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제 마음을 침범한 건지 홍수로 여기까지 떠밀려 왔습니다. 운동은 대리운전 할지언정 마음까지 '대리'여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작년 10월부터 왼쪽 고관절 통증이 있었어요. 사타구니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선명한 선을 그었죠. 앉아 있을 땐 자 대고 칼로 긋는 느낌이었어요. 전 신경 거슬리는 게 생기면 빨리 없애려는 '일상회복병'이 있나 봐요.
쉰다 생각하니 얼마전 일(대학병원 교수님들과 나)이 생각나는 아이러니
1.
회사 근처 요가원을 출퇴근 길에 보니까요. 척추협착부터 별별 질병이 쭈욱 열거되어 싹 다 고친다는 내용이 입구에 써 있더라고요. 영상도 눈에 들어왔죠. 2개월 끊어 상사, 직원과 점심약속이 없는 날은 가서 움직였어요.
2.
갈수록 통증은 심해지고 올해 1월부터는 왼쪽 허리와 옆구리까지 가세해 삼각형으로 통증 마을을 이루었어요. 집 근처 정형외과의원은 골반이 틀어져서 관련 근육에 통증이 생겼다 하더라고요. 도수치료를 권했죠. 토요일과 퇴근 후에 받았어요. 내 생애 도수치료란 걸 처음 받았죠. 아픈 곳을 혼자 주무르고 짓누르던 걸 남이 해 주는 격이었어요. 그 순간 만큼은 시원해서 살 것 같더라고요.
올해 1월, 그렇게 흘려 보냈건만 2월은 더 야속했어요. 의자에 앉을 수조차 없었어요. 칼로 왼편을 강타 당한 듯했어요. 고관절, 햄스트링, 허벅지(대퇴근막장근, 장경인대), 옆구리, 허리, 배꼽 주변까지. 또 다시 회사 근처를 두리번 거렸습니다.
3.
골반이 틀어졌다고 하니 병원에서 운동치료 경력이 오래된 교정센터로 갔어요. 근육이 뭉쳐 힘을 못 쓴다면 먼저 풀었어요. 밧줄이 치렁치렁한 '슬링' 기구에 누워 틀어진 몸을 맞춰 놓고 강화 훈련을 시켰어요. 골반 정렬 맞추니 더 아픈 것도 같고 통증이 사라졌어도 약발은 서 너시간이었어요. 골반 틀어진다고 부하가 없는 저강도 운동을 권했죠.
비용을 치룬 8회까지만 하고 나오는 길에 '재활' 글자가 제 가슴팍을 파고들었어요. 빨리 낫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어떻게 접근하고 대처하는지도 궁금했어요. 재활전문가라고 하도 광고해 필라테스와 헬스를 겸비한 센터를 10회 끊었어요(빨리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4.
회사 근처 필라테스센터는 고관절 통증을 의식한 나머지 움직임 진단 1/3, 고관절 운동 1/3, 하체 폼롤러 풀기(회원이 알아서) 1/3로 50분 수업을 채웠고요. 사무실로 돌아온 순간부터 다음 날까지 하늘이 노래지는 통증이 나타났어요.
통증으로 조급증까지 생긴 나머지 계약서를 못 받은 걸 그때 알았죠. 계약사항도 그때 알았거늘 막대한 환불비용으로 고통은 2배였죠. 마음이 쓰린 게 낫지 두번째 방문하면 몸이 죽겠다 싶더라고요. 헬스를 하고부터 잘라내고 싶은 다리저림이 싹 사라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헬스를 안 다닌지도 3년이나 됐으니...
5.
회사 코 앞에 있는 헬스장에서 PT 20회를 끊었어요. 왼쪽의 장요근, 엉덩이, 햄스트링, 종아리, 발목, 복근, 광배근, 승모근 모두가 기능을 잃어 강화시키재요. 과거에 운동 경력이 있던 사람이라 운동부하를 높이자 했어요. 힘 센 오른쪽은 더 발달하고 왼쪽은 약화 되었다면서. 초반엔 통증이 잘 잡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시간이 짧아졌어요.
6.
병원치료와 운동을 병행해 보는 건 어떠냐는 PT선생님의 마지막 인사가 생각나 회사 근처 재활의학과의원을 갔어요. '재활의학과'는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궁금하고 이번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랐으니까요.
