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6
대가족 속에서 얻은 것
우리 애들은 유치원을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딸은 아우를 보는 바람에 만 세 돌을 보름 넘긴 때부터 개인 아파트에서 하는 선교원에 다녔다. 남들 다 있는 유치원 졸업 사진도, 졸업장도 없다.
큰 아들도 초등학교 입학 전 가을 한 학기를 유치원에 다녔고, 막내 역시 그렇게 가을 한 학기만 유치원에 다녔다. 가을 운동회, 크리스마스 행사, 졸업 사진을 위한 한 학기를 때웠다. 애들은 자기 형제끼리 잘 놀았고, 늘 나를 따라다녔다.
경제적으로 여유없는 살림에 짜증도 났고, 함께 놀아줄 친구들은 모두 유치원으로 가버린 텅빈 골목에 내 아이들만 나와 노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애들이 유치원 안 다니고 대가족 속에서 큰 것, 나와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낸 것이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다.
큰 아들이 가을 한 학기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막내는 제 형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오늘 뭐 배웠냐고 눈을 반짝이며 캐물었고, 제 형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놀이, 공부, 기타 활동)들을 죄다 얘기했다. 둘이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예습 복습을 한 셈이다. 한글도 저희들끼리 책 가지고 놀면서 익혔다.
아들들은 삼촌과 함께 권투도 하고 레슬링도 하며 즐거워했고, 딸은 고모를 따라서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지곤 했다. 어머니는 동화책에서 읽을 수 없는 옛날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제 또래들끼리 모여있는 유치원보다 좀 더 넓고 다양한 연령층의 가족 구성원들 속에서 아이들은 작은 사회인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독일 유치원이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을 섞어서 반편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회성을 기르는 기초단계로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삼촌들과 고모의 대학입학 준비과정, 졸업후 취업과정,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까지 한집에서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 인생의 통과의례인 그 과정들은 모두다 처음으로 부딪히게 될 일인데 가족들을 통하여 미리 간접경험을 한 것이다.
식구들이 늘 들끓는 대가족 속에서 나는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속상한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애들 교육엔 좋았다. 남녀노소가 섞인 공동체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애들은 늘 여러 가족들에게서 사랑받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어른들 드릴 것을 먼저 챙기는 것도 몸에 익혔고, 적고 부족한 것도 여럿이 나눌 수 있는 귀한 셈법도 배웠다.
우리는 12인용의 커다란 테이블을 안방 한가운데 들여놓고 늘 거기 모여앉아 지냈다. 그 테이블은 식구가 다 모여앉아 숙제하고 공부하고 책읽는 책상, 종종 방문하는 형제들이 모였을 때 좁혀 앉으면 15인 정도가 식사할 수 있는 식탁, 서로 대화를 하며 이해하기도 하고 열을 올리며 소리지르고 싸우기도 하던 토론장의 역할을 톡톡이 했다.
우리 가족들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 책상에서 이루어졌었고, 이제 뿔뿔이 흩어져있는 우리들은 그 책상가에 모여앉아 지내던 시절을 가끔 떠올린다.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자주 모인다. 예전에 함께하던 남편의 형제들은 각기 다 가정을 이루어 시누이 시동생들은 빠졌고 이제는 우리 자식들과 손주들이 함께 모인다.
며느리였었던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 8인용 원탁에 모여앉아 식사를 한다. 아이들 여섯명이 1차에, 어른 8명이 2차로 식탁을 사용한다. 겉으로 보기엔 며느리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그럴 것이다. 그 아이들이 겉과 속이 다른 아이들은 아니니까.(이거 순전히 시어머니 생각인가?)
다행히(?) 며느리들도 대가족 집안의 딸들이라 우리들이 자주 모이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는 듯하다. 큰 며느리는 친정 부모님 양가 모두 형제가 많다. 결혼식에는 며느리의 친가 외가 식구들이 많고, 우리측도 많아서 신랑 신부 가족들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신부측 단체 가족사진 따로, 신랑측 단체 가족사진 따로 찍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었다.
작은 며느리의 친정 아버지는 11남매의 막내아들이시다. 형제분들 모두 생존해 계시지 않아서 결혼식에는 11남매 내외분들이 다 참석하지는 못했다.
이렇다보니 며느리들이 사람 많이 모이는 것에 겁을 안 낸다. 우리 시동기간들은 8남매이다.
한국의 많은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집까지 팔아대고, 파출부까지 해가며 과외를 시키고, 제 속옷 빨고 밥그릇 하나 닦을 시간도 아껴서 공부하라고 뒷바라지를 해줄 정도로 헌신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가족 제도가 아이들 교육에 좋다고 내가 떠들어봤자, 아무도, 아이들을 위해 시집식구들을 끌어들일 엄마는 없을 것이다.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별 짓을 다 해도, 시집 식구들과 함께사는 것만은 꺼려하는 것 같다.
나는 시누 시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즐거운 때도 많았고 짜증날 때는 더 많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러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서 좋았다.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가정을 이룬 지금, 수시로 우리집으로 모여들어 늙어가는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해준다.
나는 알고있다.
우리 가족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역시 대가족 속에서 자란 두 며느리가 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정은 평화롭고 안락한 쉼터가 돼야한다. 그 안식처에는 내 핏줄 뿐 아니라 새 식구가 된 며느리와 사위도 깃들 수 있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