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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Sep 08. 2022

내 이름을 물어준 사람 2

땡큐, 모니카

'뭐지? 누구지?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기계처럼 서빙을 하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을 쳐다보았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호주 남자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수줍게 웃으며 "땡큐, 모니카"라고 한번 더 말하고는 재빨리 뒤돌아 가게를 나갔다. 


명찰을 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아! 기억났다. 어제 정신없이 서빙하고 있는데 손님 중 누군가가 내 이름을 물었었다.


"왓츠 유어 네임?" What's your name?

"모니카. 아임 모니카 킴." Monica, I am Monica Kim.


아르바이트 첫날 너무나 경황이 없던 와중에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물어보았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와츠 유어 네임?' 아는 걸 물어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이름을 묻기에 반사적으로 성까지 붙여서 대답은 바로 했다. 그 사람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몇 시쯤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저 사람이었구나. 어제 나에게 이름을 물었던 사람이 저 사람이었구나.'


세 번째 날에도 빨간색 유니폼 남자가 점심을 사러 왔다. BLT버거와 립톤 그린티맛 아이스티를 사 갔는데 거스름돈을 받을 때 펼친 손바닥에 시꺼먼 때가 가득 묻어있어 찝찝했다. 그 남자는 가게 문 앞에 세워둔 빨간색 싸인이 그려진 봉고차에 올라탔고 이내 사라졌다.


네 번째 날에도 빨간색 유니폼 남자가 점심을 사러 왔다. BLT버거와 립톤 그린티맛 아이스티를 샀고 똑같은 더러운 손으로 거스름돈을 받았다. 오늘 보니 목 부분에 임창정이 젊었을 때처럼 여드름 흉터가 잔뜩 있었다. 나갈 때는 어김없이 "땡큐 모니카"라고 인사를 했다. 그가 올라탄 봉고차에 쓰인 빨간색 영어 단어를 주문지에 받아 적어 놓았다. 'couriers, please' 

집에 가서 찾아보니 토익 단어였다. courier 운반원, 택배회사. 

'아, 택배 배달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손이 더러웠구나.'


어느 날은 출근을 했는데 그가 가게에 서있었다. 

'하이, 모니카' Hi Monica.

'하이' Hi.

우리 가게에 커피빈을 배달하러 온 듯했다.  

'Thanks. I will be back later for lunch.' 고맙습니다. 이따가 점심때 뵐게요.

그는 영수증에 서명하는 사장님께 인사를 했고 

'씨유 모니카' See you, Monica.

라고 나에게도 인사를 했다.


장난기 많은 우리 사장님이 네가 모니카 이름은 어떻게 아냐며 그러는 네 이름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유니폼 가슴팍을 가리키며 

"아임 롸이언." I am Ryan. 

이라고 대답했다.  

"아... 라이언 고즐링 할 때 그 라이언..." Ah... like Ryan Gosling." 

이라고 내가 중얼거리자

"예스, 라이언 고즐링 할 때 그 라이언. 더 노트북 가이." Yes, like Ryan Gosling, the 'Notebook' guy.

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쟤는 좀처럼 우리 집에서 뭘 사 먹질 않더니 요새는 매일 점심시간에 오네. 쟤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사장님이 나를 놀리셨다. 


매일 낮 11시 30분 정각에 와서 BLT와 립톤 그린티맛 아이스티를 사가는 그였기 때문에 나는 원래 그가 우리 가게 점심 단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 말로는 내가 일하고부터 매일 온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우리 가게에 배달을 와서 성실하고 점잖은 청년이란 것은 알지만 사람을 겉만 보고 알 수 없으니 혹시나 쟤가 수작 부리면 바로 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사장님이 남자 대 남자로 더 신경 써서 쟤를 지켜보겠다고도 덧붙이셨다.  


매일매일 잘릴까 봐 걱정하며 다녔던 카페는 어느새 나에게 가족 같은 직장이 되었다. 일이 어느 정도 적응되고 사장님과 친해진 뒤에 사장님께 처음에 말도 못 알아듣고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죄송했다고 사과드린 적이 있다. 사장님은 나 이전에는 이틀 이상을 버틴 아르바이트생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셨다. 새 직원이 오면 이틀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상황이니 실수를 하더라도 일단 누가 붙어있어 주기만을 원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들어와서 오래 일해주니 마냥 고맙다고 하셨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던 호주 땅에서 그렇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호주땅에서 버틸 수 있는 날짜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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