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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n 21. 2024

[감동 한방울] 송충이는 솔잎

연중 가장 큰 행사가 있었다. 저녁 행사다 보니 늦은 시간에 만찬을 했다. 평소 범접하기 어려운 음식을 만났다. 회의 이후 식사라 평소보다 늦다. 그럼에도 음식 남기는 꼴을 못 봐, 금부치인 양 싹 다 비웠다(빵으로 덮힌 양송이 스프와 치즈케익이 더 있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이 영화제작 일을 해 <아웃사이더2> 시사회에 초대했다. 영화관도 하도 오랜만이라 엉덩이가 들썩였다. 감동적인데 <인사이드아웃1>을 몰라 이따금씩 머릿속은 일시정지 됐다. 근처 맛집까지 안내받은 풀코스. 외국 분위기의 색다른 세계였다. 오장육부가 호강했다.


서울 출장 갔다가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호화로운 집을 경험했다. 장어도 생크림처럼 부드러울 수가 있구나. 장어와 나, 오로지 둘만 존재하듯 폭풍 흡입 했다.



하지만...


행사 때 먹은 음식은 소화가 안 돼 밤새 뒤척였다. 뜬 눈으로 출근하는 추억까지 먹었다. 생전 입에 대지 않던 소고기까지 돈 아까워 먹은 게 체했다.


<인사이드 아웃2> 영화에 영화 같은 강남 맛집에서 먹은 음식이 위장을 호강시키기는 했다만, 들어와 집 부엌을 들쑤셔 위장을 덮어쓰기 했다.


배부르다고 젓가락 놓길래 덩그러니 남은 장어가 내 몸 속 피처럼 느껴졌다. 싹 다 먹어치웠더니 등과 명치가 아팠다.



내가 요즘 먹는 일용할 양식은 옥수수다. 마약처럼 기분을 들뜨게 한다. 사무실에 싸가거나 집에 와서 먹는다. 출퇴근 발걸음도 행복하다. 아버지가 삶은 옥수수가 최특급 요리였다.



여전히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나가고 있는 아들, 안쓰러워 퇴근길에 만나 (강제로) 드럼 치는 타악기 연습실에 데려갔다. 고등학교 3년을 내리 쳤던 드럼, 대학 들어가니 채를 만져보지도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원장님, 우리 아이 좀 봐 주세요"


세계 악기가 모두 모여 있었다. 원장님은 어느 나라 어느 나라 타악기라며 신나게 설명했다. 내게 뭐가 가장 마음에 드냐고도 물었다. 다 듣고 나서 고작 내 입에서 하는 말...


"원장님, 저 구석에 놓인 장구 만져봐도 되나요?"


입이고, 손이고

송충이는 역시 솔잎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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