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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하다 Feb 16. 2024

#2.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에 대한 강박







남 일 같기만 하던 무시무시하던 그 마흔이 훌쩍, 아니 조금 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을 공부에 매진했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왔다.


고민이라는 것은 한가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며, 바쁜 사람은 사실 우울증 걸릴 시간도 없고, 아픈 것은 곧 정신력이라 대부분의 아픔은 사실 정신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진짜 아픈 사람이 들으면 억울할 이야기까지 해가며.


체력이 약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정신력으로 대부분을 커버했고 계속해서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아플 틈이 없었기도 했다.


부족한 실력은 노력으로 메꾸고, 하루 스무 시간 깨어있는 것 정도는 힘든 일도 아니었다. 가장 잘하는 것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일. 누워있거나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있는 일보다 익숙하기도 했고.


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들을 줄줄이 나열해서 수기로 적고는, 하나하나 해치우며 빨간 줄을 긋고 칼 같은 미소를 지었고 그것들은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어.


그렇게 어느 순간 나의 인생은 기계적인 줄 긋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던 나의 인생에, 마흔이라는 이름표가 붙고 문득 나는 멍해졌지.


“ 나는 행복한가? “


“ 사람들은 곧잘 행복하다고 하던데 나는? “



그렇게 머릿속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난 후 나는 굉장히 집중적으로 어떤 강박에 사로잡혔다.


마치 미지의 대륙을 찾아 헤매듯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누구와 있으면 행복한지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생각했다.






나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열아홉 살도, 책 한 권을 읽고 희망에 가득 찰 수 있는 스무 살도, 세상의 찌든 이면을 경험하고 있는 염세주의적인 서른 살도 아닌, 무려 불혹이라 부르는 마흔에 무사히 도달한 사람이지.


서점에 가면 긍정의 메시지로 가득 찬 행복에 관한 서적이 빼곡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마음이 따스해지고 바로 행복해질 준비가 될 것 같은 그런 예쁜 내용의 책들이.

아무리 읽어봐도 모두가 그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생각하다 보면 행복해질 거래, 책 몇 권에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거였다면 진작에 나도 행복했겠지.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건 책으로도 통계로도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이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야.

이건 그냥 두 글자야.


이건, 뭐지?



생각하다 생각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물론 생각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진 않았어. 나는 바빴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출근길과 퇴근길에 운전을 하는 그 시간 동안 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채로 혼자 비로소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어.


“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



다시 생각해 보자. 자, 행복이란 것은 아주 예전부터 책에 의해 티브이에 의해 철학자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정의 내려지기 시작했어.


그렇게 우리 모두는 행복이란 단어에 전염되었지. 행복해야 해, 행복해, 행복하자, 큰 행복, 작은 행복, 소소한 행복, 사실은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이 한 단어에 다 담을 수도 없으면서.


“ 행복이 뭐지? “






수십 년 간 나름 많은 것을 이루고 잘 다듬어 살아온 내가 마흔이 넘어 자동차 핸들을 잡고 이 한 단어에 이렇게 쩔쩔매게 될 줄은 몰랐다.


답이 나오지 않자 정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


핸들을 잡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일은 꽤 오래 지속되었어. 편도 한 시간 반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때론 빨간 브레이크등이 가득한 막히는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하다 차에서 내리고 나면 또 치열하게 하루를 살았고 다시 차에 타고 핸들을 잡고 나면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


답은 계속 나오지 않았어.






머릿속의 회오리는 점점 거세졌고 답이 나오지 않자 나의 삶은 기우뚱 중심을 잃기 시작했지. 급기야 차에서 내려도 생각은 계속되었고 그토록 견고하던 일과 생각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어.


내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회의에서도 입은 끊임없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머릿속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분리되기 시작했고, 세 시간 내내 강의를 하고 칠판에 그래프를 그리면서도 머릿속 한 켠은 잠시 멍하곤 했어.


아주 아주 멀티가 잘 되는 완벽함으로 포장된 단계를 지나자 눈을 감아도 머릿속은 어질어질 거세게 회오리치기 시작했고 아픈 것도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던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쓰러지곤 했지.


번아웃의 시작이 이렇게 온 것인지, 생각이 깊어진 틈을 타 체력이 무너지는 건지 알 수 없는 희미한 경계 속에서 이유 없는 실신은 계속되었어.


물론 다시 눈을 떴고 계속 일을 했고 아무렇지 않게 삶은 계속되었어. 내가 그렇게 했지. 어느 날엔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며 그대로 쓰러졌다가 일어나서는 멍든 얼굴을 바라보며 다음 일정을 생각했어. 죽을병도 아니고 현대인의 흔한 질환 중 하나일 뿐이야.


공고했던 내 삶이 그 흔하디 흔한 단어 하나로 바닥까지 내려갈 줄은 몰랐지만, 나는 흔들렸고 중심을 잃었고 내 근간을 흔들던 회오리는 나를 흔들 만큼 흔들고는 문득 멈췄다.



그래,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

행복하지 않았기에 행복을 정의 내릴 수 없었지.


마치 새 논문의 논제인 듯 결론을 내려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통계를 돌리고 돌리다 보면 답이 나올 거야, 지금은 수식이 조금 잘못된 것뿐이야, 아 결론이 매끄럽지 않네, 무슨 변수가 잘못된 거지?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잘못된 변수는 없었고 함수의 값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은 결론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마저도 노력하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버둥거렸던 나는 비로소 고요하게 생각했어.


실체도 없이 되려 나를 매몰시키는 행복이란 단어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냥 나로 살기로 했다.


“ 행복하지 않으면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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