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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표현 Aug 04. 2021

버스정류장

조각글 1


“오늘도 왔네.”

 길 건너 버스 정거장에서 손을 흔드는 남편과 딸 연지. 연지가 방방 뛰며 내게 인사한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지만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면서 나의 걸음을 잡아챈다. 연지가 남편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남편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지난번처럼 장난을 치려는 모양이었다.

 연지는 버스를 볼 때마다 TV 속 캐릭터 이름을 소리치며 자신도 타고 싶다며 졸라댔다. 우리 부부는 연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여유가 될 때면 편한 자차 대신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먼저 퇴근한 사람이 연지를 데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렸다. 우리 가족이 다 모이면 연지는 정거장에 붙어있는 버스 노선들을 보며 고민했다. 연지가 하나를 가리키면 그곳이 그날의 여행지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우리는 주변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떤 날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어떤 날은 식당을 나와서도 돌아가는 길에 빵을 사 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 셋은 나란히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거닐었다. 우리 부부가 연지를 힘껏 들어 올리면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나면 연지는 버스 안에서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내려앉는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가며 버티던 아이는 집에 다다를 때쯤에는 끔뻑 잠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연지가 깨지 않게 연지를 안아 들고, 나는 연지의 유치원 가방과 우리의 짐을 챙겼다.

 하루는 연지가 노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 저 끝에는 뭐가 있어?”

 “버스가 쉬는 곳이 있지.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 사람들도 그곳에서는 내려.”

 “그 사람들은 왜 버스에서 못 내렸는데?”

 “글쎄. 연지처럼 버스에서 잠을 자서 그런가?”

 연지가 헉 소리를 내며 작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웃으며 연지에게 말했다. 걱정 말라고. 엄마랑 아빠가 데리고 내릴 테니 자도 된다고.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자, 약속. 연지도 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꼭이야? 꼭 데리고 가야 해. 응. 엄마가 꼭 데리고 갈게.

 버스 한 대가 정거장 앞에 멈춘다. 연지와 자주 타던 버스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정거장에는 남편만이 앉아있다. 어, 우리 연지는 어디 갔지? 오늘 안 데리고 왔나? 때마침 신호가 바뀌고 나는 남편에게 다가간다.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눈을 꾹 누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퀭한 눈이 나를 쳐다본다.

 연지는 없었다. 

 연지는.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타고나서도 우리는 각자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 보니 버스가 완전히 멈춘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짐을 챙겨 버스를 내린다. 우리가 내리자 버스 조명이 서서히 꺼지며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진다.

 “오늘도 와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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