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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Sep 25. 2024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변신

인문학이라고는 담 쌓고 산 인간이 감히 책 한 권을 펼쳤다. 나의 당면 과제 중 하나가 (통증 외에도) 정신 상태에 대한 비정상의 정상화라서. 아침 걷기 코스에 도서관이 있다. 문학 주변을 배회 하다가 하도 끌려 카프카의 <변신>을 집어 들었다.


읽고 있는데 때마침 이웃 블로그에 서평이 올라왔다. 연결의 위대함을 맛 보며 글만 쏙 빨아먹고 먹튀 하려다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니, 블로그 이웃 민님 댓글에 댓글을 달려니 끝도 없이 쏟아지는 독백에 댓글을 여기에 달기로 했다.


* 민님이 내게 쓴 댓글 *

"정답은 없어도 해답은 여러개 이겠지요 ?

변신, 어떻께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

작가님의 해답 기다리고 있을게요​"


책 <변신> 이야기는 서평, 하면 알아주는 아래 블로그에 흥건히 적셔 있으니 걸으며 튀어오른 독백만 낚아 챈다.



'가장', '일벌레' 나와 교차 했다. 갈비뼈가 부러져도 햄스트링, 인대가 찢어져도, 자궁외임신으로 하혈을 해도, 하지정맥류 수술을 마치고도 업무시계가 돌아갈 뿐이지 내게 벌어진 일은 중요치 않았다. 월급이 부재한 달력은 있을 수 없고 기분 좋게 달력 한 장 떼게 한 건 회사였다.

어느 순간 고관절이 짓눌렸고 업무시계는 왼쪽 몸 전체를 잿빛으로 만들었다(왼쪽 치아까지 치료 중). 나 자신과 우리집 모두 내가 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민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회사든 집이든 내 몸은 쪼그라들었다. 공벌레처럼 건드리면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벌레로 바뀐 카프카를 보며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그에게 난 이렇게 쏘아 붙였다.


"나의 갈망이자 자주 쓰는 말이 <변신>인데 왜 하필 벌레로 변신 했니? 난 성장 욕구로서의 변신이지 추락으로 그 단어를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카프카야, 소통이 안 될 바엔 반려동물로 변하지 흉측한 벌레가 뭐니? 내가 바닥까지 떨어질 때 손 잡아주는 이가 진정 나를 위한 자이니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간 본 건가? 아님 진정한 자유 느끼려고, 아무에게도 엮이고 싶지 않아 벌레를 택했나? 누이 말처럼 흉측하고 도움 안 될 바엔 자유라도 실컷 누리지 가족 틀을 또 못 벗어나고 그러냐.


아버지가 던진 사과 한 알이 그대로 박힌 채 모두의 환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 이거 혹시 카프카 너 혼자 오해하고 상상했던 거 아냐? 끈 떨어진 인생이라면 가족도 사회도 벌레 취급할 거라는 너의 잠재의식이 너를 압박하고 소외시킨 건 아닐까? 너 없으니 다들 돈 벌려고 굴러 가던데 카프카 네가 다른 사람의 경제권과 존재감을 빼앗은 건 아니고? 그게 아니라면 너처럼 우리가 소외시켜 죽어가는 이들은 세상에 또 얼마나 많을라나"


여전히 알 수 없는 나의 왼쪽 골반 통증. 내 몸 전체가 아닌 그저 벌레 한 마리가 내 몸에 기생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레고리 잠자가 "그는 제법 쾌적하게 느꼈다. 온몸이 아프기는 했으나, 고통이 점점 약해져 가다가 ...(72p)" 처럼 통증이 있지만 쾌적하게 느끼고 있다. '가장', '일벌레'의 해방감이 '통증'일 수도.

며칠 전 두 통의 카톡이 왔다. 상임이사님은 원주에서 출장 왔는데 내가 없어서, 전 부서 직원은 결혼 청첩장 주려는데 내가 없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둘 다 카톡에 긴 말 없이 희망의 그림자를 남겼다. 벌레로서가 아닌 용띠답게 용처럼 변신하고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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