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우 Jan 15. 2024

숨길수록 취약해지고, 드러낼수록 강해진다

가장 속도가 빠른 오빠와 가장 속도가 느린 동생의 이야기


"여보, 작은 애도 성장호르몬 검사 한번 해보는 게 어때?"


큰 아이를 데리고 한 달에 2번씩 대학병원을 가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에이, 작은 애는 그리 작은 편도 아닌데 굳이?"

"매번 애들 둘 데리고 병원 다니니까, 가는 김에 한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 그럴까...."



남편의 권유에 정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받아 본 작은 아이의 성장판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따님의 뼈 X-ray 사진을 봤는데요,

  성장 속도가 또래보다 너무 빠릅니다.

  이정도 속도면, 따님은 150cm정도까지만 크고, 더이상 키가 자랄것 같지 않아요."


"네, 150cm요?"


"네.............."


"그,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고,

 계속 이 속도로 뼈가 성장한다면, 따님은 성장을 늦추는 주사를 맞아야해요"


온 몸이 얼어붙던 순간을 잊을 수 가 없다.


큰 아이는 성장속도가 너무 느려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있는데

작은 아이는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성장억제주사를 맞아야한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남매의 극과 극인 상황에 압도되어버린 나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엉엉 울고 말았다.




그 시기에 나는

'진로와 소명연구소' 정은진 소장님이 진행하시는 '온북코칭'에 참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모임에서는 항상 '자기에 대입한 책 읽기'를 하는데,

결과가 나온 당일이라, 채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나는

독서모임에서도 울먹거리며 나의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ZOOM 화면을 통한 비대면 만남이었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참가자분이 내게 말을 건냈다.


" 아구.. 너무 걱정말아요. 

  그거 저희 딸도 맞았는걸요?

  아무 부작용 없이 잘 지나갔구, 지금 저희 딸 또래와 성장 속도가 잘 맞춰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큰 아이랑 상황이 맞물려서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지시는거 잘 압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억장이 무너지던 마음이,

'내 딸도 맞았어요. 아무 이상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란 한마디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사실 나는 큰 아이가 본인이 주사 맞는 사실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기에다 '오늘 OOO를 했고, 주사를 맞았다"라고 쓰기도 했고,

친한 어른들을 만나면 "제가 맨날 주사맞는다고 얼마나 힘든데요"라며

푸념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아들아, 너 주사 맞는다고 밖에 말하고 다니지마. 

  말하고 다녀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라고 말했고,

아이 그 때마다 내게 의아한 얼굴로 "왜?"라고 물었다.


"너 성장 주사 맞는다고 하면, 애들이 또 그것 갖고 놀린단말이야"


아이가 입을 상처들을 미리 보호하는 냥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수치심'에서 나온 '갑옷의 말'들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키가 작아 늘 첫째 줄에 앉았고, 

155cm의 작은 키는 늘 내게 '컴플렉스'였다.

그리하여 '하이힐'은 성년이 된 나에게 '자존감 상승의 제 1도구'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도 나처럼 키가 작자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수치심의 프레임'을 씌워

'키가 작은 것은 부끄러운 것이야'라는 명제를 아이에게 심어버리고 말았다.



헌데,

독서모임에서 들은 그 한마디가

'내 딸도 맞았어요. 아무 이상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란 한마디가

나의 철통같던 갑옷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눈으로만 읽던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가면'이라는 책이 그제야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 우리는 취약성으로부터, 상처 입고 무시당하고 
실망할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갑옷을 입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무기로 사용했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용기와 목표의식을 지니고
관계 속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다시 취약해져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엄마를 '거울'처럼 비춰주고, 성장시켜주기 위해 찾아온 보물이라더니

역시나 그 말이 꼭 맞았다.


가장 속도가 느린 아이와

가장 속도가 빠른 아이 덕에

나는 두터운 갑옷과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고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니

내 안에 다짐이 생겼다.

나와 같은 '취약성'을 가진 엄마들이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게 돕고 싶다고.


숨길수록 취약해지고, 드러낼 수록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함께 살아내자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몸매에 상관없이 나의 몸을 사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