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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biny May 11. 2020

Leon

상하이편-2018.10.20

날씨가 화창한 그 날, 수업이 일찍 끝나고 갑자기 그에게 연락을 했다. 왠지 마음이 들떴다.

우리는 분명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못 본 척 그대로 잔디밭에 계속 누워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인사를 하고 잠시 같이 잔디밭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둔 M50(상하이의 갤러리 단지)으로 가자고 했다.


모간산루 M50


그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러 떠난 것은 그에게 빠지게 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갤러리에서 신중히 작품을 감상하던 그의 모습, 골동품을 좋아하던 그, 그림을 보는 나의 거울에 비친 모습을 사진에 담던 그, 특히 좋았던 것은 어느 갤러리에서 그는 파란색 바탕의 그림을 보고 있었고 나는 반대편의 분홍색 그림을 보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각자 한동한 그림을 바라보다 천천히 서로의 방향으로 움직이며 작품을 감상했다. 나는 그 파랑, 분홍의 작품들이 굉장히 좋았다. 심플했지만 동양 세계의 천국이 개성적으로 표현이 되었다. 그 공간에 있던 순간이 좋았다. 나중에 서로 얘기를 나눌 때 그가 그 그림들이 가장 좋았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통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느끼기에 서로의 반대편에 전시된 작품 중, 파란색은 천국이고 분홍색은 지옥이며 그 중간에 놓인 테이블의 차와 다과는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매개체가 아니었을 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갤러리에서 그가 두 작품을 사이에 두고 똑바로 서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 그림과 함께 서있던 그의 모습이 좋았다. 몰래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란, 녹색 계통의 작품의 컬러감과 그가 입은 옷, 신발, 정확이 그 사이에 위치한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그는 맘에 들어했다. 자기는 항상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었지 누군가 자신을 찍어주지 않았는데 정말 기쁘다고 했다.



그는 그 그림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 그림은 그의 어릴 적 수영선수였던 기억을 되살린다고. 당시 엄마가 강압적으로 수영 레슨을 받게 했는데 힘들었다. 그리고 수영장이 있는 이 그림은 부정적인 색감을 갖고 있기에 이 그림의 긍정적인 방향의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 또한 그 그림이 기억에 남았다. 그가 그림에 대한 자기의 이야기를 말해줘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는 그에게 바로 그 긍정적인 그림을 그려주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내 손으로 도화지를 사고 색연필도 샀다. 정말 오랜만에 그림을 그린다. 내가 수영장에 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졌다. 수영장의 크기를 조정하고 무지개의 위치, 방향, 어떤 돌고래를 그릴지 열심히 생각해두고 그와 헤어진 뒤 떠오른 김에 바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와 나의 지금 관계가 어떠하던 내가 그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다. 그는 나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A little pink dolphin

갤러리에서 나와 상하이역에 있는 라멘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육교에 올라갔는데 그 순간의 야경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사진이 멋있었다. 그의 매력 뽀인트가 또 추가되었다. 특히 내가 흥미로워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그가 잘 해내니 매력 있어 보이는 것 같다.


육교에서 찍은 사진


그는 라멘을 젓가락으로 처음 먹어본다며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내가 먹는 방식을 따라 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배우려는 것이 이뻐 보였다.


라멘을 먹으며 그는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건만 그가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나에게 많이 물어본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

"너를  더 알기 위해서는 어느 갤러리로 가야 하니?"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있지만 리온과 있을 때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래서 내가 나의 진짜 모습을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영어로 힘들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다.


밥을 먹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에 가기로 했는데 추워져서 잠시 그의 기숙사에 들려 재킷을 가지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기숙사 앞에 독일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넘나 불편한 것..!


그렇게 잡던 손을 놓고 어색하게 그들과 인사하고 그의 방으로 갔다. 그의 방에 있는 견과류를 보고 그도 내가 좋아하는 중국 견과류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는 것만큼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비슷한 부분도 있다, 신기하다.


Da ning Park

우리는 공원에 도착해 벤치에 앉아 있었고 내가 고른 노래들로 시간이 채워졌다.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 그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몇몇 곡은 그가 좋아하기도 했고, 도중에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는 자주 나를 빤히 응시한다. 이게 싫기도 하지만 떨리기도 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같이 그를 쳐다보고 계속 응시하고 있으면 왠지 키스가 시작될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진짜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를 쳐다볼 듯 말 듯 모른 체하고 그도 나를 쳐다보다 안쳐다 보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음향실에서 서로의 마음은 알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은 사이에서 어떻게 할지 방황하는 두 사람의 모습 말이다. 참다못해 결국 너는 날 왜 그리 빤히 쳐다보니 라고 물었다.


그는 “ You are a piece of moving art. You’re so beautiful. “라는 말을 시전에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추워서 손을 잡기 시작했다.

"밤이고 아무도 없고 우린 손을 잡고 있으니 음악을 틀어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노래의 가수는 무려 그의 친구였다. 그의 친구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그 와중에 가사는 그가 작사한 것이다.

아, 멋있잖아


학교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각자의 기숙사가 있는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지는 일만 남았다.

"그래서 우리 이제 뭐하면 되는 거야?"

"안녕하면 되는 거지."

"그래, 빠이~"

하고 안으며 비쥬를 하는데 대뜸 키스를 했다.

너무 짜릿했다.

언젠가 하겠지, 하겠지 하다, 왜 아직도 안 하는 거지 하다, 이렇게 안 하고 헤어지는 건가 하다 드디어 입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내 방으로 갈래? 내 방으로 가자..."


그와 함께한 시간이 좋았다.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쉽지 않다. 한국어로 대답하기에도 쉽지 않은 질문이기에 영어로 표현하기는 더 힘들다. 하지만 그 질문들이 나를 괴롭히는 만큼 나를 더 성장시켜 줄 것 같다.

그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와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다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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