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힘들었던 여정은 끝날 수 있을까. 드디어 고3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2 때까진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해도 내신성적이 잘 나왔다. 그런데 이제 반이나 학교에서 몇 등을 하는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나머지 인생이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렇게 예비 고3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중 갑자기 입시제도가 바뀌었다. 기존의 학력고사에서 수능과 본고사를 보는 방식이었다. 수능은 교과서에서 문제가 안 나온다고 했다. 본고사는 문제가 너무 어려워 한 문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단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시중에는 문제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몰라 고2 겨울방학을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대로 날렸다.
고3 첫날이 되어 학교에 갔다. 건물에 ‘자랑스러운 선배들’이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전년도 서울대 합격생 명단이었다. 생각보다 인원수가 많아서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재수나 삼수생이 많았다. 그래도 저들은 이 구렁텅이에서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과연 내가 저들에 포함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고3 담임선생님은 50대 후반의 정치 과목 담당이었다. 진학 상담을 십여 년 이상 담당한 전문가답게 냉정하게 학생들을 평가했다. 학기가 시작된 후 담임은 나보다 같은 반 고현수를 더 인정하는 눈치였다. 인문계는 5개 학급이라, 나는 고2 때 각 반 1등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현수는 처음 듣는 애였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첫 관문인 3월 말 전국 모의고사에서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모의고사 날이 되었다. 나는 반드시 담임에게 내가 학급 선두주자임을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시험지를 받고 비장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1교시는 언어영역이었다. 역시 수능 문제는 지문이 길고 5지 선다형으로 풀기 어려웠다. 마음은 이미 만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졌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침착히 문제를 풀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에 앉은 아이가 다리를 떨었다. 나는 집중하려 했다. 나의 노력과 반대로 옆 친구의 다리는 계속 떨렸다. 마치 옆 책상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돼’하며 나는 팔로 내 오른쪽 관자놀이를 가렸다. 어떻게 하든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번에는 다리 떨리는 소리마저 들렸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저 다리만 가만있으면 집중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시험시간에 그 친구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눈은 이미 떠는 다리에 가 있고, 문제는 안 풀리고,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눈앞에는 현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 그대로 맥이 풀렸다. 나는 문제 풀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나만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다시 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은 거의 다 지났다. 첫 모의고사를 망치다니. 마치 인생 전체를 내던진 것 같았다.
나는 언어영역이 끝나고 그 학생에게 벌컥 화를 냈다. 그 친구는 황당해했다. 주위에서 말려 주먹다짐 직전에 겨우 끝났다. 내 마음은 처참했다. 남은 4교시까지 대충 답안을 쓰고 시험을 마쳤다.
그날 이후 난 충격을 받았다. 첫 시험을 망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시험에도 또 누가 다리를 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공부를 할 때도 집중이 안 됐다. 어차피 공부해도 누가 다리를 떨어 문제를 못 풀면 소용없었다. 나는 매일 저녁 엄마를 잡고 울었다.
모의고사 성적을 본 담임은 성적이 너무 나쁘니 의아해했다. 다음 모의고사 직전에 엄마가 내 상태를 학교에 얘기했다. 사정을 들은 담임은 그래도 혼자 시험 보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신경이 덜 쓰이게 시험시간에 자리를 옮겨 주겠다고 했다.
시험 날이 되었다. 담임은 뒤쪽에 앉은 나를 맨 앞의 학생과 바꿔 앉게 했다. 앞자리에 앉아 보니 뒷자리보다 훨씬 나았다. 고개를 숙여 문제 푸는 시늉을 해보니 앞쪽에 사람이 없어 좋았다. 옆과 뒤에 애들이 있지만, 오른쪽에 필통을 놓고, 왼쪽은 팔로 가리면 괜찮을 거 같았다. 이제는 굴레에서 벗어나 시험시간에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 듯했다.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시작이었다. 옆과 뒤에 앉은 학생의 다리들이 떨리는지 신경이 쓰였다. 다리뿐 아니라 아예 다른 아이들의 모든 것에 신경이 쏠렸다. 문제를 푸는 건지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음만 다급할 뿐 지난 시험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정신을 딴 데 쏟은 상태로 시험이 끝나버렸다.
시험 후 담임에게 내 상태를 얘기해도 이젠 믿지 않았다. 나의 괴로움을 얘기할 상대는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다 인생 망치니 정신 차리라고 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시험시간에 또 그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이제는 귀에서 소리까지 들리고, 그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내가 자꾸 이상하다고 하니 엄마는 답답해만 할 뿐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저녁마다 울어봐야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고3 수험생활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