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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한가지 Apr 05. 2020

탈중심의 민주주의 도시, 세종은 어디에 있는가?

폐쇄적이고 파편화된 세종시



 지난 8월 1일, 세종시에 방문하였다. '대전에서 한 뼘 세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도시 간의 거리는 지척이다. 대전에서 출발한 지 30분, 세종 행정중심 복합도시에 이를 수 있었다.


밀마루 전망대에서 본 세종시 전경

 지리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높은 곳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아래에서 미처 볼 수 없던 것을 보여주는 데 그 모습이 사뭇 황홀하기 때문이다. 밀마루 전망대는 세종시가 갓 부지를 확보하고 기초 공사가 시행됐을 때 처음 지어졌다. 아파트 25층 정도의 높이로 당시에는 건설 부지를 둘러보기에 적합했으나,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지금으로선, 도시의 전경을 보기란 아쉬운 일이다.

 도시의 전경을 얘기했으니, 잠시 도시를 보는 2가지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나는 위 사진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전체적인 전경을 살피는 것이다. 전경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주요 도로의 짜임새나 주거지와 상업지의 배치, 자연환경의 조화 등 도시의 대략적인 개관과 그 규모를 볼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차를 타고 가면서 최 외곽지역부터 중심지까지를 눈으로 빠르게 살피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도시를 보행하는 것이 와인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라면, 이 경우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수평적 관점에서 비교적 빠르게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파악할 수 있다.

 

 다시 세종시로 돌아가자. 세종시를 두 번째 방법으로 살폈을 때, 필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영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평범한 자연세계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메트로폴리스는 극적인 효과를 준다.


 영화 '주토피아'에서는 열차를 이용한 극적 효과를 잘 활용하고 있다. 평범한 자연 세계에서 '다리'를 이용해 메트로폴리스로 진입하는 과정은 도시에 대한 유토피아적 느낌을 극대화시킨다.

 세종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산과 들판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고속도로에서 평지에 나타나는 거대한 신도시의 모습은 충분히 멋스럽다.

세종시 홍보관에서 본 세종시의 전경

72.91㎢의 광대한 면적과 50만 명에 달하는 수용인구, 45조 7천억 원의 건설 비용이 말해주듯 세종시는 단일 신도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세종시는 가운데를 비운 환상형의 구조를 보이는 민주주의의 도시로 계획되었다. 중심부의 땅은 비워 공원으로 조성하고 주변은 도시로 둘러 세워 어느 한 곳이 중심이 아닌 서로에게 평등한 도시구조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른바 탈중심의 도시. 이는 특정한 랜드마크가 중심이 되는 근대적 도시에서 벗어나 구조적 개념의 현대 도시를 실현하는 일이었다.

 도시학자의 이론과 외국의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법한 탈중심의 현대적 도시를 방문했으니 필자의 감회는 특별하다 못해 들뜨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종시 들어서자마자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세종시는 환상형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이 도시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우리나라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는 세종시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었다.


정부 세종청사의 조감도, 모든 건물이 연결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계 당시,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태의 정부 세종청사는 유기적이고 전통적인 곡선미가 반영된 건축물이었다. 건물을 경사지게 하여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올라와 공중정원을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내부 또한 막힘없이 개방적이고 유기적인 건축물이었다. 도시의 경관 또한 고도제한과 스카이라인의 다변화 정책을 통해 자연과 조화되고 다채로운 도시경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듯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과 부드러운 지형의 선을 살리기 위한 도시계획은 전통적인 도시미의 복귀와 함께 획일적이고 무관심한 건설의 산물인 대단지 아파트로 가득한 우리나라의 도시경관에서 탈피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기 설계에서 수많은 수정을 거친 세종시의 실체는, 유기적이어야 할 청사를 부처마다 절단하였다. 철창과 바리케이드로 접근을 막아서 설계 의도는 결박되었고 건물의 형태는 겉돌았다. 건축물의 고도제한은 해제되고 스카이라인의 다변화는 무시되었다. 결국,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은 어디서나 보던 폐쇄된 공동체이며 대형 건설자본의 결과물이 되었다. 새로운 공공시설들은 저마다 튀는 모습으로 통일성이 없으며 차량이 우선이 된 도로는 보행체계를 계속 끊고 있었다. 즉, 일반적인 한국의 신도시 풍경과 다름없었으며 우리나라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반복되었다.


 대단지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는 관리와 유지의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증대시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Gated Community(외부인 출입제한 주거지역)’의 형태가 도시의 전체적인 거주형태를 획일화하고 파편화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며 세종시도 이러한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세종시는 여전히 건설 중이다. 대학과 기업이 들어선다고 했고 아파트는 계속 지어지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종시에서 본래 추구하던 가치를 복귀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도시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지만, 기존의 우리나라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세종시를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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