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은 유정란으로 사 왔겠지?

by 감격발전소

육아휴직을 하며 가정을 전담하고 있을 때 주로 생협에서 장을 봐왔다. 그렇기에 우리 집 계란은 늘 '유정란, 난각번호 1번'이 디폴트값이었는데 복직을 하면서 디폴트 값이 바뀌어 버렸다. 이유인즉슨 남편과 번갈아 장을 보게 되었기 때문인데, 퇴근길에 주로 장을 보는 남편은 주차하기 번거로운 생협보다는 마트를 선호했다. 늘 유정란을 부탁했지만 그는 마트에서 가장 싼 '특판 계란'을 사 왔다.


오늘은 유정란으로 사 왔어?


남편에게 물으면 남편은 내 눈치를 흘끔 보며 "아니 그게.. 마트 가기 전에는 늘 유정란으로 사 와야지 마음먹고 가는데 일단 가격을 보면 손이 안 가. 유정란 쪽으로 손이 가다가도 결국 대용량에 가격도 싼 특가 계란을 택하게 되는 걸 어째. 그래도 이것 봐봐. 오늘은 '왕란'이야! 하하하. 엄청 크지? "

externalFile.jpg


에혀.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유정란은 10개 들이 6,000원을 육박하고, 무정란은 30개나 들었음에도 5,000원도 하지 않으니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한살림이나 자연드림 같은 생협에서는 아예 무정란은 팔지 않고 유정란만 판다. 가격 앞에 흔들리언정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결국 유정란을 잡게 되지만 '마트'는 다르다. 유정란·무정란은 물론이거니와 왕란·흰 계란, 유황 먹인 계란까지 꽤나 다양하니 이 많은 계란 중 비싸기만 한 유정란을 사야겠다는 결심은 너무나 쉽게 꺾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유정란은 대부분 난각번호 1번 또는 2번인데 이 복잡한 게 무엇인가 하면,


난각번호 1번 계란 : 야외 방사장에서 자유롭게 지내면서 낳은 알(1.1㎡당 한 마리)

난각번호 2번 계란 : 야외방사장은 없지만 축사 내 개방형 환경에서 자유롭게 지내며 낳은 알(0.1㎡당 한 마리)

난각번호 3번 계란 : 개선된 케이지에서 낳은 알(0.075㎡당 한 마리)

난각번호 4번 : 좁은 케이지에 갇혀서 낳은 알(0.05㎡당 한 마리)


유정란 : 암탉과 수탉의 짝짓기로 나온 달걀

무정란 : 수탉 없이 암탉 혼자서 만드는 달걀


이런 까닭에 암·수가 짝을 지어야 낳을 수 있는 유정란은,

나름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지낸 닭들이 낳은 난각번호 1번이나 2번의 계란이며,


암탉 혼자 만드는 달걀인 무정란은 대부분 난각번호 3번과 4번이다. 또한 동물에게 안락하고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여 얻어지는 유정란은 이름 앞에 '동물복지'라는 말까지 붙는다. '동물복지 유정란'.

20250327_140851.png


유정란과 무정란,

난각번호 1번과 4번.


뉴스에서는 이 둘의 영양학적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나오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닭들이 본성의 습성대로 자랄 때 건강하고 신선한 알을 낳지 않을까 하여, 다소 비싸더라도 아니 쫌 많이 비싸지만 난각번호 1번이나 2번의 유정란'을 사고 있다.


요리에 취미를 붙인 딸아이가 수플레를 만든답시고 노른자는 쏙 빼고 흰자만 골라 요리를 할 때면, '저 저 아까운 계란, 저게 돈이 얼만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로이 자란 아이가 건강한 정서를 가졌듯, 자유로이 자란 닭이 낳은 계란이 건강한 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개 비싼 '난각번호 1번 유정란'을 손에 든다.


얼마 전 남편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물었다.

"유정란으로 사 왔어?"


"당연하지! 이번에는 자기가 사 오라는 그 계란으로 사 왔어.

동물학대 계란인가 그거."


세상에 맙소사. 허허허허

동물학대 계란 아니구 동물복지 계란이라곳!!!!!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작 두달짜리 남편의 육아휴직에서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