'고관절-허리-옆구리' 세 군데 통증을 일으키는 건 왼쪽 등에 염증이 있기 때문이래요. 논문을 보여주면서요. 원인인 등에 신경차단술을, 고관절 범위가 제한된 왼쪽 골반엔 근육주사를 놓았어요. 그리고는 도수치료를 받는데 관절가동범위를 체크하고 뭉친 곳을 수기로 풀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엉덩이 운동을 골반 교정하며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어요.
실손보험이 있다지만 정형외과의원에서 기계를 이용한 도수치료는 7만원이고 재활의학과의원에서 손으로 하는 건 15만원, 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또 아팠으니까요. 통증이 거쳐가는 여정인지, 효과가 없는 건지, 더 나빠진 건지 '답답병'도 생겼어요.
7.
좋은 경험 했다 치고 통증은 고스란히 남은 채, 회사에서 동네로 시선을 돌렸어요. 오는 토요일에 종합병원에 있는 '신경외과' '척추센터'로 시선을 돌렸어요.
"X-Ray상 허리 L4-5번은 협착으로 아예 공간이 없지만 더 심해졌다. 왼쪽에 석회화도 보이고 그 위인 L3-4번은 압력이 올가가 있는 상태다. MRI 보면 자세히 보이지만 이미 이 사진만 봐도..."
MR를I 비보험으로 찍으면 비용만 커지니 저 역시 놔두시라 했죠. 약 먹고 좀 쉬라는 말씀 뿐. 3분진료 답게.
8.
아픈 곳을 셀프로 꾹꾹 누르고 두드렸어요. 아픈 지점인 허리 뒤에 딱딱한 공을 끼우고 잠이 들기도 했어요. 엎드려 고관절 아래에 공을 끼워 독서를 했죠. 아프니까 시원하게 근육이라도 좀 풀어주었음 좋겠어서 전국에서 몰린다는 지압원을 방문했어요.
미신이라도 믿고 싶은 심정이었죠. 과학적 근거중심 데이터베이스는 없어도 아픈 사람 고친 사례는 축적 되었으니. 원장님이 오른쪽을 누를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왼쪽 속근육을 누를 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자지러져 비명이 센터 떠나갈 듯했어요.
배꼽 주변 속근육을 건드리니 고관절, 허리 옆구리 통증이 동시에 출연했어요. 꼬리뼈 주변 근육을 꾹 눌러도 아프던 지점들이 동시에 아팠어요. 연관된 속근육을 모두 풀고 틀어진 골반을 반대로 잡고 일상에서 하는 교정운동과 강화운동을 알려 주었어요.
자고 일어나니 통증도 사라졌어요. 하지만 사무실 오후가 되면 또 나타나고 퇴근 무렵엔 다음날이 걱정 되었어요. 퇴근 후 통증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다음날 장시간 앉으려다 보니 16회를 받게 되었어요.
아픈 것도 서럽지만 실손보험도 안 되는 곳이니 더 속상했어요. "고관절은 세 번 만에 고친다며 왜 당장 낫지 않는 거냐며 따지기도 했고요. 셀프로 풀고 운동하며 통증이 심할 땐 퇴근 후 무료로 봐주십사 해 네 번 체크 받고는 발길을 끊었어요.
병원마다 같은 말 반복이 귀찮아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메모한 종이를 내밀었다
운동을 하면 안 된다 vs 운동을 더 해야 한다
골반 교정을 해야 한다 vs 자신 만의 가동 범위로 교정은 필요 없다
꼬리뼈 문제가 통증(운동)에 관련 있다 vs 꼬리뼈 변형은 운동(통증)에 관계 없다
하는 말이 다 달라도 센터마다 하라는 건 지켰어요. 매번 희망을 품고 좋아진다는 운동은 뭐가 됐든 했어요. 아프면 좌절하고 깊은 잠을 못 자 피곤하니 지치고 기껏 좀 나아지면 사무실 의자에서 또 짓눌리고 진통제 등으로 버티니 몽롱하고...
눈 앞에 일이 쌓이면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앉으면 죽을병'에 걸린 것 같고 일이 몰리니 명치와 등도 아파오고 호흡과 맥박수도 빨라졌어요. 몇 일 몇 시까지의 기한엄수 일들의 연속 속에서 그래도 시간은 흘렀네요.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일,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6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