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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Sep 02. 2022

연애 선수, 아스퍼거 남친

아스퍼거는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면서요??

사진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lennykphotography/19757586100


브리즈번 시티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운틴 쿠싸 전망대. 밤이면 바로 옆에 누가 있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다. 산 아래 브리즈번 시티가 뿜어 올리는 불빛들에 오롯이 나의 눈과 마음을 쬘 수 있는 곳이다.  


라이언은 첫 데이트에 나를 이곳에 데려왔었다. 눈앞에 펼쳐진 야경에 감탄하며 넋을 놓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너만 좋다면, 오늘처럼 브리즈번 곳곳의 예쁜 곳으로 널 데리고 갈게. 네가 호주에 머무는 동안 좋은 경험,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게 도와주고 싶어.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나도 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거우니까. 친구라고 생각하고 종종 봤으면 좋겠다. 그냥 친구라도 좋고, 남친이면 더 좋고.”


“왓? 보이프렌드? 에헤이~”


“ㅋㅋㅋ알지, 알지. 희망사항은 가질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어때?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어?”


“음… 호주 바다에 가보고 싶었지, 호주는 바다가 예쁘다고들 하니까.”


“그래? 그럼 이번 주말에 누사비치에 갈래?”


첫 데이트에 세상 쿨한 태도로 남친 드립을 하질 않나, 바로 연이어 애프터 약속을 잡질 않나.


저돌적인 이 남자.

선수인 줄.


그렇게 우리의 데이트는 이어졌고 곧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빅피쳐대로 친구로 시작했지만 금세 그는 내 남자친구가 되었다. 좋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라이언은 호주에서 공부를 더 할 생각은 없느냐 등 여러 가지 옵션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호주에 더 살기 싫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다 보니 90% 이상의 학생들이 재학 중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추세였다. 어학연수가 기본값이라는데 기본도 못 하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평범의 범주에 들고자 함이 내 호주행의 유일한 목표였다. 외국에 살고 싶다거나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꿈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계절 내내 더운 호주 날씨는 겨울을 좋아하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가을이 올 때가 훨씬 넘었는데도 끝나지 않는 긴 여름을 견디는 것 처럼 지겨운 구석이 있었다. 매일 아침 잠결에 비몽사몽으로 집을 나서도 단숨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한국 겨울의 칼바람을 뺨에 맞고 싶었다. 후줄근한 반팔 티쪼가리를 사시사철 입는 게 지겨웠고 따뜻하게 온 몸을 감싸주는 빳빳한 겨울 코트의 느낌이 그리웠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완전한 사회인으로서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은 것도 컸다. 내 확고한 귀국 의사를 들은 그는 자기가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있어?”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네가 호주에 살기 싫으면 내가 한국에 가야지.”


“응? 메…메…메뤼? 우리가? 내가 너랑 결혼한다고 했다고?”


“내가 타이타닉 카드 준 거 기억 안 나? 마운틴쿠싸에서. 그때 약속했잖아.”


급하게 기억을 더듬어본다. 타이타닉 카드가 뭐...?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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