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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한 서울, 여행의 진짜 선물

떡볶이에서 교보문고까지, 그리고 아이의 새로운 꿈

by 감격발전소

출장 일정에 아이를 데려갔다. 직장인으로서는 프로답지 못하다 싶었지만, 늘 “서울, 서울”을 노래 부르던 아이의 마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일상에서 벗어나 아이와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서울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강남의 떡볶이 뷔페.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를 보자 어린 시절 신당동에서 먹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애틋해졌다.

아이는 처음 맛보는 무제한 떡볶이에 들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년의 힘은 크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한 것이 지금까지도 마음을 흔드는데, 이 아이의 추억 역시 오래 남아 언젠가 힘이 되어주겠지.


강남 지하상가에서는 1,000원짜리 소품 가게에 푹 빠져 한참을 서 있었다. 작은 손으로 친구들 것까지 고르는 아이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가 점점 ‘자기만의 선택’을 해간다는 사실이 흐뭇했다. 그 순간, 단순한 쇼핑조차도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출장이라는 본연의 일을 마친 뒤, 청계천과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물에 발을 담갔다가 관리인의 호루라기에 깜짝 놀라며 웃었고,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잠시 경건해졌다. 거대한 동상 앞에서 아이가 한참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은 백성을 향한 듯 내밀고 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도 무언가를 새겨주었으리라 믿는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어가기 전, 잠시 파리바게트 1945에 들렀다. 그곳에서 본 케이크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한복 자락을 연상시키는 장식, 전통 문양 같은 색감. 마치 구절판처럼 화려하고도 정갈한 디자인이었다. “빵도 이렇게 한국의 멋을 담을 수 있구나.” 놀라움과 자부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사진을 찍어두며, 나는 서울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을 마음속에 새겼다.


교보문고에 들어서자 아이는 세 시간이나 서가 사이를 떠나지 않았다. 평소 만화책만 보던 아이가 글책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낯설고도 반가웠다. 결국 아이는 엄마를 위해 고양이 포스트잇까지 선물로 사주었다.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천 원짜리 장난감에 기뻐하던 아이가, 이번엔 만 원을 쓰며 “엄마 선물”이라 말하는 모습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둘째 날, 창덕궁에 들어섰을 때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이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들로 가득한 궁궐. 왕의 용포를 입고 관을 쓴 남자들, 치마 속에 지지대를 넣어 맵시를 살린 여자들. 그 열정 앞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냈다.


“나도 다른 나라에 간다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잠시 스쳤다. 문화라는 건, 이렇게 기후조차 뛰어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북촌 한옥마을.

예스러운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브랜드 ‘제로퍼제로’와 ‘오설록 티 하우스’는 내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취향을 경험하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연결되는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브랜드의 디테일에 별 관심이 없었겠지만, 나는 아이의 곁에서 내 꿈과 취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돌아오는 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목표가 생겼어. 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야. 네가 큰 물에서 많은 걸 경험하면 좋겠어. 나중에 다시 통영으로 내려오더라도, 그건 네가 직접 선택한 결과여야 해.”


이번 여행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아이에게는 꿈을 심어주고 나에게는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결국 여행의 진짜 선물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서로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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