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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biny Jun 12. 2020

슬픔 나누기

상하이편-11월 넷째 주

여느 때와 같이 그와 함께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즐겁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그가 달력을 확인하더니
“나 오늘로부터 2주 뒤가 귀국일이야...”
“뭐라고????”

이렇게 빨리 귀국일이 다가올 줄이야! 그동안 행복했던 나머지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 하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그를 곧 더 이상 못 보게 된다니 슬퍼졌다. 그리고 한국과 독일의 거리를 생각하니 더욱 까마득하고 막막해졌다. 남은 시간은 이별을 향해 카운트 다운하는 중 인 것 같았다.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러다 그가 젖은 목소리로
“I love you.”

라는 고백을 하며 입을 맞췄다.

전에 독일 친구가 나에게 자기네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참 무거운 말이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상대는 나와 같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으니 나의 고백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어 조심스럽고 상대방이 나에게 같은 대답을 줄 수 없기도 하니 큰 용기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 친구와의 대화가 번쩍 떠오르고 난 더욱 크게 울어버렸다.
“나도 사랑해 .”


그 후로 귀국 날짜에 대한 이야기를 미루다 미루다 이랬다 저랬다했다. 금요일에 퇴근 후 그와 친구들과 바에 갔다. 그와 함께 줄을 서서 주문 차례를 기다리다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안부인사를 하고 저쪽에서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또 저쪽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난 사실 피곤하고 멍했다. 친구들이 사라지자 그가 말했다.
“나 원래 예정했던 날짜대로 귀국하려고.”
어깨를 으쓱하며

.. 응?
이렇게 빨리? 그냥 혼자 결정해버린 거야? 이렇게 빨리 헤어져야 하는데 자기는 괜찮은 거야?
그렇다고 내가 가지 마 좀 더 있어줘라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추가 체류비를 내줄 것도 아니고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그가 마냥 나만 기다릴 수도 없다. 그는 학기가 끝날 때를 맞춰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이기 때문에 더 남을 공식적인 이유는 없다. 그와 같은 코스로 수업받는 친구들도 그때쯤이면 다 떠난다. 그러면 리온이는 더 이상 나 이외에 이곳에 아는 사람도 없다.

혼란 슬픔 서운 절망의 감정이 휘리릭 지나고 나는 어정쩡하게 웃고 그래 라고 말하고 눈을 돌렸다.
그런데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돼서 그를 쳐다볼 수가 없었고 이런 기분으로 이 난잡한 곳에서 춤을 추거나 웃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와서 어디로 갈까 방황하다 편의점에 가 커피를 사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난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걸까? 그가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 잘 놀고 있지 않을까? 자기는 이렇게 빨리 떠나도 괜찮은 거야?


한참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그가 나타났다.

그가 보여서 기뻤지만 바로 우리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사이 때문에 슬퍼졌다. 그러니까 사실 내가 그의 결정에 서운함을 느낄 관계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편의점으로 들어와 내 곁에 앉아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너를 계속 찾고 있었어, 급하게 어딘가에 가길래 화장실인 줄 알았는데 나오지도 않고 그래서 뭔가 잘못된 거 같아 이리저리 물어보러 다니고 친구들은 나한테 네가 어딨는지 물어보고, 아무튼 이리저리 찾아다녔어... 그리고 편의점의 창문 밖으로 네가 보였을 때 그 순간은 비만 내리지 않았을 뿐 상해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어. 왜 그런 거야?”

나는 나의 혼란스럽고 서운한 마음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서운해해도 괜찮은 걸까? 고민이 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러면 그는 자기의 눈도 못 쳐다본다며 서운해했다.

고민하다 말했다.
“네가 그 날을 떠나는 날로 결정해서 충격받았고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그게 사실 나를 가장 슬프게 했어. 그리고 다들 즐기고 있는 그 분위기가 내 기분과 맞지 않았고 너와 친구들의 시간도 깨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냥 나왔어. 생각을 좀 하고 싶었어”


“그냥 나한테 더 머무르라고 말하면 되잖아?!”
그 얘기를 하니 눈물이 나버렸다. 더 머무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했다. 그리고 내가 슬프거나 울고 싶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한테 말해 달라고 왜 혼자 그렇게 도망쳐버리냐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의 아주 슬프거나 우울한 그런 종류의 감정을 동생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픔을 나누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슬픈 나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이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고,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헌신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내 인생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게 정말 존재할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홀로 견뎌왔어, 내가 슬픔을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은 오로지 동생뿐이었어.”
“그래도 나한테는 슬픔을 나눠줘, 혼자서 가지고 있지 마, 슬픔을 나누면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돼.”


나한테 이러한 감정을 얘기해도 괜찮은 누군가가 생긴 걸까, 그를 좀 더 믿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프랑스 조계지를 걸었고 그가 카페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사줬다. -슬플 때는 달콤한 걸 먹어줘야 해 라면서-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다른 것 같다. 더욱 단단하고 강해진 것 같다. 그동안 외로웠던 것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일이다.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가끔 외로웠다. 꼭 누군가가 있어야 완전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있어야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당시 가끔, 사실 꽤 오랫동안 외로웠고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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