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7
시집 – 평범하고 상식적인 인간관계
가족간에 너의 권리와 나의 의무, 나의 권리와 너의 의무, 관계를 객관화 시켜보면 터무니없는 횡포이고 과중한 희생이다. 관계의 역할을 떠나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수평으로 설 수는 없는 것일까? 수직선을 긋고 서있어야 할 자리에 매이지 않는, 그냥 한 존재로서의 너와 나의 존재를 존중하는 관계를 꿈꾼다.
살아오는 동안 늘 같은 생각이었다.
가장 평범한 한국 여자로서의 결혼생활과 시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디.
나는 며느리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또 시동기간들에게 잘 해야 한다는 생각 안 한다. 왜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잘해야 하는가? 여러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수 백년을 전해내려와 아직도 변함없는 답들이 있을 것이다. 결과는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는 확정된 답으로 통하는 여러 설명들은 여기 쓰지 않겠다. 며느리니까 시어머니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이고 나는 그리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듣는 이들은 그 말을 이해해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아주 나쁜 며느리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다면 그는 내가 평소에 그리 불효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평균 이상으로 잘하며 지낸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도발적인 발언에 깜짝 놀라는 것일 게다.
내겐 시집간 딸도 있고, 며느리도 있으니 주관적인 고집보다는 객관적인 나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나는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엄마, 딸, 올케, 시누이, 손위 동서, 손아래동서, 이런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여자이다.
시(媤)자에 알레르기도 없고, 올케에 대한 불만도 없고, 동서들을 어려워하거나 얄미워 할 이유도 없는 참 공평한 위치에 있는 여자다.
명칭을 정의하고, 시대를 따지고,역할에 짐을 지우거나 짐을 지는 일에 무감각하다. 결혼 전 친정에서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은 시댁을 친정과 구분하여 시댁을 우위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에 의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친정엄마와 친정숙모님 친정고모님 친정외숙모님, 이렇게 친정의 내 윗세대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저절로 내게 주입된 것이었다.
결혼 후에 나의 시집에서 내게 종용한 것이 아닌, 결혼 전에 친정에서 이미 경험한 삶이 그러했다. 나의 윗 세대 친정 여자들이 내게 마음으로 몸으로 정신으로 보여준 여자의 삶이었다.
나도 그 분들의 삶이 전수되어서 그대로 잘 따르고 산다. 그러나 가끔은 그렇게 따르고 사는 입장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서 생활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왜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존재의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고, 존재의 역할에 대한 것에 집중하는 것일까? 언제 누구에 의해서 그렇게 정해졌는지도 모를 역할의 권리와 의무, 자신의 또렷한 주관 대로 당당히 챙기는 권리도 아니요, 자신의 인품으로 의무에 충실한 것도 아닌, 그런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어서 우리는 얼마나 꼴불견 갑질과 을의 굴종에 익숙해있는가?
나는 시댁 식구들에게 잘 못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인들에게 잘한다는 평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시집 식구들한데 그렇게 잘하고…” 이런 말에 저항감을 느끼고 불편하다. 내가 그 집안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며느리의 도리를 지킨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시집 식구>라는 관계를 따질 것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산다. 물론 남편의 가족이니까 더 마음이 쓰이고 정이 땡기기는 하지만, 그래서 완전 타인에게 하는 것보다는 좀더 호의를 베풀기는 하지만, 나의 기본 생각은 <시집 식구>로 규정지어진 관계보다는 그냥 <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나의 사고방식에 따른 언행이 어떤 경우엔 상대방의 기대를 훨씬 넘는 호의로 과잉 칭찬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대의 기대치에 많이 못 미쳐서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내가 시집식구들에게 잘 하는 것은 그 집안 며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알고 그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못된 시어머니가 아닌 것은 내 며느리와의 관계를 <시어머니 대 며느리>로 규정짓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모든 사람들은 상식에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충실히 행하며 산다. 시집에서도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예의를 지키고,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살면 된다. <시집 식구>가 아닌 그냥 <가족>이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시누이한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수모를 당했었다. 그분은 내 남편을 서울로 데려다 공부시키느라고 정말 많은 고생을 한 고마운 분이시다. 눈물겹게 헌신적인 누님이시다. 지금은 시집 식구들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이신데, 나의 옛 기억은 아프고 또 아프기만 하다.
