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일주일 보고서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8

by morgen

방학 일주일 보고서 (가족 합숙 수련회)


온 가족이 다 모인 방학 휴가 일주일이 끝났다.

모이기 전에 준비할 일도 많았지만 이제 뒷설거지도 만만찮다.

아이들은 빗속을 뚫고 모두 무사히 귀가했다. 우선 한숨 돌리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벌써부터 보고싶다. 한꺼번에 여럿이 모이기 때문에 손주들 각자에게 충분히 사랑을 나눠주지 못해서 아쉽다.

코비드 19 때문에 외식은 딱 2회에 그쳤다. 한 번은 오후 3시 반부터 브레이크 타임인 갈비집에 우리는 2시 예약으로 갔다. 이미 점심 식사가 끝난 후라 식당에 손님은 우리 가족 뿐이었다. 그걸 노리고 간 것이다. 안심이었다.

또 한 번은 우리 식구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따로 있는 중국식당에 오전 11시 30분 예약으로 갔다.

우리 식구는 어른 아홉에 아이들 여덟, 모두 열 일곱명이다. 이 식구들이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가족 구성원중에 우리 부부는 노인이고, 아이들이 어리니까 전염병을 조심하느라고 리조트나 펜션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놀이터의 놀이기구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학교 운동장에서 공차고 뛰어 놀기만 했다. 이것이 정말 뉴노말(New Normal)이구나 하고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체감했다.


잠자리가 부족하여 큰 며느리가 아이들 넷을 데려가서 재우고 아침에 다시 우리집에 모여 놀았다.

며느리가 자발적으로 그러자고 했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니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도 속으로는 귀찮다고 궁시렁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큰 며느리는 방학이면 장애우 캠프에 자원해서 봉사하러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마음 속에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작은 며느리는 결혼 후 여러 해 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이전에는 자기 아이가 없는데도 조카들을 잘 돌봐줬다. 마치 학교처럼 시간을 정하여 체육시간, 음악시간, 미술시간, 국어시간을 운용하며 즐겁게 지내곤 했다. 이제 자신의 아이까지 끼어있으니 더욱 즐거운 모습이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며느리 복이 참 많은 시어머니이다.

왼쪽은 큰아들집, 손주 6 + 조카손주 2. 오른쪽 은 우리집, 큰 아이들은 모노폴리를, 작은 아이들과 만들기를 하는 두 며느리.
왼쪽은 큰아들 집, 주는대로 다 먹기. 오른쪽은 우리집, 어린애 머리 묶어주는 큰 아이들.

우리 집엔 원래 텔레비젼이 없었는데 지난 봄에 작은 아들이 사용하던 것을 가져왔다. 둘 곳이 없어서 자리를 못잡고 있는데 큰 아들이 이동식 바퀴달린 거치대를 마련해서 거실에 텔레비젼을 두었다. 책꽂이의 책을 볼 때는 티브이 거치대를 밀어 옮기면 된다. 10년도 넘은 것이지만 선명한 화면이 잘 나온다. 이번 모임에서 이 텔레비전을 아주 잘 이용했다. 어린이들이 시청하기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그 덕을 많이 봤다. 사실은 TV연결은 하지 않아서 모니터 역할만 할 뿐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시청용이다.


남들이 우리집을 들여다보면 마치 원시 부족같은 느낌일 것이다.

넓지도 않은 집에 많은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고 흉볼 것이다. 잠자리가 부족하여 거실에 매트를 깔고 여럿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흘들지도 모른다. 저 집이 저렇게 살면 그집 며느리들은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나를 악덕 시어머니로 몰아부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집은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잘 돌아간다. 이것은 나의 덕이 아니라 남의 집에서 우리 가족으로 편입된 두 며느리들의 심성이 곱고 착해서 그렇다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고맙다.

아, 사위도 착하다. 내 아들들은 시키는 일은 하지만 무슨 일이 필요한지 찾아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위는 욕실의 하수구 속 머리카락 엉킨 것까지 다 청소해준다.

나는 시어머니, 장모의 입장이니 내 편에서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며느리들과 사위는 나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믿고싶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따뜻한 평화로움이 겉과 속이 다르다면 시종일관 똑같이 여러해 동안 유지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척 하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도 한 두 번이지 거듭거듭 계속되면 다 겉으로 표가 나고 속마음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어쨌든 새 식구들이 들어온 후로 십년 넘도록 우리집은 아직까지 평화롭고 화목하니 참 고마운 일이다.

혹시 부모에게서 받을 것이 많은가 하는 오해는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노후 대책도 없는 빈 털터리 노인이다. 겨우 살림을 꾸리는 연금 생활자이다. 그렇게 가진 것이 없으니 오히려 자식들이 우리에게 더 신경쓰고 잘하는 것 같다. 우리 생활을 자식들이 책임지지는 않지만 절기 때마다, 행사 때마다 저희들끼리 서로 십시일반 비용을 보태고 있다. 한 번도 아들이 내게 돈을 직접 준 적은 없다.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은 항상 며느리이다.


우리 가정의 개인사를 이렇게 구구절절 쓸 이유는 없을텐데,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상에서 시집 때문에 너무나도 괴로워하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한 기운은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혹시, 만약에, 우리 가정의 화목을 유지하는 모습이 선한 기운이 되어 다만 한 가정이라도 더 화목하고 평화로워진다면 그것으로 나의 글값은 충분하다. 이 글이 신변잡기가 아닌, 좋은 기운을 옮기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아, 손자가 빠졌다. 어느 구석에서 혼자 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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