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몽정파티를 하다
엄마.
아침에 일어났더니 팬티에
하얀 게 묻어있지 뭐야
올해 초등 6학년이 된 아들이 대뜸 말을 꺼냈다.
'헙, 올 게 왔구나'
올해 초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성교육을 시작합니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책 초반부터 젠더 감수성을 엄청나게 흔들어대는 책이었고
조금 더 읽어나가자 '남자아이의 몽정'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아이의 첫 몽정 시 '몽정 파티'를 추천한다고 했다.
몽정파티?
몽정파티라니.. 여자 자매와만 커온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남편과 아이에게 말했다.
"자기야, 아이가 첫 몽정을 했을 때
여자아이가 첫 생리를 하는 것처럼 축하해줘야 한다네~"
"아들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팬티가 축축하다거나 하면 엄마에게 꼭 말해주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신호와 마찬가지라 격하게 축하해줘야 한대~
우리 맛있는 거 잔뜩 먹으면서 파티하자~"
이 말을 흘린 지 고작 두어 달 밖에 안된 것 같은데
오늘 아침 아들에게서 몽정 소식을 들은 것이다.
8년 전이었으려나.
아이의 유아시절 도서관에 자주 다녔는데,
신간코너에서 우연히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그림책을 읽었더랬다.
표지의 쨍한 그림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꺼내 읽었는데
헙!! 허~~ 업!!!!!!!!
적나라하도록 사실적인 표현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이거 유아 그림책 맞아???'
당황스럽고 놀라운 마음에
나는 180도로 쫘악 펼쳐 읽던 책의 각도를 120도, 90도, 45도
점점 각도를 좁혀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책.
우연히 몇 년 전 뉴스를 보게 되었고
내가 본 그림책이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논란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체적인 성행위 묘사와 선정적인 그림이 포함됨에 따라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성적 호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한데 해당 그림책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53년 전인 1971년에
덴마크에서 출판된 성교육 도서라고 한다. 그것도 3세 이상 유아를 위해.
사실, 나 또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너무나 당혹스러웠지만
운 좋게도 대학원에서 성교육 과정을 이수하면서
'성'에 대해 많이 깨어나게 되었다.
'성'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닌
'남녀 간의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 이자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성 = 야하고 은밀한 것'이 만연해있지만 말이다.
13살밖에 안된 아들 친구조차 우리 집에 꽂혀있는
<WHY 시리즈: 사춘기와 성>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우와, 이거 우리 학교에 있는 제일 야한 책인데~~"
OO아~ 너 이 책 좋아해에~~??!!"라며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아이는 순간 당황하며 "아니야~나 저거 안 봤어~"라고 둘러대기 바빴으니 말 다했지 뭔가.
아들과 아들친구가 서로 놀리며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며
예의 그 그림책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다시 빌렸다.
또한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함께 빌렸다.
외국책이라 그런가. 역시나 정말 사실적이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몸이 어떻게 다른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리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놀랍도록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지어 체외수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슬며시 들이밀고 반응을 살폈더니
대번에 "으아~ 너무 야하다~~"를 외치며 내게 물었다.
"엄마도 아빠랑 이렇게 했어?"
"그러엄~ 엄마랑 아빠가 사랑을 나누어서
네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라고 답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들은 대뜸 도서관에서 본 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도서관에서 에스. 이. 엑스에 관한 책 봤잖아.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꽤나 놀랐다.
아이가 'sex'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곤란해하며
굳이 한글로 '에스. 이. 엑스'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도서관에서 성 관련 책을 아주 흥미롭게 봤던 사실까지
이제껏 아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몽정파티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성'에 대한 내 아이의 현재 의식 수준을 전혀 알지 못했을 일이다.
부모인 내가 아이보다 '성'에 대해 깨어있어야
아이도 부모에게 '성'에 대해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여하튼 아이는 '몽정'여부를 떠나서
'파티'에 꽂혀있었다.
"엄마, 파티해 준다고 했지?
치킨 시켜줘~ 후라이드 한 마리, 양념 한 마리.
혹시 감자튀김 추가는 안될까?"
( -᷅_-᷄)
함께 치킨을 잡아 뜯으며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근데..
엄마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밤에 혹시 야한 꿈 꾸고 그랬어? " (๑-﹏-๑))
"아니?! 전혀~"
*나중에 검색해 보니 몽정과 야한 꿈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끙.. 애미야...... ヾ(。>﹏<。)ノ゙ )
"근데, 몽정에 대한 엄마의 설명을 들으니
나.. 몽정이 오늘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두어 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
근데 그땐 아~ 찝찝해로 끝났었는데
이게 몽정이었구나~~"
아이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책에서 배운 내용을 읊었다.*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마워 아들~
몽정한 거, 네가 진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증거야. 정말 축하해"
(*책에서 그러는데 몽정을 경험한 아이에게
'이제 드디어 네가 진정한 남자가 되어가는 증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특정 성별에 의거한 말이니 '남자'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어른'에 포커스를 맞춰서 말해야 한댔다ㅋㅋㅋ)
오빠가 계속해서 축하받는 걸 지켜본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첫 생리하면 파티해줄 거야?"
"그럼~~~"
"그럼 나는 치킨 말고 쿠우쿠우에 데려가서 파티해 줘~
시골에 있는 쿠우쿠우점 말고
시내에 있는 새로 생긴 쿠우쿠우 점으로~~"
"아이씨~ 나도 치킨 말고 쿠우쿠우 가자고 말할걸~
야, 너 왜 이렇게 똑똑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 ヾ(´¬`)ノ
'치킨'으로 시작해서 '쿠우쿠우'로 끝난
우리 집 몽정파티 이야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