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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트륨 Apr 30. 2020

무기한 연기된 입싱, 어중이떠중이의 삶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직장인 나트륨씨 #7

싱가포르 상황이 계속 심각해진다. 하루에 1천 건 이상의 신규 케이스가 나오고 긍정적으로만 바라봤던 입싱은 점점 더 불투명해졌다. 한국 상황은 하루하루 더 개선되고 있는데 저긴 갑자기 왜 저렇게 난리인지... 휴가 일정과 한국 퇴사 일정을 모두 조율하고 있는 상태에서 싱가포르 락다운 등의 이야기가 들려와서 불안한 마음은 하루하루 더 커져만 갔다. 그래도 될 대로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6월엔 떠난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혹시 이야기 들었어?”라고 운을 뗀 그룹장은 내가 별 이야기 들은 게 없다고 말하자 얼버무렸다.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인사팀에 확인을 해보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어떠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 트랜스퍼를 준비하면서 가장 화가 나는 게 이 부분이다. 정작 의사결정을 하면서 내 의견은 묻지 않는다.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도 나고, 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마치 체스 말 하나로만 사람을 대한다. 본인들은 내 상황,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말하지만 나의 거취 관련 결정을 하면서 나를 빼고 하는 이 상황이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서울 집을 정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굉장히 일방적으로 이때까지는 일해야 돼 라고 못 박았으니까.


그리고 하루 이틀 뒤에 이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싱가포르 관련해서 업데이트해줄 내용이 있고, 인사팀을 통해 듣는 것보다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외국인 비자 홀더의 입국이 6월 말까지 금지된 것(사측에서 서류를 구비해서 일부 신청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리고 서울 오피스에서 계속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 싱가포르로 가는 것보다는 안전하리라고 말하면서 예정된 승진은 그대로 진행하되 싱가포르 계약서에 서명한 연봉이 아닌 현재 연봉에서 일부 상향되는 수준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문제인 집은 회사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이 있을지 알아보고 인사팀이 연락 준다고 전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싱가포르로 갈 수 없는 상황은 뉴스 등을 통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게 최소 6월 말까지 무기한으로 밀리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가장 걱정하던 일이 발생해버렸다. 계속 출근해야 하는 것. 회사로 출근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고역이다. 나는 이미 ‘나간 사람’인데 그 누구도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데 거길 계속 가야 하다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집을 지원해준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기에 편의를 봐주긴 하는구나...라고 잠깐이나마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인사팀에서 미팅을 요청했다. 이사님이 말해준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이었으나, 집은 내가 알아서 구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오른 연봉으로 알아서 구하라 했다. 정 못 구하겠으면 업체 소개 정도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연봉도 사실 싱가포르에서 받게 될 연봉과 아주 차이가 컸지만, 코로나 시국에서 연봉을 올려주는 것에 감지덕지하다고 느꼈지만, 사실 내가 지낼 곳이 없으면 그리고 언제까지 서울에 있을지 모르는 불투명한 이 상황에서 이게 내가 감사해야 할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빨리 결정되었다면 나는 서울 집을 정리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의사 결정이 늦어지면서 나는 나대로 손해를 본 것인데 회사에선 몇 달간 월급 더 주는 걸로 상황을 넘어가려고 하는 건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이런 시국에 싱가포르로 가는 건 위험하다. 나도 서울에 있는 편이 더 좋다. 하지만 내가 이 사무실의 척박한 환경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내 2020년은 왜 이런 식일까. 점집이라도 가서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렇게 오래 노출되어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내가 일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다운 일을 손에서 놓은 지 2개월 쯔음 된 것 같다. 큼지막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니 영어를 쓸 일도 없어지고 멍청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5월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나의 5월~6월은 벌써부터 까만 배경에 우울한 장송곡만 들리는 듯하다.


어중이떠중이로 살아도 되는 5월이라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월급 받아먹으면 되는 건지, 이 상황에 끊임없이 불평하고 감정을 쏟아야 하는지 막연하다. reset 버튼이 있다면 확 누르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의 시점으로 가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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