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입이 고급이었다.
"나는 계란을 완숙 아니면 안 먹어. 그래서 군대에서 많이 맞았는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 줘야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 지금도 생선은 그 친구(와이프)가 가시를 발라줘야 먹는다고!"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마로 흘러내려온 반곱슬 앞머리를 연신 냅킨으로 닦는다.
신기하게 닦아도 닦아도 땀은 멈출 줄 모른다. 오히려 뚝뚝 떨어진다.
"아유. 이런 김치찌개 말고, 이 근처에 초밥집 같은 거 없나?"
근무 중간 점심시간에 나와서 먹는 밥에 이러쿵저러쿵 불만이 많은 그에게 아무도 대꾸를 않는다.
키 180, 적당한 살과 어울리지 않게 그는 먹는 것에 매우 예민했다.
그는 자신의 와이프를 <그 친구>라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참 대단해. 우리 엄마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명절 때는 집에서 반찬을 다 해가고 집안 경조사 있을 때는 솔선수범해서 우리 누나들까지 다 챙긴다니깐."
이렇게 말하던 그날도 그는 후배들과 초밥집에서 술자리를 잡았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그 선배와 술을 마시면 집에 못 들어간다며 애초에 그와의 눈 맞춤을 피해야 한다고 쑤군덕거렸다.
매일 술을 마시는 그는 아침저녁, 회사와 술자리 구분이 불가능한 듯 보일 때도 있었다.
아침 9시에 겨우 출근해서는 숙직실에 들어가 점심시간까지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직원이 회사에서 월급을 타고 있다는 것은 회사의 큰 손실임이 분명하지만
그 누구도 발설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은 술이 덜 깼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가 김여사 남편이었으면 진작에 이혼했어."
"네?!"
"여자가 집에서 애를 봐야지! 애 보는 게 돈 버는 일인 거 몰라?
김여사네 애들 나중에 잘못되면 그 죄책감 어쩌려 그래? 우리 집 <그 친구>는 집에서 내 아들 둘 잘 키우고 시부모 잘 받들고 매일 같이 집안일하고 그러고 지내는데, 그 집은 애들 아침밥은 먹나? 여자가 애를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한거 아닌가?"
그 여직원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안다.
싸워봤자 얻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내가 그 상황 었더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남자들이 많은 직장에서 기혼여성들에 대해 비난할 때
웃으며 대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맞서 싸워야 하는지
남성이든, 여성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그에 대한 해답을 그 누가 알고 있을까.
그런 말로 상대 여직원을 쏘아붙이고
그는 오피스 와이프와 강원도로 출장을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젊은 남자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와! 저렇게 살아야지! 멋져!"
10년이 지난 그에 대해 기억에 남는 것은
곱슬 앞머리에서 떨어지는 땀방울,
여직원과 떠나던 강원도 출장,
그리고 그렇게 자랑하던 <그 친구>.....
아직도 <그 친구>와 잘 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