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AI 시대, ‘조용한 사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by 테오


주어진 일만 딱 끝내고, 6시 땡 하면 칼퇴합니다. 회식은 당연히 불참이고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등장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직장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정해진 업무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이 태도는,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던 과거에 대한 반작용이자 번아웃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업무 현장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조용한 사직은 완전히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I가 나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AI 도입을 밀어붙이는 조직의 압박 속에서, 직원들의 이탈이 더 교묘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용한 사직’을 넘어, ‘조용한 균열(Quiet Cracking)’이라는 더 근본적인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사직을 넘어, ‘조용한 균열’의 시대로


‘조용한 사직’이 개인이 주도적으로 일과 거리를 두는 ‘선택’에 가깝다면, ‘조용한 균열’은 조직의 과도한 압박으로 인해 직원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Perceptyx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용한 균열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변화와 압박에 직면했을 때 발생하며, 이는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조직적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1]


생성형 AI의 도입은 이러한 ‘조용한 균열’을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요인입니다. 가트너(Gartner)의 2026년 보고서는 많은 조직에서 ‘문화적 불협화음(Cultural Dissonance)’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2]


리더들은 AI를 통한 혁신과 성과를 외치지만, 정작 직원들은 충분한 지원이나 보안 정책 완화, AI 활용 교육 없이 AI 도입을 강요받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현실. 이러한 괴리가 바로 조직과 직원 사이의 ‘조용한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AI 시대의 조용한 사직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무책임함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문화와 리더십에 대한 경고등이자, 심리적 안전망 없이 변화의 압박에 내몰린 구성원들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입니다.


조용한 사직의 두 얼굴: 행동 vs. 정서


이러한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최근 조직심리 연구에서는 조용한 사직을 '행동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으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3] 더 많은 차원으로 나누는 연구도 있지만, 우선 두 차원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AI 시대에 이 두 차원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은 서로 다른 원인과 결과를 낳습니다. 예를 들어, AI 도입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번아웃을 막기 위해 의식적으로 초과 근무를 줄이는 것(행동적 사직)은 합리적인 자기 보호 전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와의 협업 과정에서 일의 의미를 잃고 마음이 떠나버린 상태(정서적 사직)는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훨씬 더 위험한 신호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혹시 나도 AI 시대의 변화 속에서 조용한 사직, 혹은 조용한 균열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세요.


[행동적 차원]

[ ] 나는 AI 관련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

[ ] 나는 AI를 활용하면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음에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 ] 나는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검토하고 수정한다.


[정서적 차원]

[ ] 나는 AI와 함께 일하면서부터 내 일의 가치나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 ] 나는 회사가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사용하는 AI 도구의 성능에만 관심이 있다고 느낀다.

[ ] 나는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만약 위 항목들 중 상당수에 해당된다면, 당신은 이미 변화의 압박 속에서 힘겨운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당신이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속한 조직이 AI라는 거대한 변화를 건강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조용한 사직에서 벗어나, AI 시대에 다시 일의 주도성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References


[1] Perceptyx. (2025, October 24). Employees Are Quiet Cracking: What the Data Is Trying to Tell You.

[2] Aykens, P., Lowmaster, K., McRae, E. R., & Shepp, J. (2026, February 2). 9 Trends Shaping Work in 2026 and Beyond. Harvard Business Review.

[3] 김광태, 이혜원, 손영우. (2023). 다차원적 조용한 사직 척도 (MQQS)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557-583.

[4] Liu, Y., Wu, S., Ruan, M., Chen, S., & Xie, X.-Y. (2025, May 13). Research: Gen AI Makes People More Productive—and Less Motivated. Harvard Busines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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