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영어를 쓰는 나라가 맞나? 호주 땅에 처음 떨어졌을 때 든 생각이었다. 영어영문학과 씩이나 다니면서 중학교 때부터 9년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어쩜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라고 배워왔던 미국 영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영국 영어도 아니었다. 호주 영어라는 제3의 영역이 존재하는 듯했다.
현금 170만 원과 왕복 비행기 티켓이 전재산이었던 내가 호주 땅에서 1년이라는 기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일을 구해야 했다. 셰어하우스 보증금으로 목돈을 지출하니 가진 돈은 더 줄어들었다. 한국 라면도 사치였고 싸구려 식빵에 딸기잼만 발라먹고 산다고 해도 겨우 2달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이었다.
엄청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한국인 밑에서 일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호주에 온 근본적인 목적이 영어 늘리기였기에 호주인 업체에만 이력서를 돌렸다.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일이 구해지지 않으면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다. 조기 귀국 사태가 벌어진다면 학교 사람들에게는 호주에 있는 척하며 고향에 1년 짱 박힐 생각이었다.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간다고 휴학을 했는데 한 달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같이 살던 셰어하우스 한국인 친구들이 호주인 업체에 일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헛 꿈꾸지 말라고 겁을 줬다. 하긴 편의점 직원이 하는 말도 들리지 않는 영어실력이니 그 친구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구직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 각오했다.
이력서를 100장 뽑았다. 없는 돈에 시티도서관에서 비장한 마음으로 고액권 복사카드를 샀다. 팔랑팔랑 출력되는 종이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이 100장의 이력서가 내 손을 떠났는데도 일을 구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나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브리즈번 시내에 있는 상점이란 상점에는 다 이력서를 돌렸다. 단, 간판에 한글이 보이는 업체나 한국, 중국, 일본 식당은 피했다. 한국사람들이 운영할 가능성이 있는 업종이었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10장 남짓 돌린 것 같다. 첫 번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이력서를 넣었던 그 가게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날 시간을 다 써버렸다.
처음에는 토익 영단어를 써가며
" Hello, I want to submit my resume." 안녕하세요, 이력서를 제출하고 싶어요.
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직원이
"Are you here to leave your resume?" 여기 이력서 내러 오셨다고요?
라고 되물으며 내 이력서를 받았다.
'아...'submit 제출하다'라고 하지 않고 저렇게 'leave 남기다'를 쓰네.'
당장 학교도 못 다니는 형편인데 공짜로 회화를 배우니 이력서를 돌리는 일이 영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다음 가게에 들어가서는
"Hello, I am here to leave my resume." 안녕하세요. 이력서 두고 갈게요.
라고 전 가게에서 배운 것을 써먹고 뿌듯해했다. 이튿날에는 스무 장 남짓을 돌린 것 같다.
그날 밤, 단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내 호주 폰이 울렸다. 내 폰 소리가 이런 거였구나.
"Hello?" 여보세요?
"Hi, is it Monica? It is ~~~~~~~ Resume~~~~~ come~~~~ ice cream?" 여보세요? 모니카 씨 되세요? ~~~ 이력서~~~ 오실 수 있으세요?~~~~ 아이스크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드문드문 레쥬메, 컴, 아이스크림 이란 단어가 들렸다. 하도 이력서를 돌려서 어느 아이스크림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전화가 와서 정말 기뻤다.
"Yes, I can come. I can come." 네 갈 수 있어요. 갈게요.
일단 가겠다고 내가 할 말만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수십 장의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으니상점을 일일이 다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다.
"What is..... your shop's....... name?" 가게..... 이름이..... 뭐죠....?
이라고 물었고 열심히 스펠링을 받아 적었다. 이력서를 낸 사람이 가게 상호를 되물으니 상대방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 후에는 날짜와 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대충 들리는 대로 되물어보았다.
"3 pm, this Saturday?" 오후 세시, 이번 주 토요일?
상대방이 '예쓰' 라며 그때 보자고 했다. 나는 '땡큐 땡큐 바이 바이'를 연발하며 전화를 끊었다. 주말이 오기 전에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서 내가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던 동선들을 되짚어보았다. 찾았다! 저 집인 것 같았다. 상호도 재차 확인했다. '토요일에 여기로 오면 되겠구나.' 너무 신났다.
토요일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말 파트타이머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요즘이야 전 국민의 반이 바리스타이지만 당시에는 커피머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커피전문점에서 오랫동안 일한 나는 모든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배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어서 아이스크림 푸는 것도 배울 필요가 없었다.
이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황금 일손이 들어왔는데, 말을 못 한다. 일을 시켜야 되나 말아야 되나 사장님이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사장님의 말이 들리지 않았기에 나는 또 내 할 말만 했다.
"Give me one week. I don't need money. Just one week. No money. I can do it, please."
"저에게 한 주만 주세요. 돈은 필요 없어요. 저 잘할 수 있어요. 제발요."
