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쪽 남자 선생님 May 14. 2022

고객의 시선과 나의 시선

그저 나는 안내자의 역할일 뿐이다

네이버 사전에 ‘원무과’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명사] ‘진료나 입퇴원에 관한 절차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병원의 부서’. 나무 위키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도 나온다. [개요] ‘병원에서 환자 진료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서’.                                    


사전적 정의나 원무 업무 실무자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원무의 공통적인 중요한 키워드는 ‘진료’, ‘절차’, ‘처음과 마지막’이다. 진료를 보는 부서는 아니지만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원무 업무를 통해야만 한다. 원무 업무를 보면서 절차에 대해서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진료의 시작은 원무 창구에서의 ‘접수’고, 진료의 마지막은 원무 창구에서의 ‘수납’이다. 우리 원무 창구 직원들은 고객들이 보는 시선에서는 ‘접수하는 사람’, ‘돈 받는 사람’이다. 고객들은 진료 시작 전 접수 과정에서는 ‘을’이고, 진료 끝난 후 수납 과정에서는 ‘갑’이다. 고객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아마도 내 주관적인 견해로는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고객들의 목적은 ‘진료’이기 때문에 진료를 위해서 접수 과정에서는 비교적 창구 직원이 묻는 것들에 대해 답 해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는 그나마 덜 한다. 하지만 이 목적을 달성한 후 수납 과정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마음껏 펼친다.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 “의사가 진료를 이따위로 하는데 내가 돈을 왜 내야 하냐”, “현금으로 내면 병원비 깎아주냐”, “돈 안 가져와서 진료비 못 낸다”, “돈 없다고 사람 무시하냐”, “돈 없으면 진료도 못 받는 거냐”, “나 영세민인데 무슨 돈이 나오냐”, “다른 병원은 다 되는데 왜 여기만 안 된다고 하냐”, “보험회사에 청구하려는데 필요한 서류 좀 달라” 등의 이야기들이다. 고객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들도 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들도 상당히 많다. 혹은 정당한 요구도 표현이 잘못되어서 직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잘못 안내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고객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원무 창구 직원들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은 원무 창구 직원은 ‘안내’하는 역할이지 직접 행위를 하는 역할이 아니다. 접수는 환자의 신분을 파악하고 진료과로 안내하는 일이다. 수납은 진료를 마친 환자에게 의사가 행한 처방의 대가를 안내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심장이 아픈 것 같아 심장내과 진료를 보러 내원했으나 접수창구에서 심장내과가 마감되었으니 접수를 해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고객은 왜 진료가 안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직원이 해줄 수 있는데 안 해주는 것처럼 느낀다. 사실은 진료과에서 “이러이러해서 과장님이 더 진료를 볼 수 없습니다. 마감해주세요 “ 하면 원무 창구 접수 직원이 마감된 안내를 하는 것이다. 원무과 창구 직원이 무언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어떠한 것도 없다.                                                                                         

 또 다른 경우로는 응급실 진료를 보고 수납하는 환자가 ”나는 응급 환자인데, 왜 응급관리료를 비급여로 받는 거냐 “라고 말한다. 원무 창구 직원이 환자 응급관리료를 비급여로 수납받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판단했을 때 이 환자는 응급 기준으로 응급실 내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응급으로 비급여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수납하는 원무 직원은 이것을 안내하는 역할일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 자신은 응급 환자라며 아무 권한 없는 원무 직원에게 요구한다.      


병원이 전쟁터라고 느껴질 때도 많다. 고객들과 의미 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서로 각자의 주장만 하고 타협은 안되고, 모든 결정은 의사의 판단과 의료법 기준 안에서 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안내를 하는 것뿐인데 비난의 화살은 다 나한테 돌아오고.. 환자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병원에 내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지만,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힘은 나에게는 없다.                                                                                     


글을 적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전화로 진료 예약을 하는 환자였는데, 이때 당시 상황이 환자가 내원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진료 예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 환자의 예약을 돕기 위해 진료과와 직접 통화해서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예약을 할 수 없었고, 끝내 환자에게 도와드릴 수 없고 다른 예약시간에 오셔야 한다고 안내를 했다. 그러자 나에게 했던 그 환자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저 꼭 그 시간에 봐야 하니까, 기존에 예약자 취소하고 저 넣어주세요, 몰래 그렇게 해주실 수 있잖아요 예약 잡으시는 분이니까”.     


이러한 일들이 많아지고 지속될수록 정신적으로 지쳐가지만 이것이 내 일이니 힘을 내야 한다. 고객들은 ‘몰라서 ‘, ’ 어려워서 ‘, ’복잡해서 ‘ 등과 같은 이유들로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지식들을 가지고 그것이 맞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기 때문에 요구할 수 있고 물어볼 수 있다, 어렵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요구할 수 있고 물을 수 있다. 의사만 만나서 진료만 보면 되는데, 의사 만나서 진료를 보는 게 이토록 복잡한 일인지 싶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화가 나고 폭발하기도 한다. “내가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랑 다르더라 “라고 말하실 수 있다.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병원 직원인 나조차도 고객이 병원에 와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이름만 대면 모든 게 다 쉽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질병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고 아파서 병원에 왔을 텐데, 절차는 복잡하고 안 되는 건 많고 해야 하는 일은 많다고 느껴서 더욱 지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모습들이 직원인 내가 봐도 너무 안타깝다. 고객들이 병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시스템을 받아들여서 복잡하다고 느끼지 않고, 화나지 않고, 모르는 것들을 다 알게 되고, 손해 보지 않고 원하는 만큼 만족한 진료를 보고 작게나마 위안을 얻고 집으로 귀가하셨으면 좋겠다.     


이러한 작은 희망사항을 품고 있는 나는 내 자리, 내 위치, 내 역할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고객에게 설명이 필요한 경우 의학용어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말을 바꿔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 고객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안내하려는 노력, 진료비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나온 것 같아 화도 나고 걱정이 많은 분께는 나라에서 하는 사업 혹은 공공의료와 연결 지어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 당장에 진료는 어렵고 예약을 잡고 내원해야만 하는 이유를 친절히 잘 설명하는 노력. 


고객이 느끼기에 직원이 노력한다고,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고객인 자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고, 10명의 고객이 욕해도 1명의 고객이 ‘고맙다’고 얘기하고 가실 수 있게 노력한다. 그게 내 일이다.


오늘도 이 전쟁터에서 고객의 시선과 내 시선의 중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감정노동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