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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 Jun 13. 2021

다름을 넘어, 사색의 힘

<완두> <완두의여행 이야기>

[그림책항해_작은위로] 완두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완두콩처럼 작았으니 완두라는 이름이 꼭 어울린다. 몸집이 작은 완두는 옷도 신발도 다른 아이들과 맞지 않아 옷은 엄마가 직접 만들었고 신발은 인형 신발을 신었다. 침대도 성냥갑, 수영장은 세면대 장난감이 클라이밍 도구가 되고 장난감 자동차는 스포츠카가 됐다. 조금 더 자라서는 마당에서 정글탐험을 하고 물 웅덩이에 떠 있는 잎 위에 누워 별을 감상했다. 책 읽기도 모험도 좋아하는 완두는 학교에 가서야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상도 너무 높고, 리코더도 불기 어려우며, 운동을 하다가는 자칫 공에 깔릴 위험이 있었다. 급식은 또 어떤가. 큰 포크와 나이프 접시 등등. 자연스레 늘 혼자인 완두는 온동일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완두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완두> 속 주인공 이야기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 엄지공주가 떠올랐다. 결론도 같을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어요.'로 끝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하지만 우리의 거장 다비드 칼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미처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엔딩은 지켜주기로 하자. 힌트를 주자면 참 잘 자랐다. 본인 밥벌이도 하고 인생을 즐기며 말이다. 


  완두가 신체적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의 보르카도 깃털이 없다는 다름을 가지고 있다. <짧은 귀 토끼>도 그렇다. 대개 다양성 존중에 방점을 두고 읽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두 책 모두 기관 열등감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완두도 태생적 조건이 같다. 그들에게는 상처 주는 사람 외 분명한 조력자가 필요했지만, 완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완두의 건강한 내면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혼자'서 누렸던 사색의 시간. 그 시간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야 경험한 상대적 박탈감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게 했던 자산이 아니었을까.  어느 장면에도 부모는 등장하지 않지만, 완두가 회복 탄력성, 든든한 마음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주었다. 그 사색의 시간을 통해 완두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아는 아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경험이 충분한 아이로 자랐다. 완두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한 살이 되기 전까지 식탁에 참여시키지 않으며 어린아이와는 외식을 자제한다. 외식의 경우 적정한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아이는 사회적인 규율을 능동적으로 지키기에 덜 자라서다. 즐거운 식사시간을 방해해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이유로 집에서 식사예절교육을 충분히 시킨 후 밖으로 나간다. 무언가를 받아들일 적당한 '때'를 기다린 것이다.


  완두의 부모도 그런 현명함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집 안에서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진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단단하다. 어른들은 사회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안에서 충분한 예절교육과 사랑이 바탕이 되는 아이는 밖에서도 빛을 발한다. 아이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우리는 벌어주고 있는가? 그림책은 자꾸 자신 없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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