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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l 03. 2024

동행

삶은 누군가, 무언가와의 동행


어젠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몇 십년 만인 것 같다. 오히려 아이 어릴 적 손이 많이 가는 나이 때 함께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찜질방 노래자랑(김종국)에서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인기상(10만원)도 타고 회사 전직원 체육행사 때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오프닝 사물놀이 공연도 했으니. 아이를 집에 맡긴 게 아니라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날 응원했다.


어젠 기껏 데이트 하는 코스가 병원이었다. 우린 아침 9시까지 두 군데 병원으로 출근 했다. 허리를 부여잡고 앉았다 일어나지 못하던 모습, 한쪽 발바닥에 뼈가 튀어나와 빨갛게 부풀어 오르면서 서질 못한던 모습이 내가 회사 출퇴근 하며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족이 생각나듯이 회사 점심시간에 찍은 척추MRI로 심봉사 같던 내 눈이 뜨였듯이 엄마도 맛 보여 주고 싶었다.

X-RAY까지 찍고 합동 진료를 봤다. 


"어머니, 두 군데 디스크 탈출이 엄청 심한 상태에요. 그런데 어찌 그리 잘 걸으실 수가 있나요. 추간공까지 다 침범해 이리 좁아진 다른 환자들은 몸이 휘어져 진료실 들어올 때부터 절뚝대며 나 죽는다 해요. 게다가 행동도 참 빠르시네요. 그동안 어떻게 사셨길래 이렇게 버텨 오신 건지..." 


엄마 입에선 두 손주 키워낸 이야기부터 나왔다. 의사선생님은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 다른 질병 문제까지 다 듣고 메모지에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어머니, 지금처럼 근력운동 열심히 하시고, 에어로빅도 추시고 허리와 체중부하로 발바닥이 도저히 못 견딜 때 그 부위만 주사 맞는 걸로 합시다. 다른 시술이나 수술은 의미 없어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 하셨습니까. 앞으로도 하고 싶은 운동 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세요"


워낙 내가 생각한 데이트 코스는 합동진료 후 광교 맛집에서 점심식사, 그리고 귀가였다. 병원 나오자마자 엄마가 입을 떼었다.


"너 X-RAY 찍으러 갈 때 의사선생님이 그러더라. 따님 허리가 많이 심각하다고. 나 혼자 가도 되니 시술까지 다 받고 와"


데이트코스가 변경되었다. 광교 호수공원이 아닌 수원시청역 인근으로. 회사 다닐 때 먹던 점심을 함께 했다. 부실한 포케 한 끼인데 우리 딸이 다니는 회사 근처라고, 딸이 퇴근할 때 타던 전철 탔다며 엄마는 신이 났다(반대방향 개찰구 들어갔으면서). 전철을 어떻게 탔고 내려서 누구와 무슨 통화를 했는지 비대면 데이트가 이어졌다.


난 다시 병원으로 가 신경차단술을 받았다. 척추협착과 디스크 탈출로 인한 왼쪽 골반 주변 상하체 통증, 6월부터 출연한 오른쪽 등(흉추7-8번) 통증이 성가셔서. 예전엔 병원 가는 이유가 "정상입니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올해 들어서는 "이번엔 또 뭐?" 소리 들을까 불안했다. 이러든 저러든 질병이란 함께 품고 가야 할 동반자다. 


엄마와의 동행, 시간은 짧았지만 자상한 의사선생님 덕에 긴 여운을 남겼다. 질병과의 동행, 데리고 살기 편한 삶을 꿈꾸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엄마와 나 사이를 동행했던 '오해', 어제 7월1일부로 우릴 떠났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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