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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Mar 26. 2020

잊혀진 계절

성장기

6월 말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학교 건물을 나섰다. 나는 비에 젖은 채 겨우 승용차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 엄마가 하얀색 쇼핑백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 복돌이가 들어있었다.


복돌이는 흰색에 검은색 점이 섞여 있었다. 그냥 잡종이고 똥개였다. 아직 강아지였는데, 얼굴이 귀여웠다. 큰 눈망울에 촉촉한 코, 날렵한 턱선을 가진 아이였다. 핑크빛 발바닥은 지우개같이 부드러웠다.


엄마는 학부형에게 한 마리 받았는데 집에서 개를 봐줄 사람이 없어 어떻게 키우냐고 난감해했다. 개를 집안에 들이면 더러워지니 집 밖에서 키운다고 했다. 그래서 복돌이는 주로 마당에서 놀고 잠은 신발장 옆에 깔아 둔 매트 위에서 잤다.


나는 개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 병아리를 학교 앞에서 사다가 키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병아리가 닭이 되어 집에서 잡아먹었다. 집 앞에 솥을 걸고 거기에 내가 키운 닭을 끓여서 먹었다. 그 닭을 잡아먹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복돌이는 너무 귀여웠다. 병아리는 모이 줄 때나 나한테 오지 평소에는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병아리와 달리 복돌이는 하얗고 귀여운 얼굴로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학교에 있는 사이 봐줄 사람이 없었다. 처음에는 마당에 묶어 놓고 다녔다. 며칠 지나니 복돌이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엄마는 그 아이를 집 안에 둘 생각은 없었다.


낮에는 풀어두기로 했다. 처음에는 복돌이를 마당에 두고 대문을 닫고 다녔다. 그러나 대문은 우리 가족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대문 열쇠가 고장이 나 잠기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복돌이는 사람이 없는 낮에는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우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복돌이는 멀리서 달려왔다. 대문 앞에서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짖어댔다. 제자리에서 돌기도 하고 점프도 하는 모습이 마치 너무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차가 골목 어귀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복돌이는 쏜살같이 달려와 춤을 추었다. 


나는 그 애가 어떻게 우리 차 소리를 다른 차와 구별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는 골목에 들어서기 전 속도를 줄이고 조용히 차를 운전해봤지만, 어느새 복돌이는 알아차리고 집 앞에서 춤을 춰댔다. 


시간이 흘러 10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날씨가 쌀쌀해져 복돌이의 겨우살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겨울에도 동네를 그냥 돌아다니게 해도 되는지 아니면 집에 들여놔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골목 어귀를 들어와도 복돌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날은 집 앞에 없었다. ‘어디 도망이라도 갔나.’라고 궁금해하며 집 앞에 주차했지만, 그 애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대문을 여니 마당 잔디밭에 복돌이가 있었다. 하얀 배를 하늘로 내놓고 누워있었다. 복돌이는 벌린 입으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우리를 향해 머리를 흔들었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우리 가족은 복돌이를 안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왕십리에서 잠실로 오는 길인 자양동에 동물병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서 울면서 엄마에게 빨리 가 달라고 했다. 급히 병원 앞에 차를 세우고 숨을 몰아쉬는 복돌이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복돌이의 분홍빛 배에 청진기를 대고, 입안도 확인했다. 동네 쓰레기통에서 뭘 잘못 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복돌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움직이지도 못했다.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의사는 주사도 놓고 밥에 섞어 먹일 약도 주었다. 


우리는 복돌이를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관 신발장에 있는 보금자리에 눕혀주었다. 복돌이는 흐릿한 눈만 껌벅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복돌이가 갔어.”


엄마가 잠에 서 깬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복돌이는 그대로 자신의 보금자리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차마 볼 수 없었다. 아빠가 출근하기 전에 묻어주기로 했다. 


아빠는 복돌이가 매일 덮고 자던 이불로 그 애의 몸을 둘둘 감쌌다. 삽을 들고 집 앞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빠는 땅을 파고 그곳에 그를 묻어주었다. 초겨울의 찬 이슬이 젖은 땅에 복돌이는 묻혔다. 그게 11월 1일이었다.


가수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의 첫 소절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이다. 나는 가사를 바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1월의 첫날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매년 11월 1일이 될 때마다 복돌이가 좋아하던 과자를 신발장 옆에 놓고 그를 기억했다. 


엄마는 복돌이의 목줄을 푼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나는 집으로 올 때마다 보이는 그 동물병원을 원망했다. 우리 복돌이도 살려내지 못한 돌팔이 의사라고 말이다. 


그가 죽은 지 35년이 지났다. 비록 내 곁에 몇 개월밖에 없었지만, 복돌이는 내 마음에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은 다른 개를 키웠는데, 그때는 꼭 집 안에서 키우고 병원에서 예방주사도 맞게 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개를 키우지 못한다. 심리상담사는 사춘기인 아이들의 정서에 좋다며 애완견을 둘 것을 권유한다. 나는 또 다른 이별을 하기가 두렵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가 죽는다는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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