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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01. 2024

알베르트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스위스 취리히 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2021년이다. 바로 옆에 새 건물을 짓고 있는 상황이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새 건물은 구건물과 지하로 연결된다고 한다. 새 건물 구경도 하고싶은데 그의 건축물을 이미 서울에서 본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용산역 앞에 있는 아모레 퍼시픽 건물과 같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건축물이다.

여러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을 감상해본다. 비엔나 현대미술관, 취리히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볼 때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리움미술관에도 소장하고 있어 도슨트활동을 할 때 관람객에게 직접 설명했던 작품이다.  늘 제한된 시간에 쫒기고, 듣는 관람객들의 입장도 생각하며 수준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도슨트로서는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좀더 자세한 내용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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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ll Grande Femme II> 1960. 청동. 277 x 31 x 58,7 cm

2021년 7월 KUNSTHAUS ZUERICH에서 촬영. 새 건물로 옮기기 전.


자코메티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이 조각품을 구상했다. 원래는 뉴욕시 체이스 맨해튼 광장에 설치할 네 개의 청동 인물을 구상했었다.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조각품과 자유롭게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무대를 상상하며 4명의 여인상을 구상한 것이다. 이 구상은 자코메티의 평소 신념 '예술과 일상이 완벽하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근본이었다. 

자코메티는 파리에서 뉴욕 체이스 맨해튼 광장의 모형을 받고 작업했으나 결국은 뉴욕에 설치하지 못했다. 현장을 직접 가보지못한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과 현장이 잘 어울릴지 의구심이 들었다. 거칠게 가공된 청동의 거대한 여인상들이 그 광장에 맞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아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각 인물조각상은 따로따로 판매되었다.


아래는 리움미술관에 있는 <거대한 여인 III>이다. 

<거대한 여인 lll> 1960. 청동. 235 x 29.5 x 54 cm. 리움미술관.

오른쪽 사진은 리움의 기획전 "인간, 7개의 질문"에 전시된 모습으로 실내 전시실에 서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자코메티는 인간을 어떻게 물리적인 형태가 아닌 정신성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조각 조형 그 자체가 물리적인 것인데, 정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 작품은 <거대한 여인lll>입니다. 

전쟁은 사회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전쟁 후에 하나의 사조가 일어나는 데요, 실존주의가 대두되죠. 전쟁을 겪고 나니까 사람들은 ‘존재’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이 작품은 실존주의 작품인데요, 실제로 자코메티는 실존주의 철학자인 싸르트르와 절친한 사이입니다. 싸르트르는 작품의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실존주의 철학과 연결시킵니다. 죽음에 의해 중단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인 인간을 이 여인의 가느다란 모습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자코메티의 작품 그거 별것도 아닌데 싸르트르가 칭찬하니까 덩달아 좋다고 평한다’며 작품을 혹평했답니다. 

물론 ‘인간 실존을 잘 나타냈다’는 호평도 있었고요. 인간이 왜 연약한 존재이기만 합니까? 삶을 이어가는 끈질긴 생명력은 인간이 매우 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의 제목은 <거대한 여인 lll>입니다. ‘거대하다’는 것이 단순히 외형적인 크기만 말하는 것은 아니죠.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존재를 드러낸 작품입니다.

인간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살을 모두 제거하고 뼈에 가까운 형태만 남기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결국 의식으로서의 인간에만 집중한 것이죠. 

작품이 여자인데요, 여자라면 관념적으로 떠오르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지요? 부드러움, 따뜻함, 율동감,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조형물이 석고나 대리석이 아닌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요, 금속의 차가운 느낌과, 시선을 먼 곳에 둔 것 같은 부동자세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을 느끼게 합니다. 자코메티가 좋아하는 이집트 그림속 인물을 닮은 자세죠. 인간 조건의 근원을 나타낸 작품입니다.(제가 도슨트 활동할 때의 설명입니다.)


싸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1939년 어느 날 저녁, 자코메티는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에 늦게까지 머물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혼자 남아있던 남자가 자코메티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여기서 나는 당신을 자주 봤는데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나한테는 돈이 하나도 없으니 내 음료수 값 좀 내 주시겠어요?” 거절할 수 없는 자코메티는 낯선 사람의 술값을 지불했다. 그후로 둘이는 대화가 오갔고, 그들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그가 바로 사르트르였다. 

