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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 Jan 15. 2024

영화 리틀포레스트::딸에게 주는 엄마의 인생 레시피

오랜만에 마음을 홀라당 빼앗긴 영화를 만났어요.

영화「리틀포레스트」입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담아낸 영상미도,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도 

많은 면이 만족스러웠지만

저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특히나 좋았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인생 레시피처럼 읽혔거든요.



시험, 연애,  심지어 밥 한 끼까지.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지친 혜원(김태리).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손수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 음식을 해먹으며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주인공(혜원)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는 부족했다
배가고파서 돌아왔다는
 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고향으로 왜 돌아온 거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혜원은 답합니다.

"배가 고파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에게 

편의점 음식, 컵밥, 길거리 음식은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에는,

식사가 전해주는 온기가 없었기 때문이죠.


엄마의 요리는 예측불허, 지루하지 않았다

                                                    - 양배추 빈대떡 -



고향에 내려온 혜원은

직접 농사를 짓고 밥을 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마다 떠오르는 엄마 때문에

혜원은 심히 괴롭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수능시험을 마친 시점에

본인 인생의 답을 찾겠다며

혜원을 홀로 남겨두고 집을 떠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원에게 여전히 엄마는 요리 천재이자 마법사입니다.

"생식이 가장 좋긴 한데.. 

뭔가~ 색다른 걸 만들어보고 싶네"(엄마)


"아~ 또 시작이야" (어린 혜원)


"빈대떡 어때? 양배추 빈대떡!"(엄마)


혜원의 엄마는 

오코노미야키(양배추 빈대떡)를 완성한 후 

마지막 토핑으로 가쓰오부시를 뿌립니다.

하지만 혜원에게는 '나무'를 갈아 넣을 거라고 장난을 치지요.


"이상해, 하지 마 하지 마 나무 하지마"를 

외치는 혜원 앞에서

대패에 가쓰오부시를 스윽스윽 갈며 말합니다. 


"이거 봐라, 이거 봐라~ 나무가 움직인다!"


 "냄새 한번 맡아볼래?" (엄마)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독특하고 독창적인.

엄마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혜원)


엄마가 떠난 후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던 혜원은

컵밥을 먹다 옆  커플이 '가쓰오부시'가 잔뜩 올라간

오코노미야키를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어? 저거 우리 엄마 건데!'


"엄마에게 속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엄마의 요리는 예측불허, 지루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보며 무릎을 쳤어요.

'그래! 바로 저건데!'


올해 9살이 된 저희 집 큰 아이는,

어린 시절에는 안아주고 놀아만 줘도

'엄마 사랑해'란 말을 자주 하더니

요즘은 스킨십을 할 때보다

맛있는 요리를 내어줄 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더라구요.


"엄마 사랑해.

엄마는 최고의 요리사야'

심지어 "You're best cook, mom"하고 

영어 아웃풋까지 ㅋㅋ


요리를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늘 요리 책과 요리 앱을 보며 

계량에 딱딱 맞춘 음식을 내주곤 했습니다.


헌데, 

영화를 보고 나니 

황금 레시피를 자랑하는 맛난 음식이 아닌

'음식을 매개로 한 우리의 이야기를 써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구요.


음식을 먹기 전 

아이와 항상 나누는 이야기가 있어요.

"엄마, 음식에 하트 소스 넣었어?"

"아구, 깜박했다. 지금 바로 넣을게~"


그러고선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서는

음식을 향해 촵촵 뿌리죠. 













이런 게 바로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기분을 단숨에 바꿔줄 마법요리

                                                              - 크렘 브륄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듯해 속상한 혜원.

입이 잔뜩 튀어나온 딸에게 엄마가 말합니다.


"너 괴롭히는 애들이 제일 바라는 게 뭔지 알아?

네가 속상해하는 거. 

그러니까 네가 안 속상해하면  복. 수. 성. 공."


그러면서 그녀가 딸에게 건넨 요리는 

 바로 '크렘 브륄레'


"엄마가 개발한 요리인데,

원래 이름은 '라자드 비땅 크렘 브륄레'인데,

우리 혜원이를 위해 짧게 그냥 크렘 브륄레"(엄마)


"크렘 브렐레레레레레레레(깔깔깔깔)"


'이럴 때 엄마는 마법사 같다.

내 기분을 이렇게 단숨에 바꿀 수 있는 마법사'


엄마와 함께  '크렘 브렐레레레레레' 말장난을 치며

우울했던 마음을 단방에 날려버린 

어린 혜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엄마의 요리는 단순한 요리를 넘어선

세상 어떤 것보다 달콤하고 힘이 나는 위로

그 자체일 것 같지 않나요? ^^


최고의 안주는 알싸한 추위와 같이 나눠마실 사람

                                                                  - 수제 막걸리 - 



긴긴 겨울밤.

혜원의 엄마는 간혹 막걸리를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혜원이는 식혜, 엄마는 막걸리.

  짠~~" (엄마)


"맛있어?"(혜원)


"맛볼래?"(엄마)


시큼하고 쿰쿰한 어른의 맛이었다.

"으~ 맛없어"


엄마 덕에 어린 날에 막걸리의 맛을 접하게 된 혜원은

어느덧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친구에게 '겨울술은 으스스한 바람과 함께 마셔야 한다'라는 

썰을 펼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엄마와 함께했던 「막걸리와 우유」대화 덕이겠죠? ^^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앞서 말했듯 혜원이 수능을 마친 어느 날, 

혜원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

엄마는 편지를 통해 

딸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제 혜원이도 이 곳을 떠나서 대학을 가겠지?

엄마도 이제 이 곳을 떠나서
아빠와의 결혼으로 포기했던 일을
다시 해보고 싶어.

실패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불안감도 있지만
엄마는 이제 이 대문을 걸어나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갈거야

모든 건 타이밍이라고 말했었지?
지금이 바로 그 때인것 같아.

아빠가 영영 떠난 후에도
엄마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 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였어.

네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냄새와 바람,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지금 우리 두사람.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있다고 생각하자

 - 엄마의 편지


고된 현실을 모른척하고 싶어 

도피하듯 고향에 온 혜원은 사계절을 보내며 

그제야 엄마의 편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읊조리죠.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혹독한 현실에서 도피하듯 돌아온 고향에서 혜원은

엄마의 바람대로

고향의 흙냄새와 바람, 햇볕 속에서 

다시 건강하게 일어섭니다.


사계절을 올곧이 겪어내며

엄마의 인생 레시피를 제대로 체득한거죠.


그 결과로

혜원에게 최고의 엄마표 요리였던 감자빵을

엄마의 레시피가 아닌 본인만의 레시피만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곤 새로운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죠.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자연과 음식을 매개로 한 뛰어난 영상 덕에 

'오감을 만족시키는 힐링 영화'라고 많이 알려졌는데 

저에게는 '힐링 영화'를 넘어선

너무나 많은 울림을 준 영화였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간 봐왔던 책과 영상이 겹겹이 떠올랐는데

공지영 작가님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가

가장 많이 떠올랐어요.


작가님의 책에 기대어

저도 '딸에게 주는 레시피'를 연재해보려구요 ^^


작가님의 책이 제게는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처럼 느껴졌듯이


파워 요리 블로거가 아니더라도,

꿀맛과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황금 레시피가 아니더라도,


'엄마의 요리'를 통해

아이와 즐거운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아이들 입에서

"엄마의 요리는 흥미진진.

롤러코스터 같았다"라는 말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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