왜 그러셨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동생의 아내될 내게 결격 사유가 몇 개 있었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대학을 안 나왔고, 직업도 없는,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거리가 없는 내가 큰 시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우리 큰 오빠는 호프집(그 당시에는 ‘함박스테이크’를 파는 경양식집으로 맥주도 팔고 그랬다.)을 경영하고 있었다. 시누이는 그 식당에서 맥주를 파는 것을 부각시키며 내게 상처를 주었다. 아주버님은 지역사회에서교직에 계셨고 등단 시인이셨는데, 시누이 말에 의하면 그런 아주버님이 맥주집을 하는 우리와 사돈이 되면 창피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오빠가 얼마나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그렇게 모욕하다니 그때 깊게 패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런 수모에도굴하지 않고 나는 그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분이 행복을 스스로 가꾸지 않고 동생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동생에 대한 너무나도 강한 애정이 나를 향하여 증오로 표현되었던 것이라고 이해했다.
동생을 위해 헌신하신 그 분, 동생의 사업이 부진할 때는 당신 집까지 대출받아 자금을 융통해주신 그 분, 그 귀한 동생에게 배우자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명품이어야 했던 것이다. 내가 바른 인간으로 평가받기 보다는 빛나는 명품이어야 했는데 나는 명품이 아니었다.
그런 세월을 보내며 나는 관계에 대하여 많이 객관적인 개념을 가지게 되었고, 나와 관계있는 대상들을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는 심성을 키우게 되었다. 나의 상처는 오히려 타산지석이 되었다. 내 며느리들에게 좀더 품격있는 시어머니가 되려고 애쓴다. 인생에는 반면교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나이 먹어가면서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 가족들이 모이기로 한 날이 다가오면 이것저것 먹거리 준비에 힘들다. 남편은 청소 담당하느라 헉헉거린다. 남편은 내가 안쓰러운지 나중에 며느리 오면 시키라고 한다. 아니 될 말씀이다. 나는 대단히 깨인 시어머니인 것처럼 대꾸한다. “내가 며느리 기저귀를 갈아줬어요? 젖을 먹여줬어요? 공부할 때 등록금을 대줬어요? 내가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일을 시켜요?”
내가 시집에 하고싶었던 말을 차마 뱉어내지 못하고 입안에 수 십년 담아두고 있었던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일들을 아낌없이 해준 대상은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다. 아들이다. 아들 딸이 아기일 때는 삼시 세끼를 제 시간에 먹지도 못하고, 깊은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독립해서 내 곁을 떠날 때까지는 나의 시간과 노동과 재물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그러니 그간의 나의 노고에 대한 갚음이라면 내 딸과 아들이 갚아야지 며느리는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명절에 우리 며느리는 내 집에서 전을 부치지 않는다. 내가 안 시킨다. 큰 며느리는 친정에 가서 전을 부쳤다고 한다. 그게 맞다. 받은 곳에 갚아야 하는 것이 옳다. 명칭에 대한 역할을 정해놓고 그에 따르라는 의무를 당연히 여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며느리들은 나를 멋진 시어머니라고 성급히 단정짓지 말기 바란다. 시집에서 하는 노동에 불평하는 만큼 친정에 가서 노동을 하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시집에서 일하는 것이 억울하여 친정에 가서 다리뻗고 놀면서 명절을 보내고싶어 한다면 염치없는 딸이다.
열 번 백 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봐도 나의 가족개념은 서로 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그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면 되는 것이지, 주어진 명칭과 호칭에 따라 시킬 권리가 있고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