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5
나와 나, 나와 타인의 관계
1.
내가 나를 보는 모습과 타인이 나를 보는 모습은 같을 수가 없다. 나의 실체를 보는 사람은 타인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모습은 타인이 나를 마주하고 보는 모습과는 다르다.
나와 타인이 마주할 땐 그의 오른손 편에 나의 왼쪽 모습이 있다. 그러나, 내가 거울 속의 나를 볼 땐, 나의 오른손 편에 나의 오른손이 그대로 보인다.
대칭의 양쪽이 아무리 똑 같다해도, 타인이 보는 나의 얼굴과 내가 보는 거울 속 나의 얼굴은 다를 것이다. 인화된 사진을 보면 늘 거울 속에서 보던 나의 모습과는 달라서 낯선 내 모습을 사진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타인이 나를 볼 때는, 내가 사진으로 보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진의 내 모습을 함께 보면서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데, 나는 사진의 내 모습이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오른쪽과 왼쪽이 바뀐 모습이 어디라고 지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금이라도 다르기 때문에.
Erich Heckel, Frau vorm Spiegel (1910) Kirchner Museum, Davos
2.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타인이 듣는 내 목소리는 다르다. 타인이 듣는 내 목소리는 내가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과 똑같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함께 들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색해하지 않는데, 나는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에 어색해한다. 평소에 소리낼 때마다 듣던 내 소리와는 약간 다르니까.
3.
어제 전화를 하는 중에 전화기에서 내가 한 말이 계속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평소에 듣던 내 소리와는 다른 나의 말소리.
기계를 통해 듣는 나의 말소리가 평소에 남들이 듣는 나의 소리일 것이다.
통화를 하는 중에 나는 계속, '아, 저 사람에게 들리는 내 소리가 바로 이렇구나'하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내 소리는 그렇게 들리는구나!
기계를 통해 듣는 나의 소리처럼.
타인에게 내 모습은 그렇게 보이는구나!
사진을 통해 보는 나의 모습처럼.
4.
느낌도 다를 것이다.
내가 느끼는 나와, 타인이 느끼는 나.
내가 스스로 하는 나의 평가와, 타인이 평가하는 나.
모습처럼, 소리처럼, 나의 행실이 그렇게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나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면, 나의 사람됨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
아마도 ‘제 삼의 반사경'을 통해서 보는 나의 행동이, 평소에 타인이 나를 보는 내 행동모습일 것이다.
행동을 비춰볼 수 있는 '제 삼의 반사경'은 무엇일까요?
거울도 녹음기도 아닌 또 다른 나의 반사매체는.......
나의 가족이거나, 나의 이웃이거나, 내가 속한사회거나, 내가 속한 자연이거나, 내가 관계된 모든 것들 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