 나와 함께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고 이에 이 친구가 나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난 파통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철저히 혼자 시간을 보냈고 또 그게 참 즐거웠다. 그렇게 지쳤던 걸까. 2주가 넘는 시간이 가도록, 그 어떤 사람들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난 그렇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지나가던 러시아 가족에게 부탁해 건진 인생 사진! 러시아 언니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찍어줬다. 여기 봐라, 저기 봐라, 다리를 꼬아라, 앉아라, 서라 지령을 해가며!

그래서 나에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난 푸켓에서 혼자서 정말 이것저것 많이 했다. 푸켓에도 차이나 타운이 있다는 사살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오래간만에 해변에서 벗어나(!) - 믿기지 않겠지만 섬에 오래 있다 보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와 고운 모래로 둘러싼 백사장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온다. 섬 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치스러운 마음이랄까 - 알록달록 벽화들로 가득한 차이나타운에서 문명의 맛을 달콤히도 느끼는 날도 있었다. 길 가는 이에게 부탁해 소위 말해 인생 사진이라 부를 만한 사진도 찍었고, 끝내주게 맛있는 태국 남부 요리도 즐겼다. 로컬 디자이너 샵에서 태국 감성이 가득한, 하지만 아주 힙하고 모던한 느낌의 기념품도 구입을 했고.


어느 날은 작정하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글을 썼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손이 가는 대로. 그렇게 글을 쓰며 지난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실제로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해변가에 앉아 있었지만 어느 날은 봄 내음 살랑거리던 뉴욕으로 가 있었고,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반듯하고 아름다웠던 코펜하겐에 가 있기도 했다. 혼자 있었지만 난 어느 순간 내 추억을 공유한 이들과 함께 있었고, 가슴 설렜고, 슬펐고, 또 기뻤고, 그리웠다. 


푸켓 남부에 위치한 럼(rum) 양조장을 방문한 날. 식민지 시대의 플랜테이션 농장 풍으로 꾸며진 이 곳에서 푸켓 유일의 럼 양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깃집의 손녀로서 아침식사로 갈비를 구워 먹는 집에서 자란 내가 할 수 있는 말인지 싶지만서도, 평소에 동물 인권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또한 학대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인간의 삶이 영위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사육과 도살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동물이 그 순간 가장 최소한의 고통을 받을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몇 년 전 아주 우연히 코끼리 쇼 코끼리들을 훈련하는 잔혹한 영상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왠지 풀만 먹으며 온순할 것 같은 동물이지만, 사실 야생의 코끼리들은 꽤나 난폭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그런 코끼리들을 구르게 하고, 두 발로 서게 하고, 인간을 등에 태워 트래킹을 시키기 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통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것. 이에 코끼리 쇼에 오르는 코끼리들은 대부분 아주 어린 나이에 잡혀 훈련을 시작한다고 한다. 말이 훈련이지 고문이다. 그 어린 코끼리를 몸을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우리에 가둬 몇 날 며칠을, 아니 몇 주를 굶기고 때리고 불로 지지는, 차마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문을 가한다. 이를 통해 코끼리는 원래 가지고 있던 야생성을 모두 잃고 인간을 보기만 해도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들 몸이 몇십 분의 일 크기밖에 안 되는 아주 잔인한 생명체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그 영상을 본 이후로 난 절대로 어떤 동물들의 쇼에도, 아니 동물원에도 가지 않는다. 다른 생명체의 영혼을 유린해 우리의 즐거움을 얻는 그 역겨운 행위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코끼리를 만지고, 먹이를 주고, 호수에 함께 들어가고 하는 경험을 어디가서 또 할 수 있을까. 코끼리 타지 말아요, 예쁘다고 어루만져 줘요 우리

그리하여, 이런 코끼리들을 구조해 보호하고 돌보는 코끼리 보호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주저할 것이 없었다. 하루 전 미리 방문 예약을 하고 간 그곳은 푸켓 시내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섬 외각에 위치한 곳이었다. 도착을 하자마자 이 시간대에 신청을 한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과 모두 마주 앉아 코끼리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먹이를 주고, 코끼리와 같이 수영을 하고 목욕을 하고 하는 등의 프로그램들에 참가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신혼여행을 온 커플도 있었고 가족들 단위로 온 이들도 있었다. 이런 곳에 가면 으레 혼자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 날 따라 혼자 참가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뻘쭘했던 시간도 잠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마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다가와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말을 걸어왔고,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겨 갈 때마다 매 번 다른 그 누군가와 다가와 말을 걸고 자신들과 함께 하자며 제안을 해 왔다. 그들은 혼자서 여행하는 내 스토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진심 어린 나의 설명을 열렬히 도 응원해주었다. 


그곳에서의 반나절은, 역설적으로 너무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되어 있지 않나(결국 이 곳도 관광지화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었지만 - 이후 실제로 Q&A 시간에 누군가가 그에 대한 질문을 했고, 우리는 그 프로그램 내의 코끼리들의 활동에 어떤 학대도 없으며 프로그램에 나오는 코끼리들은 그렇게 매일을 관광객들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순번을 정해 참여를 한다는 것, 이렇게 돈을 벌어서라도 더 많은 코끼리들을 구조할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드넓은 정글에서 말 그대로 자유로히 뛰어노는 코끼리들을 상상하는 내가 지독한 몽상가인 것일까 싶었지만서도 - 프로그램 자체를 떠나 전 세계에서 제마다 다른 목적으로 여행을 하는 이들을 만나고, 잠시나마 우리의 일상을, 인생의 작은 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푸켓, 너는 사랑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처절한 외로움에 흐느끼는 시간 또한 반드시 찾아온다. 내가 철저하게 의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아무리 즐겁고 신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고 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임을, 그리고 난 이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한 달여의 푸켓 생활을 마무리할 때 즈음에 난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혼자 있음이 꼭 외로운 것이 아님을, 나 자신에게도 나 혼자만 있어야 할 휴식을 주어야 함을, 그래야,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나와 함께할 누군가가 없다고 해서 급격하게 불행함을 느끼지 않으며, 누군가를 찾아야 행복할 수 있는 insecure 함을 극복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가 큰 용기를 갖고 내 내면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온몸으로 부딪힐 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푸켓에서, 어쩌면 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고 돌아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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