사르트르는 훈련받은 철학자로서 인류의 마음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덥수룩한 머리의 예술가가 비범한 성격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자코메티의 지성은 깔끔하고 체계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기발한 직관, 예측할 수 없는 관점의 전환, 모순된 논리, 사변적 상상력의 대가였다.  활력이 넘치고, 총명하고, 외향적인 두 사람은 종종 그들만의 예측할 수 없는 자기 발견의 대화를 주고받기를 즐겼다. 한 사람의 현실에 대한 숙고가 다른 사람의 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자코메티는 전후 작품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을 거부했지만,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조각품을 고립과 취약성, 고통 속에서 실존주의의 의인화로 여겼다.

사르트르는 에세이에서 자코메티는 예술가를 "영원히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으로 묘사했으며, 각 조각품마다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자코메티의 인간 이미지는 "항상 무(無)와 존재 사이를 중재한다"고 했다. 예술가의 개념적 작업 과정에서 "무無"는 "공허함", 즉 무한한 잠재력의 공간이 되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물질과 의미 사이의 갈등에 바쳤으며, 인물의 질량을 가능한 한 줄이는 동시에 본질적인 힘을 부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싸르트르의 에세이 <절대를 위한 탐구>(Jean Paul Sartre’s essay on the sculptor ‘The Quest for the Absolute’) 참고.

싸르트르의 에세이에 의하면 자코메티는 무와 존재 사이의 중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정하고 개선하고 파괴하며 재생하는 과정의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서있는 여인 Standing Woman III> 1962. 청동.235 x 30 x 53 cm. 

비엔나 현대미술관 (Museum moderner Kunst Stiftung Ludwig Wien)에서 촬영.


바람불면 흔들릴 것 같은, 얇아도 너무 얇아서 휘어질듯 연약해보이는 <서있는 여인>(같은 캐스팅이라도 각 미술관에 따라 이름이 다르기도 함)의 큰 발을 보면 굳건히 땅에 뿌리박고 선 존재를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저 큰 발 때문에 가늘고 긴 몸체가 더 연약해보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자코메티의 초소형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을텐데 그의 키 큰 인물상은 사실 아주 작은 초소형 조형작품에서부터 변화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자코메티는 제네바에서 파리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자신의 작품을 밀반입했다. 여섯 개의 성냥갑에 담긴 그의 작품을 모두 가지고 간 것이다. 높이 3cm정도의 인물상이다. 손톱만큼 얇은 이 작품은 작가가 생애의 마지막 20년 동안 유명해진 길쭉한 인물로 이어진 길을 보여준다.


1944년 10월, 제네바의 호텔 드 리브에 있는 자코메티. 사진: 엘리 로타르 촬영.


작가의 손가락과 작품 크기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작은 지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전례 없는 사회정치적 격변의 배경 속에서 진화한 이 독특한 작품은 심오하게 변혁적인 단계를 나타낸다. 자신의 생각, 인상, 감정을 표현하는 올바른 조각적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좌절하기도 했다. 1948년 뉴욕의 미술상인 피에르 마티스(Pierre Matisse 1900-1989, 앙리 마티스의 막내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조각품이 작을 때만 자신의 기억과 비슷해보였다는 내용이다.

"조각상들은 점점 더 작아졌고, 작을 때만 비슷했지만, 그들의 크기가 나를 혐오했고, 지치지 않고 다시 시작했지만, 몇 달 후에 같은 지점에서 끝났습니다. 큰 인물은 나에게 거짓으로 보였고 작은 인물도 마찬가지였고, 종종 너무 작아져서 내 칼에 한 번 닿으면 먼지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인물들은 작을 때만 약간 진실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A Letter from ALBERTO GIACOMETTI to PIERRE MATISSE. 1947 초판 발행, 피에르 마티스 갤러리, 뉴욕.

https://assets.moma.org/documents/moma_catalogue_2869_300304996.pdf  뉴욕 현대미술관 카달로그 pdf파일 33쪽 인용.

이 작은 인간의 형태는 점점 길어져 긴 형태의 얇은 인물상으로 바뀐다.

그러나 1945년부터 그의 인간형 물체는 키가 크고 실제보다 더 크며 종종 무서운 형상으로 확장되어 높이가 180cm를 넘었다. 




다시 자코메티에 대해 쓴다면 자코메티의 머리조각품, 정지되어있지만 움직임이 보이는 조각품, 초상화에 대해 쓸 것이다. 초상화의 모델이 되었던 동생 디에고와의 이야기도. 항상 느끼지만 한 부분에 대해서만 쓰고나면 종합적인 스토리가 아쉽다. 늘 부족한 느낌이다. 


자코메티 <걷는 남자 Walking Man I> 1960. 스위스 100프랑 지폐에 인쇄된 자코메티 초상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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