사정도 딱해 보이고 일단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니 그럼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에 3시간 정도 와서 트레이닝을 해보고 최종 결정하자고 하셨다.
먹고 대학생이었어도 영문과 구력이 있어서인지 전혀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말이 곧 들리기 시작했다. 손님들이야 어차피 와서 아이스크림 이름과 커피 이름만 말하니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페렐로쉐' 로 알고 먹었던 초콜릿이 사실 '퍼뤄로 로쉐' Ferrero Rocher 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발음할 수 있는 소리만 들린다. 사장님 발음을 메모해놓고 30개가 넘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익히느라 며칠을 고생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무급 트레이닝을 받는 동안 전화가 두 군데서 더 왔다. 한 곳은 푸드코트 음식점이었고 다른 한 곳은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운영하는 단독 카페였다. 아이스크림 가게 트레이닝 덕에 귀가 좀 뚫린 상태라 이번에는 여유 있게 전화를 받았다.
낮시간 동안 두 곳 모두에서 하루씩 일을 해보았다. 푸드코트 음식점은 평일 점심시간 2시간 동안만 일할 사람을 원했다. 반면에 카페는 평일 오전 8시부터 2시까지, 오전 내내 일할 사람을 원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되는 상황이라 당연히 카페를 택했다. 푸드코트 음식점에는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대신 돈은 받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교육 삼아 한번 일하는 트라이얼(trial) 경우도 급여를 받는 게 원칙이긴 하다.
주 5일 평일 카페와 주말 저녁 아이스크림 가게, 일자리 2개를 구하는데 단 2주가 걸렸다. 이력서는 30장 남짓을 사용했다. 이력서 70장이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호주인 업체 일을 구하는 게 뭐가 어렵다는 거지? 이력서는 돌려보고 하는 소리인가 의심스러웠다. 일을 하다가 잘 못해서 잘릴 수 있다고 쳐도 그것은 추후 문제이다. 호주인 업체 구직 자체가 어려운 일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해봐야 안다.
평일 카페 알바 출근 첫날. 인터뷰와 트레이닝 때 오후에 나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전 시간에는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할 여유가 전혀 없는, 전쟁터처럼 정신없고 바쁜 곳이었다. 일단 아는 것이 없으니 커피머신 앞에 서서 커피를 만들어내며 오전 피크 시간을 보냈다. 다들 너무 바빠서 아무도 나를 '트레이닝' 시켜주지 못했고 눈치껏 다른 직원을 따라서 행동하고 물어가며 하루 시간을 버티었다.
오후 2시가 되어 집에 가도 좋다는 사장님 말씀에 퇴근했는데 엄청 불안하고 속상했다. 곧 전화가 걸려와 사장님이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하실 것 같았다.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니 이불킥 상황 투성이었다.
"캔 아이 플리즈 해버 파나?" Can I please have a 파나?
'파나? 파나? 파나가 뭐지?'
손님의 손짓을 따라가니 냉장고 속에 캔음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댓 원, 디 오륀지 원" That one, the orange one.
'아 환타...판타... 파나... 환타가 파나 였구나...'
환타 달라는데 못 알아듣고 멀뚱히 서있지를 않나, 우당탕탕 물건을 떨어뜨리고 실수를 연발하는 새 직원을 사장님이 참아내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밤새 전화는 오지 않았다. 사장님은 인내심이 상당히 많은 분이신가 보다. 감사한 아침이었다. 오늘은 잘 견딜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두 번째 출근을 했다.
우리 카페에 들어서면 정면에 가로로 길게 바 테이블이 보인다. 그 바 테이블 위에는 차례로 커피머신, 소세지롤이나 파이 같은 따뜻한 음식을 보관하는 온장고, 즉석 샌드위치 재료가 들어있는 냉장고가 있었다. 사장님 부부는 주방에서 하루 종일 요리를 하셨고, 사장님의 친적인 기존 직원은 전적으로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맡았다. 나는 온장고와 커피 머신 사이에 서서 손님을 맞았다. 이미 조리된 따뜻한 음식을 꺼내 봉투에 담아주고 손님들이 원하는 음료를 내 등 뒤에 있는 음료 냉장고에서 꺼내 주거나 커피를 만들어 주고 돈이나 카드를 받았다.
두 번째 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사려는 손님들이 바테이블 앞에 무리로 서있었다. 마치 그들이 나를 공격하려는 적군 무리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제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걸로만 주문해주기를 간곡히 바랬다. 인사하고 주문받고 음식 내어주고 돈 받고 보내면 끝. 퀘스트를 수행하듯 적군 한 명 한 명을 차례로 쳐내고 있었다.
"땡큐, 모니카" Thank you, Monica.
그때 누가 음식을 받으면서 땡큐 인사 뒤에 내 이름을 불렀다.
'뭐지? 누구지?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기계처럼 서빙을 하다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을 쳐다보았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호주 남자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수줍게 웃으며 "땡큐, 모니카"라고 한번 더 말하고는 재빨리 뒤돌아 가게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