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례온 Mar 28. 2023

시간은 공평하지만 시계는 불공평하다.

시침과 분침을 잃은 시계의 뻐꾸기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반오십, 스물다섯, 이제는 제법 자주 사회인으로 오해받는 나이. 그렇지만 사회인으로 나설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한 (혹은 않은) 졸업학년.


잘 하는 거라고는 주어진 걸 공부하는 것뿐이라서 대학에 다니면서 얻은 거라곤 학점뿐이다. 그거라도 챙겨서 다행이야,라기엔 다른 건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나 나름대로 알찬 학창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과 나란히 하기엔 나는 이력서가 텅 비어있다.


분명 다들 처음 살아보는 삶일 텐데, 어디서 그렇게 잘 배워와서 능숙한 어른이 되어버리는 건지. 나는 아직도 처음조차 경험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는데,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건 시간이라는데, 왜 내 삶의 시계만 너무너무 촉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침과 분침, 초침까지 주어진 것 같고 누군가는 시기에 맞춰 적절한 알림까지 띄워주는 디지털 시계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시계에는 제대로 된 시침, 분침이 없다.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는 건 타인의 시계가 째깍째깍 울릴 때나 이따금씩 어마어마한 굉음으로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고 알려줄 때뿐이다. 오래되어 시간을 표기하지 못하는 내 시계의 뻐꾸기는 이제 창문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어차피 뻐꾸기의 시야를 밝힐 해는 내 하늘에 뜨지 않는다.


그나마 내 시계가 고장났다는 걸 깨달은 뒤로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애쓰는데, 이미 뒤처져버린 내 시간을 되돌리기엔 시간은 역시 공평했다. 나는 내 시간을 벌어진 간격을 따라잡는 데 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을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사용한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고 갈수록 넓어지기만 하는 크레바스를 앞에 둔 채 탐험이 좌절된 모험가가 된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March, 19,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