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Nov 08. 2023

가을을 보내며.

입동 단상.

만추, 아직 가을인가? 

초동, 오늘이 입동이니 겨울인가? 

마음은 불타는 가을이고 몸은 움츠러드는 겨울이다. 겨울의 문이 열렸다. 한 발 내딛는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옆지기와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이 입동인가, 가을도 다 갔네." 이렇게 시작된 대화.

불쑥 든 생각에 크게 깨달은듯 '가을'이란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식전 댓바람부터 헛소리를 지껄인 것이었다. 그 헛소리인즉, 영어와 독일어를 예로 들며 제법 심각한 사색을 한 것이다. 

(아래 글은 내가 실수한 이야기이다.)

영어로는 가을이 Fall인데, 물론 Autumn이기도 하지만, Fall이라고 하잖아. 독일어는 Herbst, 참 신기하지? 같은 가을을 두고 미국사람은 낙엽이 지는 것을 생각하고, 독일 사람은 '추수'를 생각하네.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두 나라의 민족성까지 따지며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봤다. 이쯤에서 독자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눈치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추수'의 영어 Harvest와 독일어의 가을 Herbst는 서로 다른 단어이다. 독일어의 '추수'는 die Ernte이다. 영어의 '하비스트'와 독일어의 '헙스트' 발음이 비슷하여 착각을 한 것인데, 나의 방자한 생각이란 놈이 쓸데없는 가지를 뻗는 바람에 헛소리를 남발한 아침이었다. 괜히 잘난 척하다가 머쓱해졌다. 가을이 품고 있는 단어 추수와 낙엽이 한데 엉키고, 어쭙잖은 영어 독일어 실력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가을이 불타고 있다. 곧 사그라들 불꽃이 화려하다. 덩달아 마음까지 태운다. 내 안에 불씨가 남아있던가...

가을은 단풍, 낙엽, 열매, 이런 단어들을 품고 있다. 눈을 미치게 하는 것은 단풍이고,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은 낙엽이다. 시들고 저물어가는 계절을 위로라도 하듯이 가슴 뿌듯하게 해주는 것은 열매이다. 오 헨리(William Sidney Porter, 1862-1910)의 <마지막 잎새>가, 이브 몽탕(Yves Montand, 1921-1991)의 <고엽>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가을날>이 이번 가을에도 나를 찾아왔다. 해마다 어김없이 때를 맞춰 다녀간다. 문득 드는 생각, 나는 현재에 살고있는가, 과거에 매어있는가, 미래로 날아가고 있는가, 아무래도 괜찮다. 현실에 허둥대도, 회상에 가슴 적셔도, 앞날을 꿈꿔도, 나는 쨍한 겨울날의 추위를 좋아하니까 입동의 문을 활짝 연다.


2023. 11월 설악 단풍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2023. 11월 영혼을 깨우는 맑은 물.


오래 전에 만든 북아트 작품; 모두 9.5X 7Cm 사진 30장이 들어갔다. 여기 사용한 사진은 10년 전 사진이다.


2023년 11월 설악.





작가의 이전글 차 한잔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