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고 싶다면>
자갈 놀이!
모래놀이는 촉감놀이라 그 안에 뭐 빠트리고 뭉쳐서 공 만들고 비 내린다며 뿌려대고 놀았다. 자갈은 모아서 입체는 아니지만 평면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지울 수 있다. 모았다가 흐트러트리는 재미를 마음껏 느껴볼 수 있다.
치우기가 조금 번거롭지 않을까? 허어억 저걸 어떻게! 비명이 절로 나오는 사진 일 수 있지만 몇 가지만 조심하면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청소도 마무리할 수 있다. 어쩌다 구석에 끼인 자갈을 발견하면 어, 자갈 놀이 한판 해볼까? 하는 여유 가득 정신상태가 일단 필요하긴 하다.
<재료>
인터넷에 '자갈'만 치면 판매용 자갈들이 쭈욱 나온다. 흰 자갈은 가루가 나오므로 검정이나 색자갈을 구매한다. 처음에는 그냥 검정이 좋을 것 같다. 그림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일단 여러 색을 놓게 되면 엄마의 욕심(나의 경우 색깔별로 아이가 모으기를 바란다거나, 색이 섞이면 정신도 같이 섞여버린다거나)이 생기게 되므로 한 가지 색만 가지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자갈 두 컵 정도가 필요하다.
<그리는 팁>
처음에는 모아서 동그라미나 세모를 만들겠지만
놀이에 그림책을 기반으로 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릴 것은 무궁무진하다.
아이가 그날 읽은 책에 기억나는 장면을 함께 그린다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책의 캐릭터를 그리는 것도 좋다.
사진의 그림은 '라이온 킹'의 한 장면이다. 영화 말고 집에 짧은 영어 그림책이 있었다. 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둔 이유는 아이가 지우지 못하게 하고 사진으로 남겨두길 원해서였다. 육아에 푹 빠져있다가 거의 사오 년이 지난 지금 이런 글을 쓰리라는 걸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이 많지가 않다.
<치우는 팁>
다 놀고, 통에 담으면 된다.
단, 주의사항이 두 가지 있다. 돌발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무서운 표정도 반응이다. 놀람, 웃음, 이런 것도 반응이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그 너무 당연한 상황에 평범하고 안정된 미소를 보이듯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당연함으로 돌발상황을 대하는 기본자세를 삼는다면 어떤 놀이든 행복한 놀이로 마무리할 수 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돌을 다루고 돌이 쏟아지거나 다른 곳으로 흩어졌을 때 절대 놀라지 않는다. 혹여 돌이 실수로 튀기거나 해도 절대 웃거나 놀라지 않는다.
이렇게 돌이 밥 먹을 때 쓰는 숟가락처럼 그냥 그림 그리는 도구가 되었을 때,
치우는 일도 쉬워진다.
통 안에 잘 담으면 된다. 아이와 함께.
아이들은 작은 걸 담아 모으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엄마보다 먼저 담기 위해 몸부림을 칠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같이 서두르기보다는 아이 속도보다 조금 늦게 더 꼼꼼히 천천히 줍고 아이가 줍기에 지쳤을 때 엄마의 큰 손으로 한방에 쓸어 담아 준다.
아이가 쏟아버리기 전에 뚜껑을 닫고
혹여 아이가 다시 쏟았다면
주의사항처럼
놀라거나 웃어버리거나 화내지 말고
'아이고, 쏟아졌네. 다시 담아야겠다.'
하며 담는다.
이 과정이 잘 반복되면
'자갈'은 놀이와 학습과 재미까지 더해진 아이의 멋진 장난감으로 탄생!
위의 매뉴얼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자갈 놀이를 못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엄마가 반응 좀 하면 어떠랴!
쏟으면 '이야!!!! 쏟아졌다!'
날아가면 '으악! 날아간다!'
책장 밑으로 들어가면 '어! 저거 어떻게 꺼내니 이이 이!'
아이가 혹시 엄마 옷 속에 자갈을 넣으면
'악! 차가워! 하지 마! 하지 마!'
아이가 혹시 자기 팬티 속에 자갈을 챙기면
'안돼애!'
이런 수많은 엄마의 반응 속에서
아이는 추억을 만들고 배움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자갈은 일단 테이프로 꽉 싸매져 영원히 봉인될 것처럼 창고 속에 들어가 있다가
엄마가 기운이 날 때 창고 속에서 나오거나
아니면 영영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오 년 뒤 창고 정리를 하던 엄마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거나
오 년 뒤에도 엄마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크고 나서 제 손으로 자갈을 사다가 뭔가를 만들어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