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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Sep 09. 202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023 FIBA BASKETBALL WORLD CUP

농구 월드컵이 한창이다. (결승만을 남겨두었으니 사실 한창이 아니고 끝물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축구 월드컵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론 언제나 예선에서 결승으로 향할수록 보는 재미는 오히려 떨어진다고 느끼는데 아무래도 평소 접하기 힘든 다양한 나라의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신선함은 점점 사라지고 익숙한 선수들의 힘싸움으로 귀결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대회는 개인적으로 넘쳐나는 시간 덕분에 과거 그 어떤 국제대회 때 보다도 여러 나라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팀마다 개성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나라들이 기본적으로 3점을 먼저 노리고 그로 인해 생긴 빈 공간에서 2점을 노리는 농구를 한다는 것에 놀랐다. 스테픈 커리의 Ruin the Game 이후로 이것이 농구의 기본 개념으로 결국 자리를 잡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모든 팀의 모든 선수가 3점을 던지는 기이한 현상을 보았고 대부분의 팀들이 정통 센터의 출전시간을 소수로 가져가고 있었다. (루디 고베어의 프랑스 정도만이 예외였는데 충격적으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를 맛보았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역시 NBA 출신 선수들이 자신의 고국 또는 귀화한 나라의 대표로 출전하여 팀을 이끄는 모습인데 요르단 Lefty Kobe 론데 홀리스 제퍼슨, 필리핀 ‘조던’ 클락슨, 개명까지 한 중국의 카일 엔더슨(대표팀에서도 롤플레이어로 뛰다니…맞다, 우리도 라건아로 개명한 라틀리프가 있구나!) 등을 보는 건 경기 결과를 떠나 흥미로운 요소였다. 요나스 발란슈나스(리투아니아), 보그단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 유타 와타나베 (일본), 데니스 슈로더(독일) 등 NBA 선수가 완전체로 국대에서 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축구도 그렇지만 이제껏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선수를 발견하는 것은 월드컵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라트비아의 선전이 인상 깊었고 그중 55번 Arturs Zagars가 기억에 남았다.


일본의 선전은 놀랍고 배 아프고 멋있고, 그야말로 만감을 교차하게 만들었다. 이 얘긴 너무 많은 농구인들이 분석하고 말하는 부분이어서 첨언 없이 패스를 하고 싶다. 일본은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다. 우리 남자농구는 1996년 올림픽 이후 출전을 못하고 있다. 2024년 파리 대회에도 참가를 못하니 올림픽에 못 나간 지 30년을 넘어서게 된다. 일본은 큰 성과를 냈지만, 그 외 아시아 팀들 대부분은 여전히 전반적으론 세계무대의 벽이 높음을 한번 더 실감했다. 신체조건의 한계, 농구에선 그것이 더 크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사실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부분의 팀들이 외국출신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한 약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던 당시에 이와 관련하여 쓴 글이 있다. 귀화 외국인 선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의 글이었는데 지금은 우리도 귀화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상황에서 그때와 지금 한국농구의 위치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며 그 글을 올려본다. (결코 새 글을 쓰기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데 그 글의 첫 문장부터 충격이다. 참을 수 없는 태생적 게으름)




20130916 외국인선수 귀화논쟁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아주 오랜 시간 글을 쓰지 않았다.

한 때 그저 재미로 글을 쓰다가 정말로 진지하게 글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난 뒤 내게 글쓰기는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내가 표방하던 내 글의 컨셉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전문적인 농구이야기’인데 사실은 내가 쓴 글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책임도 물고 싶지 않아서 나름 보호막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 주목받고 싶은 욕구는 나의 글이 지극히 공개적이고 전문적인 평가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에 보이도록 만들어 버렸고 실제로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아주 잠깐, 불러일으키게끔 하였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에서 나름 재미를 느끼고 나니 이후엔 더 재밌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말았다. 바빠서도 아니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머릿속엔 이렇게 저렇게 스쳐간 농구이야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 나는 다시 무언가를 쓰려고 한다. 끝낼 수 있을까를 두려워하면서...


한국 농구가 16년 만에 세계농구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이후 국가대표 농구경기를 보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역대 최악의 프로농구 시즌이라 해도 무방할 한 해를 보내고 난 직후의 성적이라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결국엔 터져버린 승부조작사태로 인해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완전히 외면받을 위기에 있던 농구가 조금이라도 더 화자 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아시아 선수권에서 대학생들이 맹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준 유재학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수들이 감독의 기대이상으로 뛰어 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금번의 결과가 없었다면 대학농구가 이처럼 주목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민구, 김종규, 두경민의 프로진출도 기대가 되고, 이종현, 최준용, 천기범 등이 앞으로 어떤 선수로 자랄 것인가도 사실 매우 기대가 된다.


