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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여행] 2月의 씨엠립은 심장을 뛰게 한다

심장을 두드리는 깊은 감동 앙코르와트

by 금요일 오후반차

어떤 여행은 기억이 금방 휘발되어 도시 이름조차 가물한 여행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여행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유난히 더 기억에 남고 생생한 곳들이 있다. 물론 그 기억은 그때의 날씨와 기분, 함께한 사람들에 따라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흐릿하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똑같은 지역을 출장 다녀온 팀원들끼리도 이야기하다 보면 각자 선호하는 호텔이, 식당이, 관광지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했던 적이 있다. 개인의 취향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날씨, 기분, 누구와 동행했는지까지 모든 것들이 종합된 것의 결과 값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유난히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 여행지는 여전히 씨엠립이다.

대학생 때부터 회사원이 된 지금까지 목적은 다 달랐지만 총 3번의 씨엠립을 방문했다.


신기하게 대학생 시절의 씨엠립 여행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 거리의 풍경, 숙소의 위치, 침대의 모양과 방의 구조, 심지어는 조리를 신고 다녀 발바닥에 베어버린 흙냄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태국에서의 동계 어학연수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대학교 동기들과 2월에 방문했던 씨엠립은 기대이상으로 좋았던 여행지였다.


10$짜리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가이드도 없이 아침부터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각자 하나의 유적지를 고르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의 여행을 했는데 아직도 '자야바르만 2세'라는 왕의 이름이 기억날 정도면.. 잊지 못할 여행이었음에 분명하다.

씨엠립은 세계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는 앙코르와트[1]를 비롯하여 앙코르톰, 따프롬[2]등 거대한 앙코르 유적군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세계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이 거대한 유적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시내에 숙소를 잡고 앙코르와트 입장권을 사서 적게는 며칠 길게는 일주일 이상 머물며 관광을 한다.


내가 2월의 씨엠립을 추천하는 이유는

봄이 시작되기 전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깜깜한 새벽,

빛 한 점 들지 않는 유적지에 들어가는 순간 부터 마치 신들만의 성스러운 곳에 타임머신을 타고 몰래 들어온 기분이다.


해가 뜨길 기다리며, 자동차도 빌딩도 전봇대도 없는 조용한 고대 유적지 속에서 고요히 떠오르는 해가 보이기 시작하면 심장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요동친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도 좋을 만큼 설레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다.

쁘레룹의 일몰은 또 어떤가.

지평선을 따라 똑 떨어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광활한 자연과 유적 속에 서있는 나라는 존재는 너무 보잘것 없이 느껴진다.

내가 가진 고민이나 걱정 따윈 더 작게 느껴져서 사라지는 해와 함께 조용히 묻어두기도 한다.

"나는 유적지를 싫어해" 혹은

“나는 역사에 관심이 없어"라고 할지라도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규모와 실제 풍경을 보고 나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경이로운 유적지를 이렇게 그냥 밟고 들어와서 가드도 없이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니!

시간이 더 흘러서 언젠가 유적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관광객들을 이렇게 무분별하게 들여보내진 않을 날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전에 와보길 잘했다. 왜 더 빨리 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유적 자체가 주는 압도감과 신비로움이 있다.


캄보디아의 성수기는 한국의 겨울인 12-2월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추울 때 따듯한 나라를 선호하기도 하고 건기에는 강수량이 적고 덜 덥다 보니 야외에 있는 유적을 감상하기 좋기 때문이다. 물론 건기에는 적색의 라테라이트 벽돌로 만들 유적들이 많아 유난히 더 먼지가 많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짧은 일정 중 매일 같이 비가 와서 야외에 있는 유적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보단 안전한 건기를 추천한다. 또 3-4월 이후 더워지는 시기가 오면 내륙 도시인 씨엠립의 경우 나무그늘 하나 없는 유적지에서는 1분도 채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덥다.

씨엠립을 방문하는 주목적은 대부분 앙코르 유적 때문이긴 하지만 씨엠립에는 유적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위한 위락, 휴양, 유흥을 위한 모든 것들이 있는 전형적인 관광도시이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와 비슷한 펍 스트리트라는 유흥가가 있어, 야시장도 열리고 펍이나 식당, 마사지 숍들 다양한 향락시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씨엠립은 도시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 펍 스트리트 근방에서 숙소를 잡는다면 걸어서 시내 웬만한 곳은 다 돌아볼 수 있고 툭툭 비용도 저렴해서 여행객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도보, 자전거, 툭툭, 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앙코르 유적과 씨엠립을 즐겨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성수기 시즌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행자가 되면 마음의 크기도 조금 넓어져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되기도 하니까 다국적 친구들과 씨엠립의 활기를 느껴보자.


2월의 씨엠립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다가오는 봄을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1]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제국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1122년부터 1150년까지 28년에 걸쳐 세웠다. 불교 성지로 알려진 지금과는 달리 사실 앙코르와트는 힌두교 사원인데, 당시 크메르 제국의 국교가 힌두교였기 때문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이만한 거대한 사원은 시바 신에게 봉헌하던 전통을 깨고 앙코르와트를 질서의 신 비슈누에게 바쳤다. 비록 수리야바르만 2세는 앙코르와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앙코르와트는 완공된 이래로 국왕 직속의 핵심사원이자 크메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자리잡았다.

[2] 따프롬은 앙코르톰 동쪽에 위치한 주변 유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만들기 전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12세기에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2001년 제작한 영화 <툼 레이더, TOMB RAIDER>의 배경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3] 쁘레룹은 앙코르톰 동쪽에 위치한 주변 유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만들기 전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12세기에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한적한 분위기에서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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