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얼마 전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았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부모가 상담 신청을 한 에피소드였다.
이 아이는 학교생활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도 특이한 점들이 보였다. 자신에게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쏟는 엄마에게 ‘자신을 낳은 것이 유죄’ 라는 무시무시한 폭언을 일삼는다. 심지어 엄마를 때리기도 한다.
아이의 부모는 여러 기관과의 상담과 진료를 거쳐 이 아이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듣고 온 상태였다. 아이의 일상이 담긴 비디오를 주의깊게 시청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도 이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 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널리 존경받고 사랑받는 오은영 박사의 입에서 “당신의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맞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부모의 얼굴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해당 프로그램의 패널들 역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자폐 스펙트럼의 연장선에 있다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나오자 모두가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양 반응했다.
별생각 없이 빨래를 개며 TV를 보던 내 시선이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걔 안 죽어요. 아스퍼거 죽는 병 아니에요.”
그 장면을 보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세상이 끝난 듯이 낙담하는 부모와 못지않게 엄숙한 오은영 박사님과 패널들의 표정을 보니 내가 그곳에 달려들어가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봐요. 아기 엄마, 괜찮아요. 죽을병 걸린 거 아니어요. 아스퍼거를 가진 사람도 결혼하고 애도 낳고 직업을 갖고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요. 제가 아스퍼거 남편과 살고 있어요!"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의학용어에 뒤따르는 정의에 담긴 ‘자폐 스펙트럼의 연장선’ 표현 때문일까? ‘자폐’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가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 과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 역시 크고 작은 정서적 소용돌이를 겪어내야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아스퍼거증후군이 있어도 흔히 말하는 ‘평범한 일상’의 영위가 가능하다. 잘 알고 적절히 대처한다면 당사자나 가족들이 감당 못할 병은 아니라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을병 선고를 받은 듯이 죽상을 짓고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금쪽이 어머니, 금쪽이 괜찮아요. 아스퍼거라도 괜찮아요.”
비단 금쪽이 엄마뿐이랴.
이 세상에 수많은 아스퍼거인들과 그들의 부모, 가족,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희 남편도 아스퍼거예요. 그래도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직장 잘 다니고 거뜬히 1인분 해내고 잘 살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저는 아스퍼거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아스퍼거라도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