이 와중에 뜨거운 감자는 단연 외국인 선수의 귀화 추진 이슈다. 아시아 선수권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귀화 외국인 선수를 통한 전력 상승효과를 누렸다. 귀화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한 나라 중 기억나는 나라는 이란과 한국, 중국 정도다. 인도도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이란과 한국이 3장의 세계선수권 진출권 중 두 장을 따냈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이란은 쉽게...? 한국은 어렵게...


능력 있는 장신 선수가 없다는 것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의 한국농구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유의 핵심이 높이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장훈과 김주성으로 야오밍의 중국을 이긴 적도 있다. 전성기의 서장훈이 지금 KBL에서 활약하는 용병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을까? 서장훈의 전성기를 언제로 보아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삼성전자에게 혹독하게 두들겨 맞고 목에 보호대를 차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서장훈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나는 기억한다. 한국농구에 염증을 느끼고 미국에 갔었던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연세대시절 서장훈은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선수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한기범이 서장훈을 상대할 만한 선수였다고 기억한다. 그것은 한기범에게 뛰어난 슛감각과 기술, 그리고 긴 팔을 이용한 수비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김유택이라는 골밑의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기범이 김유택의 조력자란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한국의 로버트 패리쉬, 케빈 멕헤일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더블포스트였다.



한기범과 김유택이 활약하던 시절.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우린 서장훈을 보았고 김주성을 보았다.

아쉽긴 해도 NBA에 진출했던 유일한 한국인 하승진이 있다. 김주성보다도 나이가 많은 에릭 산드린은 이름을 이승준으로 바꾸고 동양인으로선 상상도 못 할 덩크를 여전히 작렬시키고 있다. 2년 전에는 오세근이 프로에 들어와 신인왕과 챔피언전 MVP를 차지하며 KGC에 우승을 안겼다. 올해는 김종규가 KBL의 문을 두드린다. 일각에선 대학교 1학년 이종현을 당장 프로에 진출시켜야 한다고 난리다. 한국 농구는 그 혹독한 용병의 골밑 지배 속에서도 끊임없이 장신 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이제는 그 수가 적지 않아 국가대표를 구성한다면 3에서 5번을 모두 2m 이상의 장신으로 꾸밀 수 있으며 적어도 2번까지는 190대의 선수들로 구성이 가능하다.


서장훈 김주성 이승준 하승진 이종현 김종규 최진수 오세근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문제는, 큰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만 그중 잘 키워진 선수를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귀화한 장신의 흑인선수들 덕택에 단기간에 전력이 급상승한 국가들을 아시아 선수권에서 봤는데 우리도 누릴 수 있는 이득을 어설픈 국수주의로 포기한다는 건 요즘 세상에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남들이 한다고 우리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외국인 선수 귀화 추진은 한국 프로농구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가 한국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조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깊은 애정을 느껴서 귀화를 결심하게 되었으니 이를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닌, 현재 KBL에서 해마다 시즌 전력 보강을 위해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는 과정을 동일하게 국가대표에도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말한다면 나는, '스포츠팀이라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본래의 목적을 제쳐두고 추구해야 할 목표는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성적으로 압박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논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쉽고 넓은 길이 아닌 끝이 안 보이는 좁고 험한 길을 택하여 본래의 순수한 목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일이며 그것은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과 그들을 응원하는 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인 것이다. 성적이 좋지 못할 땐 기대도 없다가 좋은 성적을 거두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 나온 얘기일 것도 같다. 능력 있는 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발탁한다면 보다 쉽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보다 쉽게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 자의든 타의든 농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된 국내의 빅맨들 역시 보다 쉽게 자신의 진로 변경을 결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이 실제가 되면 그땐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지금의 귀화선수 논쟁은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스포츠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농구계에서는 귀화 외국인 선수가 그간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던 다소 생소한 논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어색한 일도 아닌, 바로 가까운 일본, 그리고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 농구계, 아니 당장 아시아 농구계에서 거두고 있는 보잘것없는 성적에는 어찌하여 집중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내 최고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유재학 감독도 외국인 선수 귀화에 찬성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씁쓸했다. 장신의 흑인 선수 없이도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획득하는 놀라운 지도력을 보인 감독에게서 나온 발언에 힘이 실려서일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귀화 선수 영입에 대해 적극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국제대회 출전에서 느낀 성적의 압박과 최근 몇 년간 퇴보를 거듭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한국농구의 입지를 뼈저리게 느낀 장본인이기에 그의 발언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금번의 성적이 없었다면 나 같이 농구에 미친 사람 빼고 누가 시즌 개막도 안 한 농구이야기를 하고 있었겠는가? 그래도 이러한 논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하며 그 과정 중에 좋은 방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한국 농구의 미래를 밝은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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