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벌레' 나와 교차 했다. 갈비뼈가 부러져도 햄스트링, 인대가 찢어져도, 자궁외임신으로 하혈을 해도, 하지정맥류 수술을 마치고도 업무시계가 돌아갈 뿐이지 내게 벌어진 일은 중요치 않았다. 월급이 부재한 달력은 있을 수 없고 기분 좋게 달력 한 장 떼게 한 건 회사였다.
어느 순간 고관절이 짓눌렸고 업무시계는 왼쪽 몸 전체를 잿빛으로 만들었다(왼쪽 치아까지 치료 중). 나 자신과 우리집 모두 내가 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민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회사든 집이든 내 몸은 쪼그라들었다. 공벌레처럼 건드리면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벌레로 바뀐 카프카를 보며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그에게 난 이렇게 쏘아 붙였다.
"나의 갈망이자 자주 쓰는 말이 <변신>인데 왜 하필 벌레로 변신 했니? 난 성장 욕구로서의 변신이지 추락으로 그 단어를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카프카야, 소통이 안 될 바엔 반려동물로 변하지 흉측한 벌레가 뭐니? 내가 바닥까지 떨어질 때 손 잡아주는 이가 진정 나를 위한 자이니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간 본 건가? 아님 진정한 자유 느끼려고, 아무에게도 엮이고 싶지 않아 벌레를 택했나? 누이 말처럼 흉측하고 도움 안 될 바엔 자유라도 실컷 누리지 가족 틀을 또 못 벗어나고 그러냐.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한 알이 그대로 박힌 채 모두의 환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 이거 혹시 카프카 너 혼자 오해하고 상상했던 거 아냐? 끈 떨어진 인생이라면 가족도 사회도 벌레 취급할 거라는 너의 잠재의식이 너를 압박하고 소외시킨 건 아닐까? 너 없으니 다들 돈 벌려고 굴러 가던데 카프카 네가 다른 사람의 경제권과 존재감을 빼앗은 건 아니고? 그게 아니라면 너처럼 우리가 소외시켜 죽어가는 이들은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라나"
여전히 알 수 없는 나의 왼쪽 골반 통증. 내 몸 전체가 아닌 그저 벌레 한 마리가 내 몸에 기생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레고리 잠자가 "그는 제법 쾌적하게 느꼈다. 온몸이 아프기는 했으나, 고통이 점점 약해져 가다가 ...(72p)" 처럼 통증이 있지만 쾌적하게 느끼고 있다. '가장', '일벌레'의 해방감이 '통증'일 수도.
며칠 전 두 통의 카톡이 왔다. 상임이사님은 원주에서 출장 왔는데 내가 없어서, 전 부서 직원은 결혼 청첩장 주려는데 내가 없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둘 다 카톡에 긴 말 없이 희망의 그림자를 남겼다. 벌레로서가 아닌 용띠답게 용처럼 변신하고픈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