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누가 이 선을 그었을까?>
이 연재는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주와 문화의 경계에서, 디지털 시대의 감정과 자아에서 예술의 해체적 언어 속에서 마주했던 경계에 대한 글이다. 완결된 이론도 아니고 화려한 주장도 아니다. 살면서 느낀 ‘작은 선’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 선들 앞에서 품었던 감정의 결들에 대한 고백이다. 일방적인 기록을 넘어 독자와 나누고 싶은 질문이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계가 있었다. 때로는 경계선 밖에 불안한 자세로 서서, 때로는 경계선 안에서 편안히 앉아, 눈에 보이는 선이든, 마음속에 그어진 선이든, 삶은 경계 위를 걷는 일이었다. 그 선은 차단이자 초대였고, 멈춤이자 시작이었다.
삶을 돌아보면, 경계는 언제나 다양한 얼굴로 다가왔다. 이제 그 경험들을 다섯 개의 장(場), 다섯 개의 전시실처럼 나누어 보여주려 한다.
1부 ― 개인과 가족, 이주와 정체성
첫 번째 전시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개인이 배제된 역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나와 함께 경계의 안팎에서 살아온 얼굴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파독 간호원이었던 사촌언니, 미국 간호원이 된 사촌언니, 파월 장병인 작은 오빠, 화교와 결혼한 큰 오빠, 화교 올케, 영국 남자와 결혼한 조카, 40대 초반에 뛰어든 나의 독일 생활 5년, 영국 생활 3년, 우리 가족이 된 홍콩 출신 막내 며느리, 그녀와 막내아들과 손녀가 이룬 다문화 가정.
가족 속 다문화의 풍경, 우리나라 해외 이주 노동의 역사와 현재의 다문화 사회를 살펴본다.
1 ; 나는 경계 위에 있었다. 경계 위의 나, 흔들리는 정체성
2 ; 문턱에 선 며느리. 가족안의 타자. 문화적 교차 경험
3 ;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다. 다문화주의 에서 공존의 구조로
4 ; 이주자는 우리의 과거였다. 하와이 독일 중동으로 떠났던 노동. 베트남 파병
5 ;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했다. 언어의 경계, 감정의 소통
2부 ― 디지털 시대의 감정, 언어, 자아 - 보이지 않는 경계
이어지는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다. 디지털 기술은 국경을 허물었지만, 동시에 감정을 가르고 자아를 분열시켰다.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사회, 정체성의 모호함, 존재의 불안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문제다. 다중 정체성의 불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보이지 않는 선이 인간 내면에 새겨진 풍경을 보여준다.
6 ; 국경은 감정도 가른다. 디지털 시대, 감정의 단절과 공유의 붕괴
7 ; 나를 잃은 시대. 분열된 자아, 다중정체성의 불안
8 ;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사회. 피상적 소통과 외로움의 심화, 알고리즘
9 ;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 파편화된 정체성과 AI언어 시대의 자아
10;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관계, 기억, 존재의 감각 회복
3부 ― 예술과 표현, 경계의 해체 - 감각과 상상력의 확장
세 번째 전시실은 가장 자유롭고도 도전적인 공간이다. 예술은 경계를 부수거나, 새롭게 그리거나, 때로는 낯선 길을 연다.
캔버스의 선은 단지 구획이 아니라 사유의 길잡이였고, 망명 문학은 중심의 언어를 흔드는 목소리였다. 번역의 실패와 가능성 또한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나는 이 장에서 예술의 해체적 힘이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지를 이야기한다.
11; 예술은 어떻게 경계를 넘는가. 형태, 장르, 감각, 언어의 틀을 해제하는 예술의 힘
12; 문학은 경계 위에 선 자들의 목소리다. 디아스포라와 망명 문학의 언어
13; 캔버스의 선, 경계인가 표현인가. 고흐, 로스코, 몬드리안, 폰타나, 리히터가 그은 선 너머
14; 말의 경계, 번역의 역설. 언어 사이를 걷는 번역자들의 고뇌
15; 경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상상력의 문턱에서 다시 묻는 질문
4부 ― 경계와 갈등 사회적 경계, 차별, 긴장에 대한 탐구
네 번째 공간은 사회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을 다룬다.
‘경계’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은 ‘갈등’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갈등의 덤불을 헤치는 고된 작업이다. 종교, 이념, 젠더, 성소수자, 세대, 장애, 도시와 농촌… 사회적 갈등은 열 손가락을 다 꼽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견고한 경계선들이 여기에 있다.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겪는 갈등을 그려보고자 한다.
나는 이 갈등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적인 화해와 공존의 길을 더듬어 보았다.
16; 유일신과 종교다원화. 믿음의 경계에서
17; 분단국가의 이념갈등. 예술가와 인간관계의 경계선
18; 경계 위의 목소리들. 젠더와 다양성의 풍경
19; 세대갈등. 아날로그와 디지털, 도시와 농촌 세대.
20; 장애와 비장애. 정상이라는 기준은 무엇인가.
5부 ― 예술의 경계, 실제 작품 중심
마지막 전시실은 다시 예술로 돌아와 실제 작품들을 열어본다. 문학, 회화, 영화, 음악이 그려낸 경계인들의 초상은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 감정을 불러낸다.
카뮈와 카프카, 베이컨과 뒤뷔페, 피카소와 엘리 비젤의 작품들은 상실을 품고도 창조를 잉태하며, 예술이야말로 경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언어임을 말해준다.
21; 이방인과 벌레, 경계 바깥의 인간들. 카뮈 <이방인>, 카프카 <변신>
22; 미와 추의 경계.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
23; <기생충>과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 속 경계
24; 소리 표현의 다양성. 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 크로스오버
25; 예술과 기억. 상실과 창조. 엘리 비젤, 마야 린, 피카소
<경계, 누가 이 선을 그었을까?>는 하나의 이론서가 아니다. 완결된 정의를 내리는 대신,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글,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선’을 떠올리게 하는 기록이다.
경계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 선 위에서 때로는 정체성을 되찾았고, 때로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경계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앞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나는 독자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당신은 언제, 어떤 선 앞에 서 있었는가?
그 선은 당신을 가두었는가, 아니면 새로운 만남을 열어주었는가?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질문의 자리다. 그 앞에서 멈추어 서는 순간, 우리는 자신과 타자, 사회와 예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이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기억을 불러내고, 그 기억이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