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
7년 전 선생님은 말했다. 인간은 소속이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당장 무언가를 이루어 줄 수는 없지만 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당시 나는 어느 곳이든 도망가고 싶었다.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 믿었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마땅히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이룬 것도 나는 부족했다. 하물며 나의 노력과 하루를 남들에게 설명하는 방법도 몰랐다. 불안이 차올랐다. 나는 그것을 불행이라 여겼다. 우울만이 나를 온전히 설명하는 단어라 믿었고, 나아가서는 그곳이 내가 속할 곳이라 믿었다.
그 무렵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이 투박할지 언정 차분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그만으로 큰 재주가 된다고 믿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글이 늘어갔고, 생각이 길어질수록 글은 짧아졌다. 일기의 반절은 미래의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무얼 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다가올 미래조차 지금과 같을까 두려웠다.
당시의 나는 재빨리 돈을 버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라며 온종일 나를 다그쳤다. 엄마가 물었다. 모두를 외면한 채 결국 혼자가 되어 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냐고. 네가 그리는 내일이 무언 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좇는 오늘은 많이 불안해 보인다고. 나는 화를 냈다. 아무도 조건 없이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오로지 가치 있는 이들만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거야. 아직 꿈조차 이루지 못한 나는 행복할 자격 따위 없어. 빽빽한 도서관은 숨이 막히고, 사랑의 열병은 참 지독할 테지. 일상에서 안식을 느끼는 것은 감히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엄마가 울었다. 내가 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와 나 역시 숨이 차도록 울었다. 실컷 울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이 돼서야 남몰래 나의 진심을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2018년 10월 17일
'모든 것이 제자리인데 내가 다 망쳐버린 것만 같았어. 방과 후 독서실을 가는 친구들은 같은 하루와 고민을 공유하고 있겠지. 애인과의 밤거리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떨렸을 거고, 사랑을 겪으며 서로를 떠올리는 건 듣기만 해도 좋은 일이야. 사실 나도 그런 게 필요했어. 나의 마음과 하루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필요했어. 혼자가 되는 건 정말 싫어. 있잖아, 나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날을 이후로 뒷 페이지는 빼곡한 여백으로 가득하다.
6년이 흐른 23년 겨울, 나는 일기의 뒷장에 이렇게 마저 적어두었다.
모든 열정이 꼭 뜨겁지만은 않아. 어떤 노력은 잔잔하며, 어떤 사랑은 소모적일 수도 있어. 다만 경험이 쌓일수록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이 많아졌어. 그 사실조차 달갑지 만은 않았던 것 같아. 성장을 위해서는 역경이 필요했지만 역경이 성장의 목적은 아녔으니까. 모든 계획이 온통 물거품이 되고, 사랑은 이별이 되고, 세상의 푸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무렵 나는 확신했어. 그간 시간에 허덕이며 꿈을 좇아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 반대였다는 걸. 내가 만든 이상에 좇기며 시간을 앞당길 뿐이었다는 걸. 없이 못 살 것 같았던 나의 꿈 아랫목엔 소중한 인연과 일상이 빼곡하게 머무르고 있었다는 걸.
어제는 우리만 알고 있는 그곳에 가봤어. 생각이 복잡할 때 참 자주 가고는 했는데. 항상 차가 끊겨 한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잖아. 돈이 부족해 매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우고 말이야.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은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 큭큭. 이런 농담엔 마음껏 웃어도 돼. 너 웃는 거 부끄러워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생각보다 자주 웃고 이제는 화도 낼 줄 알아. 너는 소신 있는 아이였어. 타인의 마음을 무수히 이해하였고 마음의 무게를 가늠할 줄 알았지. 사랑. 꿈. 믿음. 이 모든 것들이 비록 정의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고, 때로는 법과 규칙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나 떼를 써서는 안 된다며. 하지만 그 이유로 자주 혼쭐이 나고는 했지. 배불뚝이 아저씨들은 너무해. 어찌하여 젊은이에게 젊음을 가르치려 하는 거야?
꽁꽁 숨기고 픈 결함은 여전히 못 고쳤어. 하지만 그마저 품어주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어. 엊그제 그런 말을 들었어. 술에 취해 얼굴이 퉁퉁 부어도, 자다 일어나 까치집을 지어도, 그런 건 개의치 않다고. 그 수식어 이전에 나의 이름과 나의 모습이 좋다고. 나는 느꼈어. 사람을 덥히는 것은 거창한 꿈과 미래 따위가 아니라 결국 개인의 문장과 마음이라는 걸. 사실 그래서 너를 찾은 거야. 나라도 감히 널 채워주고 싶었거든. 너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열심히 생각해 봤어. 문장을 꾸미고자 적어온 단어가 아주 많은데 너의 이름을 다시금 생각하니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어쩌면 영영 만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겠지. 노인의 자서전은 젊은이에게는 소설이고, 시간이라는 것이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 이 이야기 역시 닿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너야. 아직 내면에는 나만 아는 부끄러움이 있어. 나 홀로 끝마친 사랑이 있고 나에게만 미운 사람이 있어. 나는 강하지는 않지만 강인해졌고, 세상은 여전히 지독하게 푸르지. 하지만 더 이상 나는 나의 색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유독 옅거나 얕다고 하여 흐릿한 것이 아니야. 진한 붉음만이 정열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푸른색이 꼭 우울을 뜻하는 것도 아니야. 있잖아, 나는 네가 내뿜은 푸른빛으로 세상을 비추어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