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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본 똥파리

by 글벗

어제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아, 아침 먹은 설거지를 먼저 치워야지.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로 가다가 방금 커피잔을 책상에 올려놓은 것이 떠올랐다.

책상으로 가서 커피잔을 집어서 싱크대로 들고 가다가 문득이 커피잔에 따뜻한 물을 따라서 마시고 싶어졌다.

온수를 따라 마셨다.

따뜻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차를 좀 우려서 마시면 더 좋으려나?

찻잎을 차거름망에 한 스푼 넣고 따끈하게 데운 물을 부었다.

붉게 우러나는 차를 보니 생꿀을 넣은 밀크티가 굉장히 맛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혼자 마실게 아니라 작은 방에서 재택근무하는 딸에게도 물어봐야지.

딸도 좋아할 거 같아.

"얘, 밀크티 좀 줄까?"

"응. 난 시원하게"

내 밀크티에는 전자레인지에 데운 우유를 붓고 꿀을 좀 푼 뒤 짙게 우려낸 홍차를 넣었고, 딸에게 줄 밀크티에는 홍차에 꿀을 먼저 녹인 뒤 찬 우유를 부었다.

향긋한 홍차향과 꿀향이 코끝을 유혹했다.

아, 좋다.

"어때?"

"맛있어."

흐뭇하게 밀크티를 홀짝이다가 번뜩 깨달았다.

앗차, 설거지 하려던 참이지.

밀크티를 만드느라 더 늘어난 설거지 거리를 부랴부랴 모았다.

차거름망에 차 찌꺼기가 소복이 앉아있었다.

거름통에 넣으면 좋은 거름이 될 텐데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다.

그런데 이러다가 설거지는 언제 하지?

빨리 설거지하고 그림 마무리해야 하는데.

차 거름망을 손에 들고 싱크대 쪽으로 가려다가 홱 돌아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쪽으로 돌아섰다가, 마치 농구의 피벗 동작을 하는 사람처럼 이쪽저쪽 갈팡질팡 하는 꼴이라니...

어느 순간 무거운 쪽으로 기우는 양팔저울처럼, 발걸음이 마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뒷마당 거름통에 차거름망을 탁탁 털어서 붓고 통에 들어있던 나머지 거름과 섞이도록 호미로 몇 번 저어준 뒤 거름망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뭉텅 잘라먹고 붓을 드니 내 모습이 똥파리 같았다.

식탁 앞에서 어느 음식에 앉을까 웽웽 돌아다니는 똥파리.

마침내 맛있는 음식 위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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