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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온 May 02. 2023

선하지 않다고 악한 건 아닙니다.

상냥함이 곧 선함이고, 그것만이 올바름이라고 굳게 믿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린 날에는 누군가의 착하다, 는 말 한마디에 웃음을 짓고는 했습니다. 그 문장이야말로 내가 선하고 옳은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그 조각들을 모아서 나 자신이 완전무결하게 바르고 선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말하는 의젓한 아이, 양보하는 아이, 고분고분한 아이로 성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는 데 딱히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에도 죄악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기억이 축적되고 스스로의 성정을 인지하면서 알게 된 건, 상냥함의 껍데기를 쓴 가짜 선을 혐오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적나라하게 악감정을 표출하는 부류보다도, 싫어도 좋은 척 기분 나빠도 괜찮은 척함으로써 본인의 선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한 기피감을 느꼈습니다. 말 그대로 위선적인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피해왔습니다. 

한참을 지나고 돌이켜보니, 유독 기억에 남는 악연은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속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큰 배신감을 안겨준 것 역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의 솔직함을 악으로 몰아가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선하다는, 그렇기에 또 우월하다는 감각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스스로의 선함을 증명하는데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조건적인 상냥함을 베풀어서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는 진작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욕심도 없기에, 선택적으로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에도 불만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선악은, 알고 보니 자신과의 상성을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내리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도 선한 사람이라고 하긴 어려운, 계산도 빠르고 영악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버럭 화를 내거나 때로는 수그리기도 하는,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시간이 갈수록 선함과 올바름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만 굳건해집니다. 내게 올바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결정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선의가 나에겐 불행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만, 위선으로 스스로가 선하다고 자위하는 삶이 참 역겹다는 것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에게 선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내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상냥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나의 친절이 곧 선함이라는 오만에 취해있지도 않지만, 그것이 거짓 하나 없는 선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따금 나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나의 진심만큼은 의심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늘 진심을 다 할 수 있는 관계에만 상냥하고 친절한, 이해타산적이고 모자란 사람입니다. 그런 영악함 말고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제가, 모든 계산과 의심을 제쳐두고 먼저 손을 내미는 데는 오로지 진심뿐이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합니다.

위선으로 겉모습을 꾸며내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증명하기에는, 내 사람들에게 손 내밀 시간도 부족한 짧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제가 단 한 번이라도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낸 적이 있다면, 그때의 저 역시 이 짧은 인생의 일부분을 도려내어 나누고 싶을 만큼 그토록 진심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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