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주사와 씨름하는 아이
"엄마, 나 이제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어"
주사를 맞은지 2주일째 되던 날, 아이가 결연한 눈빛을 내보이며 말했다.
올해로 11살이 된 아이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키가 작던 아이.
영유아검진에서 늘 '키가 작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 대수롭지않게 흘려들었던 것은
'애들은 클 때되면 다 큰다'라는 통념때문이었다.
그저 또래보다 키가 조금 작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은 초등학교에 진학 후 가끔 탄식섞인 말을 내뱉곤 했다.
"엄마, 나도 OO이처럼 크고 싶어..............."
부루퉁한 얼굴로 볼맨 소리를 해대는 아이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나는 장난스레 아이의 머리를 부스스 헝클어트리며 말하곤 했다.
"걱정마, 곧 클거야.
넌 밥도 잘 먹고, 누구보다 빠르잖아. 그러니 어느 순간에 팍~ 커버고말걸?!!
전래동화에 나오는 '키크니'있지?
걔처럼 다리가 엄청나게 길어져버려서 사람들이 한순간에 놀라게 될거야!"
엄마의 희망어린 반응에 '그래, 금방 클거야'로 수긍하던 아이는
학년이 바뀌어갈 때마다 원망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엄마, 나 우리 반에서 제일 작아. 여자애들보다 더 작다구!"
"엄마 말처럼 밥도 많이 먹고, 우리 반에서 달리기도 제일 빠른데
난 왜 이렇게 계속 작은거야!?""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이의 볼맨 소리에 나도 점차 마음이 쓰이던 어느 날이었다.
여자아이에게 신체 중요부위를 발로 차여 돌아온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을 통해 가해학생의 부모님께 사건을 알리고 쉬이 끝날 줄 알았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어떤 날에는 구내식당에서 어떤 친구가 던진 컵에 맞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태권도학원 친구에게 돈을 삥을 뜯기기도 했다.
태권도에서 돈을 빼앗긴 날은 너무 속상해서 또 가해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본인의 아들 또한 왜소해서 동급생들에게 엄청 괴롭힘을 당하는데,
설마 자기 아이가 다른 애한테 그리 할 줄 몰랐다며 사과를 했다.
일련의 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나 또한 마음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시형님이 건내던 몇 번의 권유가 기억나기 시작했다.
"동서, 종합병원에 가서 성장판 검사 한번 받게해봐"
그간은 나 나름대로
'전 집밥 위주로, 자연육아 해요,
인위적인 건 사양합니다'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고)
'네, 조금만 더 있어보구요'란 말로 방어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결국 '성장판 검사'를 받았고,
'성장 호르몬 수치'가 정상적으로 분비가 되지않는다는 결과에 따라
아이는 작년부터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1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이는,
매일같이 제 맨 살갗을 찌르고 들어오는 주사바늘에
어느 날은 '아파 아파 '하며 서럽게 울었다가,
어느 날은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가,
또 이내 '이제 그만 좀 맞고싶다'며 엉엉 울어버리는 순환을 반복 중이다.
매일 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의 마음을 매만지는 일,
'나도 오빠처럼 주사맞고 키 크고 싶다'며 징징대는 작은 아이의 마음을 보듬는 일.
요새 우리 부부의 가장 큰 화두다.
*엄마한테 편지 좀 써달랬더니,
난데없이 폰케이스를 벗겨
편지를 써주는 독특한 아들.
사랑고백의 말미에 '주사'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아이에게 '주사'란
언제나 큰 이슈이다. 그에게 '주사'가
결코 트라우마로 작용하지 않도록
주사의 날카로움을 뛰어넘는 따스한
눈빛을 전달하려 엄마인 나는 오늘도
열심히 성장·수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